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정유미는 충무로의 대들보 같은 배우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그리고 드라마까지 그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자신은 배우니까, 연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말 그대로 ‘연기자’다.
정유미가 ‘부산행’을 통해 관객들과 마주한다. 유료시사 진행으로만 56만 명을 끌어 모은 그 화제의 작품이다.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극찬 받으며 이미 쾌속질주를 예고한 바 있다. ‘부산행’에서 정유미가 연기한 ‘성경’은 만삭의 임산부로 똑 부러지는 성격과 정의로운 심지를 가진 여성이다.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영화 속에서 가장 주목 받은 ‘상화’(마동석 분)와 부부 호흡을 통해 단연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정유미를 제니스뉴스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슈가 되는 작품인데도 오히려 덤덤한 자세로 이야기하는 정유미. 그와 나눈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이번에 임산부를 연기했다. 임부복을 입고 촬영했는데 요즘 임산부들 사이에서 핫한 스타일이라 들었다.
의상팀에서 준비해주신 건데, 의상팀이 입어보고 감독님과 함께 여러 상의를 하신 걸로 알아요. 이번 영화에서 제 옷이 딱 한 벌이었는데, 튀지않고 스며드는 게 중요했어요. 적정선에서 알맞게 고른 것 같아요. 사실 여름 촬영이라 많이 더웠는데 민소매여서 다행이었어요. 의상팀과 소재를 얇은 걸로 하기로 상의하기도 했고요.
만삭연기라는 게 작은 움직임부터 여러 디테일이 필요했을 것 같다. 특히 달리는 신이 많아서 더 그랬다.
맞아요.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잘 만들어주셨어요. 특히 배를 나오게 하는 부분을 특수분장팀에서 잘 해주셨거든요. 배가 나오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대요. 그래서 저처럼 마른 사람에게 맞는 체형으로 만들어주셨고요. 워낙 그런 작업을 많이 하셨던 분들이라 노하우가 있더라고요. 많이 더울 수도 있었는데 탈부착이 가능하게 만들어주셨어요. 푹신한 소재라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그러고 잠을 잔 적도 있고요. 오직 밥 먹을 때만 풀어놨어요. 이게 자연스럽게 배가 나오니 허리가 펴지는 느낌도 들고, 여하튼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상화(마동석 분)와 성경의 전사가 부족한데, 마동석 씨는 상화에 대해 '전직 조폭이 아니었을까?'라고 언론시사회 때 답했었는데.
아마 즉흥적으로 대답한 거 같아요. 이번 영화에서는 전사를 꾸미진 않았어요. 저희가 부부로 나오지만 함께 하는 호흡이 짧게 짧게 이어졌어요. 워낙 헤어졌다 만나고 헤어졌다 만나니까요. 그 안에서 서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했던 거 같아요. 아마 저희 부부가 서로 어울리게 보여지는 지점이 있었다면 그건 현장에서 서로의 집중이 맞아 떨어진 것들이 보인 거 같아요.
부부로의 모습이 너무 좋아보인다는 평이 자주 눈에 띈다.
무대인사도 1박2일로 다녀왔는데, ‘많은 분들이 마동석 선배에게 열광적이구나’ ‘많은 분들에게 공유 선배가 인기구나’ 그런 생각을 한 거 같아요. 덕분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유독 힘들었던 장면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힘들었던 건 하나도 없었어요. 힘들려고 이 영화를 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저희 일이잖아요. 물론 영화 내용은 힘겨운 부분이 있었고, 더위 때문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저희보다는 액션 배우, 단역 배우, 좀비 배우분들이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아요. 그래서 그분들 대신에 이렇게 홍보도 하고 인터뷰도 하는 거고요.

좀비 영화라는 것이 여성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성경 역이 여성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제시하고 있다.
만삭의 몸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분명 공감하실 수 있는 지점도 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좀비가 있다면?
메인 좀비가 있어요. 알아볼 수는 없지만 군데군데 많은 역할을 하셨어요. 움직임이 참 다양하신 분들인데, 그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좀비들의 움직임이 대단한데, 그 동작을 따라해 본 적은 있나?
해보긴 했는데…. 따라한다고 되는 건 아니라고요. 그걸 하면서 달려들어오는 배우들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CG도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몸으로 연기를 하셨어요. 비보이 출신들과 무용 전공자들이 앞장서서 연기를 해주셨고요.
현장에서 보고 있으면 체감도 되고 무서울것 같기도 하다.
신기했어요. 제가 좀비물을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좀비라고는 우리 영화에서 표현되는 좀비가 처음이었어요. 특히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분장하면 서로 달라지는 부분들이 신기했어요.
극 중에서 좀비를 한 명도 못 잡은 게 한이 되지 않나?
그것보다는 직접 좀비가 돼보지 못한 게 한이 돼요.

어떤 좀비가 되고 싶었길래?
글쎄요. 어떤 좀비가 될까 궁금해요. 참 다양한 좀비가 나오잖아요. 등산객 좀비, 학생 좀비, 승무원 좀비, 야구 좀비까지요.
그럼 임산부 좀비를? 그거 너무 슬픈 거 아닌가?
임산부 좀비를 하고 싶다기 보다는, 좀비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좀비 연기를 하는 분들이 너무 잘 하셔서요. 우리나라에서 좀비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좀비물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분명 우리나라에선 낯선 장르다.
두렵다는 느낌은 하나도 없었어요. 오히려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했고요. 좀비 영화긴 하지만 시나리오에 힘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소재 때문에 우려되는 부분은 없었고, 호기심에 감독님을 만난 뒤엔 더욱 확신이 들었어요. 감독님과 꼭 작업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연상호 감독이 실사 영화는 처음 아닌가?
실사 영화가 처음이라고 해서 두려울 게 없었어요. 작품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에게 느껴지는 막연한 기대감이 좋았거든요. 시나리오에 대한 신뢰가 분명했어요. 그래서 감독님 뵀을 때도 제 기대와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처음부터 기분이 좋았어요.
다른 건 몰라도 성경에게 태어나는 아이는 참 바르게 크겠다 싶었다. 정의롭고 똑부러지니까.
재난 상황 속에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분명 있어요. 그걸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은 다를 것 같아요. 작업을 같이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다 다르니까요. 물론 이 영화가 오락적 재미를 추구하지만 지나가는 마음으로라도 그런 메시지를 읽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마음 한 켠에 ‘저런 사람이 되면 큰일나겠다’는 생각만 자리해도 좋고요.
수안이와 함께하며 예비 엄마의 포스도 풍겼는데, 수안이와 호흡은 어땠나?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평소엔 그냥 애기인데, 같이 연기 할 땐 선배 배우님들과 연기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동료 배우 같이 너무 든든하고 좋았죠. 마지막에 둘이 손잡고 가는 신이 있어요. 그게 스크린엔 보이진 않지만 배우들끼리 호흡이 있거든요.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손을 쥐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교감이 오갔어요.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고 고마운 경험이었어요. 또 그게 마지막 촬영이었거든요. 참 덥기도 더웠고, 오빠들 없이 수안이와 둘이 찍는 날이었는데 그런 걸 느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우스갯소리로 여자 기자들이 ‘부산행’을 보고 "나도 싸움 잘 하는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던데?
저도 못 하는 것 보다는 잘 하면 든든할 것 같아요. 이상형까지는 아니지만 굉장히 든든했달까? 비겁한 사람보다는 훨씬 낫죠.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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