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매주 일요일마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서흔이 아빠’로 맹활약 중인 오지호.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외모, 특히 특유의 눈웃음은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홀렸었지만, 이젠 한 여자의 남편으로 그리고 한 아이의 아버지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런 오지호가 스크린을 통해 깊은 구석 숨겨놓았던 악한 마음을 꺼내 들었다. 물론 배역 이야기다. 액션에 강한 배우이기에 ‘첫 악역’이란 말이 조금 의아하게 들릴 수 있겠다. 하지만 오지호는 영화 ‘대결’의 한재희를 통해 생애 첫 악역을 소화해냈다.
‘한재희’는 어린 시절 부모를 죽인 과거가 있는 현 유명 게임회사의 CEO다. 하지만 본성을 숨기지 못하고 브로커를 통해 당대의 싸움꾼들을 만나 ‘현필’(현실 플레이어 킬이라는 게임 용어)를 즐기는 인물이다. 다소 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그게 바로 영화 ‘대결’의 묘미이기도 하다.
배우 오지호와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호탕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인터뷰 자리, 그 분위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이번 영화와 마주하는 오지호 씨의 기분이 아주 좋다고 소문났다.
하하. 일단 언론시사 끝나고 기자분들 반응이 좋으니까요. 저희야 처음 봤을 땐 ‘아 그래도 영화가 깔끔하게 나왔다. 남자분들은 향수를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여성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는데 영화가 깊게 파고들지 않았기에 잘 된 것 같아요.
제작보고회 끝나고 열렸던 미디어데이 땐 약간의 염려도 내비쳤는데.
처음엔 너무 만화 같다는 생각이 있었으니까요. 40대 이상은 ‘취권’의 향수가 있는데 ‘젊은 세대가 과연 공감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많았죠. 흥행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제 몫은 하지 않았나 싶었어요.
‘대결’을 통해 데뷔 첫 악역을 맡았다. 악의 축을 깊게 파고들진 않았지만 마지막에 나왔던 표정 연기는 임팩트를 주기 충분했다.
일부러 깊게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많은 분들이 캐릭터 연구에 관해 물어보시는데 동작을 많이 생각했어요. ‘어떤 동작이 비열하게 보일까’를 생각했죠. 취조실 속에서의 행동도 경찰이 내 아래라고 생각하는 인물의 느낌을 그린 후에 거울을 보고 연습했어요. 마지막 신은 애드리브였어요.
사실 악한 역할의 오지호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웃음과 감동이에요. 드라마적인 부분과 현실의 희로애락이 가장 자신 있어요. 예를 들면 ‘너는 내 운명’ 같은 현실적인 드라마나 샐러리맨 같은 캐릭터요 가벼운 일상 속 애환을 표현하는 게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이긴 해요.
하지만 요즘엔 로코 영화 제작이 많이 줄었다.
우리들의 숙제이자 한국 영화의 숙제죠. 캐릭터도 반전 없으면 안 보려고 해요. 대중이 너무 똑똑해졌어요. 그 수준에 맞춰 가다 보면 기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건 적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악역이라니 시나리오를 보고 당황도 했겠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어요. 시나리오 보면서 ‘왜 나에게 악역을 하자고 하지?’ 그랬어요. 이야기도 너무 만화 같았고 ‘이런 건 우리 어릴 때나 본 건데’ 싶었죠. ‘대중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처음에는 정말 단순했거든요. 그냥 딱 권선징악, 형의 복수를 위해 취권을 배워 무찌르는 거였어요. 감독님 만나서 “제가 악역을 해드릴테니”라며 여러 제안을 했어요. 설정도 의사에서 게임회사 CEO가 됐고, 대사도 바뀌었고요. 감독님 잘 수용해서 녹여주신 거 같아요.
처음 해보는 악한 역할은 재미있던가?
