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의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 신장 186cm의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는 물론이고, 무대와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약하는 출중한 연기력에 노래 실력까지 두루 겸비한 배우 송원근과 강동호, 그리고 신성록이 그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송원근은 2014년 ‘쓰릴 미’ 이후 약 2년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강동호는 제대 후 첫 작품 ‘쓰릴 미’에 이은 차기작으로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를 선택했다. 무대 위 송원근은 마치 드라마 속 ‘실장님’ 같은 정석 ‘제르비스 펜들턴’으로, 강동호는 귀여운 막내 도련님 같은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 잡고 있다.
무더위가 정점을 찍던 8월의 어느날, 서울시 중구 장충동의 한 카페에서 제니스뉴스가 두 사람을 만났다. 한낮의 태양이 내리쬐는 야외에서의 화보 촬영이 힘들었을 법도 한데, 시종일관 밝은 얼굴로 함께 나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작품의 넘버들이 다 너무 좋다. 가장 애착이 가는 넘버가 있다면.
송원근: ‘나의 맨하튼’. 왜냐하면 가사가 너무 많아서 힘들었다(웃음). 사실 쇼케이스 때 이 곡을 불러야 된다고 해서 너무 스트레스 받았다. 연습 중간이었는데 내가 불러야 한다고 해서, “왜 꼭 ‘나의 맨하튼’을 해야 하냐. 왜 꼭 가사가 많은 이걸 해야 하는지 나에게 설명해줘라” 했다. 하하. 그랬더니 넘버들이 다 서정적인 노래가 많아서 그나마 좀 신나고 남성적인 노래를 해야한다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 그래서 가사도 진짜 안 외워지는데 몇날며칠을 ‘나의 맨하튼’만 중얼거리고 다녔다. ‘나의 맨하튼’이 너무 좋다, 나랑 잘 맞는다가 아니라 그래서 애착이 간다(웃음).
강동호: 제일 마지막 노래 ‘올 디스 타임(All this time)’ 이다. 제르비스는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마음 고생을 나름 했고, 제루샤에게 어떻게 보면 큰 잘못을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사랑 앞에 와해가 되고, 모든 여정의 끝, 이제 드디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넘버다. 어떻게 보면 뻔할 수 있는 곡인데 이상하게 연습할 때부터 그 넘버만 나오면 뭉클뭉클하고 좋더라. 공연하면서도 실제로도 그 장면이 제일 좋다. 너무 예쁘지 않나.
작품 속 넘버들의 난이도가 상당한 데다 대사도 많다.
송원근: 개인적으로 여리게 높은 음으로 부르는 걸 굉장히 힘들어 한다. 막 지르는 건 쉬운데 여리게 높은 음으로 부르면 정말 막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상자를 쌓아올린 다음 산 위로 올라가서 소나기 피해서 재킷 벗어주고 ‘행복의 비밀 리프라이즈’를 높게 부르려니까 그게 좀 힘들었다. 여리게 높게 부르는 노래들은 다 힘들다. 그냥 다 질러버리고 싶다(웃음).
강동호: 넘버보다 대사가 힘들었다. 대사를 언더스코어 타이밍 안에 해야 한다. 보시는 입장에서는 못 느끼시겠지만 우린 다 계산하고 한다. 보이지 않는 약속들이 너무 많았다. 충분히 대사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데 자꾸 쫓긴다(웃음). 그러다 보니까 안하던 발음 실수 같은 게 나올 때도 있고. 솔직히 아직도 힘들다(웃음).

쇼케이스 때 다른 배우들이 연습 때 송원근 씨가 울었다고 폭로했다. 어느 장면이었나.
송원근: ‘자선사업’ 부를 때 되게 허탈했다. 내가 이 친구를 여자로써 좋아하는데 ‘자선사업’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난 결국 후원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잡지도 못하고. 이게 뭐지? 내가 자선사업을 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우리 가족들의 삶은 별로고, 나는 뿌듯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사랑을 느껴버렸으니 앞으로 난 자선사업을 하면 안되는건가?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근데 이 사랑하는 여자는 어떡하지? 막 이렇게 너무 복잡하니까 짠한거다. 그래서 그때 눈물이 났었다(웃음). 그런데 그때부터가 사실 제르비스의 감정은 시작인 것 같다. 울어서 너무 창피했는데 성록이도 “울 수 있지 뭐, 괜찮아” 그래놓고는 자기 런스루 돌 때 제루샤가 “남은 3천 달러 갚을게요” 그러니까 막 오열을 하고 그랬다.
