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앞으로 안성기 선배님한테 업힐 여배우들은 긴장 좀 해야할 걸요? 제가 그 표준 몸무게가 됐거든요”라며 박수치며 웃는다. 배우 한예리의 이야기다. 최근 영화 ‘사냥’을 통해 함께 열연한 안성기가 “한예리 씨를 업고 뛰는 신이 있었는데 정말 너무 가벼워서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라고 수시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맞다. 한예리는 가녀리다. 키도 크지 아니하고 선도 가늘다. 하지만 충무로에 그가 가지고 있는 무게는 그 누구보다 묵직하다. 그래서 다른 의미로, 영화계의 큰 어른으로서 안성기가 인정한 여배우의 표준 몸무게가 될 한예리다.
단편영화부터 독립영화, 그리고 상업영화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섭렵해왔다. 연기를 넘어 그리고 이제는 쌍꺼풀이 없다는 뜻의 ‘무쌍’ 여배우의 시발점으로 미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대표 여배우로 대중들의 사랑을 한껏 받고있다.
최근 영화 ‘사냥’의 ‘양순’으로 열연한 한예리와 제니스뉴스가 서울 삼청동의 한 까페에서 만났다. ‘사냥’은 금맥이 발견된 산을 차지하려는 엽사들과 본의 아니게 이들에게 엮인 ‘기성’(안성기 분)의 치열한 추격과 도주를 그린 영화다. 그 가운데서 ‘양순’은 ‘기성’이 지켜야만 하는, 엽사들에겐 처치 해야하는 인물로 위치한다.
한예리에게 영화 ‘사냥’의 장르는 드라마였다. 추격 스릴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양순’을 연기한 한예리에겐 드라마로 다가왔다. 한예리의 ‘양순’은 영화의 감정을 조율한다. 숨막히는 추격, 이익 추구를 위해 치달리는 엽사들 속에서 양순만이 세상과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다. 덕분에 스크린이 양순의 얼굴을 비출 때면 관객들은 긴장의 끈을 풀고 다소 편안한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숨은 웃음이 섞이기도, 눈물에 젖기도 했다. 그렇게 한예리는 안성기와 함께 ‘사냥’에 담긴 정서의 축을 받쳐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양순’보다는 안성기 선배님이 하신다는 게 중요했어요. 그 뒤에 ‘양순’이 다가왔고, 지적 장애인 역할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도 눈길이 갔고요. 영화가 처음엔 추격 액션 스릴러 위주로 홍보가 돼서 ‘드라마가 잘 안 나왔나?’라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어요. 하지만 실제 영화는 ‘기성’과 ‘양순’의 드라마가 제대로 담겨 다행이란 마음이 들었죠”

배우에게 있어 지적 장애인 연기는 자신의 내공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도전과제다. 문소리가 ‘오아시스’(2002)를 통해 베니스영화제 신인배우상을 수상을 했고, 류성룡은 ‘7번방의 선물’(2013)을 통해 천만 배우가 됐다. 하지만 ‘양순’에 대한 접근은 그런 단순한 측면으로 바라볼 건 아니었다. 양순은 그 표현이 넘쳐도 문제, 모자라도 문제가 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정말 연기해내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모든 걸 비워야 하는 게 양순이었어요. 단순해야 했고요. 너무 고민을 많이 하면 과하게 보이더라고요. 정말 쉽지 않았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아요. 다음엔 비슷한 역할이지만 모든 걸 쏟아낼 수 있는 연기를 한 번 더 해보고 싶긴 해요.”
극 중 양순은 ‘팔푼이’라 불린다. 혹시 비슷한 지점이 있을까? 물어봤다. 그러자 “‘팔푼이’의 정확한 사전적 정의를 잘 모르겠다”길래 일종의 백치미로 합의를 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분명 똑부러지는 성격인 건 알겠다”고 전제를 한 후였다.
“아마도 있겠죠? 백치미라는 거? 분명 허술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있으니까요. 음…, 저 기계 잘 못 다뤄요. 그 사과 회사 핸드폰이 제겐 너무 똑똑한 거예요. 더 이상 얘를 데리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럴 땐 참 바보 같아요.”
‘사냥’ 속의 한예리는 참 연기를 잘해냈다. 극중 양순은 강원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안성기도 인터뷰를 통해 “사투리 연기 중에 가장 어려운 게 강원도 사투리”라고 꼽을 정도였다. 보통 연기자가 사투리 연기를 해내면 제작보고회나 언론시사회 이후 사투리에 대한 질문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번엔 그런 과정이 없었다. 정말 실제처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예리에게 사투리 연기는 차선의 문제였다.
“사투리의 경우 양순이가 말이 많지 않고, 대사로 애드리브를 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것보다는 이 친구가 부족하지만 건강하고 에너지 있게 보일까가 더 중요했던 거 같아요. 산에서 나고 자란 아이, 분명 연약해 보이지만 강한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보다 순수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성이 양순이에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기술적인 연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남자들이 득실대는 이번 ‘사냥’에 한예리는 말 그대로 홍일점이었다. 선배 배우나 스태프의 예쁨을 독차지 했을 법도 한데, “남성 배우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 줄 모르겠다. 여배우라고 특별히 챙겨주는 것은 없었다. 양순이가 여성으로 보이는 캐릭터는 아니어서 더 그런 것 같다”며 볼멘 소리를 했다.
