[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최근 한국 저예산 영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이준익 감독이 ‘동주’로, 정지우 감독이 ‘4등’으로 웰메이드 작품들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자신있게 내놓은 ‘양치기들’도 그 물결에 한 힘을 보탤 독립 영화다. 단지 앞서 언급된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메가폰을 잡은 김진황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첫 장편을 관객에게 선 보이는 신예라는 점이다.

‘양치기들’은 거짓말과 침묵하는 자를 향한 하나의 일침이다. 단죄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영화를 보고 느낄 관객들의 감상에 맡길 일이다. 신인 감독이지만 묵직한 소재를 가지고 오밀조밀 치밀한 구성을 만들어냈다. ‘저예산 영화’라고 말하기 힘든 영상미와 연출 또한 일품이다.

자신의 첫 장편을 가지고 관객과 마주한 김진황 감독을 최근 홍대에 위치한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제니스뉴스가 만났다. 감독이 직접 밝히는 연출관을 이곳에 풀어본다.

자신의 장편이 극장에 걸렸어요. 소감이 어때요?
이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기대하거나 새롭게 느끼는 감정이 밀려온다기 보다는 덤덤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드리면서 지내고 있어요.

보통 데뷔작 개봉 전엔 잠도 못 잔다던데요?
그런데 제가 잠을 참 잘 자요. 잠은 항상 잘 자는 거 같아요. 사실 이미 부산영화제에서 선을 보였고, 선 보이기 전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었고요. 물론 이렇게 많은 일반 관객들과 마주하는 건 처음이지만 심각하게 떨리지는 않는 거 같아요. 

평이 워낙 좋아요. 언론의 호평도 있었고요. 
신기해요. 기사들을 읽어보면 분명 제가 고민했던 부분들이 기사에 담겨있더라고요. 일면식 있는 분들도 아니고,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도 미비할 수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고 반응이 있다는 게 좋으면서도 신기해요. 다행이라는 감정도 있고요. 누군가 제 영화를 보고 글을 써준다는 게 너무 고마운 일이에요.

독립영화이기에 제작되고 개봉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찍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시스템에 맞춰야 해요. 물론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작품의 의도는 자유의지지만 촬영은 언제까지 맞춰야 한다는 일종의 마감이 있는 개념이었죠. 이미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부터 스케줄이 나와있고요. 그 안에서 찍어야 하니까 완전하게 자유스러운 느낌은 아니었어요. 일종의 반독립영화죠(웃음). 사실 첫 장편이니까요. 막히는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았고, 버거운 부분도 있었어요. 분명 우여곡절은 많았죠. 아마 너무 다양해서 그걸 다 이야기하려면 밤 새야 할 거예요.

영화는 결국 거짓말, 그리고 침묵에 대해 이야기해요. 그리고 거짓말 보다 침묵에 대한 단죄가 더 무겁게 느껴지고요. 이 지점에서 故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사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메시지를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담고 있는 고민들을 담아냈어요.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 거짓된 말을 하거나 잘못된 태도를 취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됐다’라고 인식해요. 하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알고 있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 부분에는 관대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살면서 비겁했다고 느끼고 죄책감을 느꼈던 지점이에요. 거짓말을 했었던 순간 보다 합리화 시키고자 외면하거나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지 않거나 방관했던 때요. 당시엔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니 치사하고 비겁한 일이었던 거죠.

사실 솔직하면 욕먹는 시대가 맞아요. 융통성이 없다, 임기응변이 약하다, 혹은 사회 생활 못한다는 소리 듣기 딱 좋죠.
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그런 말을 듣는 것 같아요. “꽉 막혀있다”는 말이요.(웃음) 마음에 있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는 말을 들어요. 그런 성격이 좋을 때도 있지만 안 좋을 때가 아직까지는 더 많죠. 제가 군생활 할 때 선임이 이런 말을 했어요. “네가 알고 있는 건 모른 척 하고, 좋은 건 싫다고 하고, 싫은 건 좋다고 해라”고요. 그랬더니 진짜 군 생활이 편해지더라고요.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솔직하고 진심을 다해 말하면 오히려 경계하고 멀게 느끼더라고요. 참 인간관계가 이렇구나 싶고, 뭐가 맞는지 모르겠고요. 그 고민들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장편의 기회가 왔고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융통성 없는 건 영화 제목에도 보여요. 정말 너무 돌직구죠.
아카데미 때 ‘황여사’라는 단편을 찍었어요. 50대 여인, 저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죠. 전 저희 어머니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쓰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인물과 상황에 깊이 있게 들어가다 보니 전 저희 어머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건방진 생각이었던 거죠. 