작품 속 제르비스는 사랑에 서툰 모습이다. 두 사람은 실제로 어떤가.
송원근: 나는 제르비스가 사랑에 서툴다고 계산했는데 내가 그랬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된다. 제르비스처럼 여자 앞에서 고백에 서툴지는 않다. 물론 누가 사랑에 완벽하겠나. 사람들이 내가 노는 거 되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이럴 거 같단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20대 중반까지 교회 찬양집회 다니고 그랬다. 제르비스처럼 정직하게 사는 건 좀 비슷할 수 있겠다. 그 외엔 비슷한 게 없다.
강동호: 과거의 일이다. 어릴 때나 그런거지. 하하. 남자들은 다 그런 경험 있을 거다. 질투하고, 괜히 질투나는데 아닌 척 하고, 뭐 하려다가 더 창피해서 이불킥하고. 나도 그런 적 있다. 어렸을 때 좋아하는 여자한테 고백을 했는데 거절 당했다. 그런데 그날이 마침 만우절이어서 “만우절 장난이었어” 이랬는데 답이 없어서 창피했다. 차라리 그 말이나 하지 말걸(웃음).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서 또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할 수 있을지 그건 모르겠는데 옆에서 보면 되게 귀여운 것 같다.
작품 속 대사도 그렇고, 넘버의 가사도 그렇고 마음을 울리는 것들이 많다. 명대사를 뽑는다면.
송원근: ‘행복이란 현재를 살기’. “행복이 뭐야?”라고 물어봤을 때 “돈 많이 벌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살면 되는거지”가 세상 사람들의 말이다. “지금 이렇게 사는 현재가 제일 행복한 거 아니겠어?”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나에게 “뭐가 행복한거야?”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행복하냐? 인생이 100% 행복한거면 죽어야지. 행복하자고 사는건데. 내 인생이 20%만 행복해도 행복한거다” 이런 마인드였는데, ‘현재를 살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 별거 아닌 ‘현재를 살기’인데. 이 작품에서는 현실적으로 와닿는 대사들이 많지만 ‘현재를 살기’가 가장 와닿더라. ‘그냥 이렇게 살면 행복한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
강동호: 제루샤 대사 중에 그런 게 되게 많다. “모든 행복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거죠”. 사실 군대에서 모든 일을 의무로 하고 왔다. 그게 되게 힘들었다. 나 역시도 애들한테 시키면서 부당하고 왜 해야되는지 모르겠는데 해야하는 게 군대라는 집단이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와 닿나 보다. 모든 행동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해야 된다(웃음).

작품을 보기 전에는 사랑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성장의 이야기도 있고, 힐링도 되더라.
송원근: 제루샤가 성장하는 만큼 제르비스도 성장한다. 제르비스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자선사업을 하면서 거기서 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루샤라는 친구의 편지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거기서 사랑을 느낀다. 제루샤를 고아를 떠나서 한 여자로 보면서 자기도 그런 시선들에서 많이 벗어나고, 앞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다른 삶을 살 것 같다. 작품을 보시면 내가 목적하고 살아가는 삶이 있더라도 그 외의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게 사랑이든 일이든 한곳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좀 더 둘러보게 되지 않을까. 남자친구와 싸웠는데 이걸 봤다면 소중함도 알 것이고,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좀 더 열심히 살아볼 것 같고. 그런데서 힐링을 주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강동호: 쇼케이스에서도 말했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얄미울 정도로 굉장히 지켜야 할 것이 많다. 불편한 것도 많고 자유로운 작품은 아니다. 백조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공연 올리고 나서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잘 만들어져 있고, 구성이 탄탄하다. 완성도가 높은 공연이다. 기존의 ‘키다리 아저씨’를 생각했을 때 지루할 것 같다는 편견은 버리고 오셔도 좋을 것 같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제루샤라는 인물을 통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드는 뮤지컬이다. 안보면 후회하실 거다.
기획 진행: 소경화 기자 real_1216@
포토: 이준영 포토그래퍼
영상촬영, 편집: 신승준 기자 ssj21000@
의상: 테이트, 카이아크만, 비욘드클로젯, 라코스테 라이브
슈즈: 금강, 닥터마틴, 프레드페리
헤어: 스틸앤스톤 수아 실장, 라뮤제 수기 부원장
메이크업: 스틸앤스톤 민정 실장, 라뮤제 박연숙 원장
장소: 카페105
사진=제니스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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