“오히려 안성기 선배님께 보살핌을 많이 받았어요. 특히 비 맞는 촬영 당시 제가 추위에 몸을 떨고 있으니 계속해서 걱정해주셨죠. 너무 감사했어요. 사실 가장 힘든 게 추위였어요. 제가 추위에 정말 약하거든요. 겨울에, 그것도 산에서 촬영하니 정말 힘들었죠. 또 화장실도 너무 멀었어요. 멀리 갈 땐 40분 넘게 이동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영화 속에서 한예리는 거구의 조진웅을 단숨에 업어 치는 액션 연기를 펼친다. 작은 몸에 그게 가당키나 할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신이기에 관객들이 깜짝 놀라는 지점이다. 한예종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기에 보여줄 수 있는 –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척사광’처럼 - 몸놀림이었을까? 이에 한예리는 손사래를 치며 “조진웅 선배님 덕”이라고 그 공을 돌렸다.
“제가 이번 작품 들어가면서 낙법 같은 것을 배우기는 했지만요. 그 작품은 조진웅 선배가 워낙 베테랑 액션 배우다 보니 가능했던 장면이에요. 업어 치는 장면은 넘어가는 배우가 잘 해줘야 한다는데, 정말 그럴싸하게 자연스럽게 잘 넘어가 주신 거죠. 그래서 더 좋은 장면으로 보여진 거 같아요. 단지 제가 힘이 약한 편은 아니기에 더욱 잘 맞은 감은 있어요. 하하하”
‘사냥’ 촬영이 힘들었을 법한데, 한예리는 곧바로 문경새재로 향했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촬영 때문이었다. 천하제일검 척사광으로 무협 액션 연기를 펼친 한예리는 “폼 잡는 거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면서, “다음에도 무협 연기를 또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정말 끊임 없는 연기 욕심이다. 실제로 한예리는 오는 22일 JTBC에서 방영하는 ‘청춘시대’의 촬영을 하는 중이었다. 그럼 일 욕심이 이리 많아서야 연애는 하고 있는 걸까?
“몇년 동안 못한 상태예요. 소속사에서 막는 것도 아닌데, 같은 소속사의 이제훈 씨도 6년 동안 연애를 못했다잖아요. 이쪽 일을 하다 보면 인연을 맺는 것이 어려워요. 이상형이요? 개인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요. 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한 사람. 아직까지 제 주변에서는 못 본 거 같아요. 신체가 건강하면 정신이 덜 건강한 거 같고, 두 가지 모두 갖춘 사람을 만나기 참 힘들어요.”

그럼 ‘사냥’에서 함께 연기한 안성기, 조진웅, 권율 중엔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냐고 물었다. 한 사람은 신뢰가 가고 자상한 남자, 한 사람은 와일드하고 박력있는 남자, 한 사람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남자였다. 이에 한예리는 “안성기 선배님!”이라고 바로 답했다. 안성기 선배님은 몸과 정신이 다 건강한 이상형의 표본이지만 조진웅 선배는 술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것, 권율 씨는 체력이 자신보다 약간 약하다는 이유였다. 그럼 “시아버지로서 안성기 선배님은?”이라고 되물으니 너무 좋단다. 그래서 농담을 던졌다. “안성기 선배님 두 아드님이 아주 훈남”이라고.
“저보다 어려서 안 돼요”라며 박장대소하는 한예리에게 요즘 욕심 내고 있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단 뻔한 대답인 ‘연기’는 제외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아, 연기라고 답하려 했는데 너무 뻔했죠? 하하. 지금은 건강에 가장 욕심을 내는 것 같아요. 사실 건강에 욕심을 낼 나이는 아니지만, 한 테이크를 더 가기 위해 건강이 중요하더라고요. 특히 체력적으로 힘든 작품을 만나면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 같아요. 제 몸 상태가 건강해야 끝까지 만족스럽게 촬영할 수 있잖아요. 연기가 아닌 건강 때문에 촬영이 안 될 때는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한예리는 최근 한 프로그램 촬영 차 아르헨티나를 다녀왔다. “하늘이 너무 맑더라고요”라며, “먼 나라에서 좋은 환경을 느끼며 좋은 사람들과 지내는 게 참 행복했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무용 전공자답게 “탱고를 배우고 한국 무용을 알리는 게 참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연기가 가장 행복할 배우이기에, 인터뷰를 마치며 앞으로 더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을 물었다.
“악역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가 눈매가 매섭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거든요. 그래서 소속사 대표님이 신인 때부터 항상 눈에 힘 풀라고 했고, 악역도 시키지 않으셨어요. 진짜처럼 보일까봐요. 그런서 장희빈이나 장녹수 같은 역할에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해볼 만한 것 같아요."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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