사실 촬영하기 직전까지 멘붕일 때가 많았어요. 너무 명확하지 않은 걸 가지고 명확한 척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싶었죠. 결국 ‘제가 느끼고 알고 있는 것만 이야기하자. 이상한 포장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안에서도 극적인 구성을 두고 충돌하는 부분이 있었고요. 영화 속 장면에 상황이나 인물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영화가 명확한 엔딩을 제시하진 않아요. 하지만 제가 딱 생각했던 지점으로 결말이 나왔어요. 고민도 많이 했지만 딱히 답이 나온 상황이라면 더 어색해졌을거 같아요. 더 영화적으로나 극적인 것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압적으로 하긴 했어요. 그 책임을 온전히 제가 짓고,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거다 보니 작업 자체가 그런 충돌을 하면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만약 상업영화였다면 여러 입김 속에서 보다 편한 결정을 할 수도 있었겠죠?
마냥 편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결론을 낼 때 물리적인 시간 소비가 덜 했겠죠. 그 과정도 명확했을 거고요. 하지만 마음은 찝찝하고 불편했을 거예요. 지금 결말은 물리적인 시간이나 정신적인 소모는 훨씬 심했지만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편한 결말인 거 같아요.

독립영화의 매력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라고 박종환 배우가 그러던데요.
일단 배우라는 직업의 설정도 결국 전 배우랑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연기를 하는 친구들의 현실을 더 잘 알았던 것 같아요. 사실 완전 리얼로 하자면 ‘완주’를 영화 감독 지망생으로 설정하는 게 맞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더 깊은 고민을 하는 직업이라 생각했어요.

에피소드 중에서도 나이트클럽 신은 제가 대학교 때 웨이터 알바를 했던 경험을 가져다 사용했고요. 또 제가 회를 좋아해요. 혼자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하면서 영화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동네 횟집 사장님들이랑 다 친분이 있었죠.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차용 됐어요. 보다 솔직한 느낌과 입장을 전하고 싶었어요. 전 회 한 접시에 소주, 그리고 영화를 보는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든요. 그걸 단편으로 표현할 땐 저만 느끼면 됐다 치면 장편에선 보다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게 확장하는 작업이었어요. 

캐스팅 비화는 있을까요?
박종환 배우 같은 경우 미팅을 하고 첫 이미지를 봤는데 딱 완주 느낌, 검은 점퍼에 청바지의 모습으로 왔어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싱크로율 100% 였죠. 일부러 그 때 입었던 옷과 비슷한 의상을 구해서 영화에 사용했어요. 

종환이 형과의 작업은 참 좋았어요. 그 당시 워낙 혼자 작업하는 게 힘드니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요. 이 형과 이야기를 하면 이 영화가 잘 안 되도 이 형이 날 원망하진 않을 것 같아요. 잘 되면 같이 잘 되고 못 되면 같이 못 될 거 같은 사람이에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엔 많이 힘들었어요. 사실 감독을 꿈꾸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장편을 간다는 건 엄청 큰 의미예요. 그런데 자기 역량의 한계를 느끼면서 하다 보니, 지난 시간 흘러갔던 청춘과 젊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박종환 배우와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명우'를 연기한 차래형 배우의 경우 저와 같은 학교를 나왔고, 함께 단편을 했던 친구예요. 영화 속 배우의 삶에 투영됐던 친구였죠. 무대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참 좋아서 학교 다닐 때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어떤 역할이던지 기본 이상을 해주는 배우고요. 잘 될 배우라는 확신도 있었고요. 당초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명우 역할에 염두를 두고 집필했던 친구예요.

요즘 저예산 영화 중에 수작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동주’ ‘4등’, 그리고 ‘양치기들’도 그 반열에 올라서는 분위기에요.
저예산 영화는 소모적으로 순간을 보내기 위한 영화는 아니에요. 인물과 이야기를 만드는데 있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요소가 있죠. 단순하면서도 덜 포장된 영화들을 바라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고 생각해요

촬영기기의 업그레이드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요? 핸드폰으로 4K를 찍는 시대니까요.
맞아요. 이젠 저예산 독립영화라고 해서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큰 차이가 없어졌어요. 하지만 덕분에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졌죠.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야 하는 지점이 있어요. ‘양치기들’도 촬영적으로, 기술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촬영 감독과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후반 작업에도 신중을 기했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수상도 했고, 다른 영화제에도 많은 초청을 받았는데요. 수상에 대한 기대는요? 독립 영화는 영화제 수상이 수익적인 부분에서도 중요하잖아요.
수상하면 당연히 좋을 일이죠. 또 항상 그걸 바라기도 하고요. 하지만 번외라고 생각할 때가 더 제게 더 이로운 것 같아요. 마음도 편하고요. 이쪽에 에너지를 쏟을 바에 다른 곳에 쏟자는 주의에요. 상을 타고 못 타는 건 그냥 팔자겠거니 해요. 

상업 영화로는 언제쯤 진출하게 될까요?
지금 작업하고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다음 영화로 나올 것 같아요. 아직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장르적으로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 쪽 장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고요. 제가 미스터리를 좋아해요.

좋아하는 미스터리 작품 중 세 작품을 고른다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조디악’ ‘렛미인’이요. 그런데 좋아하는 것과 만들고 싶은 영화는 다른 것 같아요.

그럼 하고 싶은 영화는 어떤 작품인데요?
데이빗 핀처 감독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어릴 적부터 좋아했거든요. 정말 데이빗 핀처의 작품은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좋아해요. 이야기를 아예 창조해서 만드는 감독이 아닌 연출을 하시는 분이에요. 어떤 영화를 가지고 본인의 스타일로 연출을 해내죠. 그게 감독으로서 가장 큰 역량인 것 같아요.
 

사진=하윤서 기자 h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