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리뷰] '최악의 하루'? 영화를 보고나면 괜찮을 하루
[Z-리뷰] '최악의 하루'? 영화를 보고나면 괜찮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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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최악의 하루’였다. 하지만 ‘최고의 하루’도 될 수 있었다.

‘최악의 하루’였다. 이제 막 조명 받고 있는 배우 ‘현오’(권율 분)는 촬영 중에 짬을 내 여자친구 ‘은희’(한예리 분)를 만났다. 그런데 후드 티에 마스크,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났다고 화를 낸다. 이에 애교도 피웠지만 아뿔싸, 은희를 부르며 외쳐버렸다. “유경아”라고.

‘최악의 하루’였다. ‘운철’(이희준 분)은 한때 사귀었던 여자친구 ‘은희’에게 매달린다. 알고 보면 이혼남에 전부인과 재결합할 상황이지만 “진실이 진심을 어떻게 이기냐”며 자신의 마음을 강조한다. 그 속내야 남자라면 뻔히 예상될 상황. 하지만 은희는 운철의 이기심을 탓하며 눈물을 흘린다.

‘최악의 하루’였다. 소설가인 ‘료헤이’(이와세 료 분)는 출판기념회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기대도 없이 왔지만 정말 남을 것 없는 행사였다. 출판사 사장은 약속 시간도 어겼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거짓을 말한다.

‘최악의 하루’였다. 은희는 안다.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이 뿌려놓은 거짓말 때문이라는 걸. 수습하기 위해 하루에 몇 번씩 남산 산책로를 오르내리지만 사태의 흐름은 점입가경, 결국 양다리의 주인공들과 삼자대면 상황에 이른다.

네 사람의 ‘최악의 하루’는 아이러니하게도 어여쁘게 그려진다. 김종관 감독 특유의 서정적인 영상미 덕이다. 감독이 적을 뒀던 서촌과 서울의 랜드마크 남산이 서정적으로 담겼다. 그 아름다움 위에 네 사람의 최악의 하루가 최고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하루로 변주된다.

이는 관객들도 마찬가지. ‘최악의 하루’를 보내던 이도 영화를 마주한 순간 괜찮은 하루를 맞이한다. 영화는 거짓말들을 나열하며 발칙한 상황을 만들지만, 과거 그런 경험 없는 이는 없을 것이다. 공감 가는 대사와 에피소드, 누구나 비밀리에 감춰왔을 찌질함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불킥’ 하고 싶은 기억을 되살린다.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최악까진 아니었던 하루일 터다.

영화의 장점을 꼽자면 여럿 있겠지만 그 중 제일은 대사다. 톱배우 병에 걸린 듯한 능글 맞은 현오의 대사와 뻔뻔함의 극을 달리는 운철의 대사, 그리고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는 은희의 대사들이 그렇다. 대사들의 위트가 살아있음은 물론이고, 각 상황 속의 최악의 대사일 수도, 최선의 대사일 수도 있기에 관객들의 마음이 녹아들 수 밖에 없다. 좋은 대사를 훌륭한 연기로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나아가 반대 지점에서 오고가는 침묵의 대사들은 김종관 감독이 살린 연출의 묘다. 바로 료헤이와 은희의 대화다. 두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설픈 영어로만 오가는 대화들. 하지만 그 속에 느껴지는 감정의 교류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두 사람의 대화는 영화 끝자락에 정점을 찍는다. 이와세 료라는 배우의 목소리를 십분 살린 료헤이가 읊는 일본 시조, 그리고 무용학과 출신인 한예리의 전공을 십분 살린 은희의 춤이 그렇다.

그렇게 영화 ‘최악의 하루’는 관객에게 ‘괜찮은 하루’를 선물한다. 극장 앞에서 이런 삼삼한 영화를 그냥 떠나 보낸다면 오히려 ‘최악의 하루’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최악의 하루’는 25일 개봉한다.

 

사진=CGV아트하우스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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