재미있었어요.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역할이잖아요. 영화 속에서 연기로 하니까 새로운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처음에 가졌던 새로운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도 저런 모습이 있구나’로 바뀌었죠. 사실 제 안에 저도 모르는 악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눌러왔던 걸 연기로 내뿜는 거니까 스트레스의 해소가 될 수도 있고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한재희’ 보다 딥한 악역은 나중에 또 다른 기회가 있으면 하고 싶어요. ‘추격자’의 하정우 씨 역할도 좋고, ‘아수라’의 정우성 선배처럼 형사인데 악행을 저지르는 역할도 하고 싶어요.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해야겠죠. 아마 제 얼굴로 딥한 악역은 어려울 것 같긴 해요. 얼굴에 스크래치라도 넣어볼까요?
악역이라면 액션 표현도 다를 것 같다.
그간 이기는 액션, 정의로운 액션을 했는데, 이번엔 지는 액션, 비열함이 묻은 액션을 표현해야 했어요. 그 부분에서 희열이 있더라고요. 사실 주승이가 한 취권과 제가 한 칼리가 합을 짜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었어요. 취권은 느리고 칼리는 굉장히 빠른 무술이거든요.
마음에 드는 액션 장면이 있다면?
여러 장면이 있지만 초반에 외국인 노동자와 대결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친구는 실랏을 쓰고 저는 칼리를 사용하는데, 둘이 스피드가 맞아서 보다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아요. 본래 인도네시아의 실랏에서 파생된 게 필리핀의 칼리예요. 실랏엔 카포에라 같은 동작이 더 섞여 있고요. 촬영에 임한 그 친구도 실제로 실랏을 하는 친구였어요.

취권에 대한 욕심도 있었을 것 같다.
안 그래도 감독님한테 “내가 주인공이면 기가 막히게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제가 만약 취권을 했다면? 그건 제가 봐도 딱 옛날 영화 같을 것 같아요. 주승이가 해서 만화 같은 느낌으로 더 잘 나온 것 같아요. 현실적인 캐릭터도 잘 살았고요.
이주승 씨와의 호흡은 어땠나?
기본적으로 진지함이 묻어나는 배우예요. 주승이는 뭔가 모를 매력이 있어요. 어떤 역할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나이 들면 송강호 선배처럼 모든 캐릭터가 잘 녹아들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제가 갖지 못한 느낌이죠. 그런 부분은 저에게도, 주승이에게도 숙제인 거예요. 이를테면 주승이가 흔히 말하는 멜로 영화 얼굴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걸 잘 해내면 숙제를 해내는 거죠.
이주승 씨는 체력 훈련이 그렇게 힘들었다던데, 나이로 보면 더 힘들었을 일 아닌가?
주승 씨가 힘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액션이 처음이잖아요. 저도 처음 할 때 많이 힘들었어요. 체력 단련이라는 게 기본적인 찌르기와 구르기를 한 시간 동안 해야 돼요. 그런 게 참 힘들어요. 제가 액션스쿨 안 가는 이유가 그걸 너무 시켜서 그래요. 하하. 저는 이번 액션을 하며 견자단의 액션을 보고 연습했는데, 사실 나이를 들면 발차기 높이가 점점 낮아지는 거 같아요. 다른 동작은 괜찮은데 발차기만큼은 골반 유연성이 떨어지는 게 느껴져요. 그래도 50살까지는 유지하고 싶어서 헬스장에 가서 계속 연습하고 있어요.
소재가 소재인 만큼 현장에서 술이 끊이지 않았을 것 같고, 그래서 즐거웠던 현장이었을 것 같다.
전 일정이 바빠서 현장에서 술을 별로 안 마셨어요. 요즘 현장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엔 정말 촬영 끝나면 바로 술이었고, 촬영하다가도 마시기도 했는데 요즘엔 시간 제약도 많고 스케줄도 타이트해요. 개인적인 시간도 존중해주는 분위기고요. 그리고 정근이 형과 주승이가 술을 많이 마시는 게 정답인 영화이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큰 공을 주승에게 돌리고 싶지만 전 정근이 형이 연기한 황노인의 역할도 참 좋았어요. 취권을 녹이는 매개체였어요. 현시대엔 그런 사람 보기 힘들잖아요. 하지만 저희 어렸을 땐 누구나 그런 존재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살지 않았나요?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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