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② 언제나 죽여주는, Be yourself!
[Z인터뷰]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② 언제나 죽여주는, B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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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쉽지 않은 소재다. 하여 어렵게 비쳐질 수도 있다. 시나리오를 받아 든 윤여정의 소감도 그랬다. 무겁고 칙칙하여 영화 전체가 그렇게 그려지지 않았을까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죽여주는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윤여정은 “따뜻하면서도 잔잔했고, 깨끗하진 않았지만 담백했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소영’을 연기한 배우 윤여정과 제니스뉴스가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소영’의 직업은 ‘죽여주는’ 성매매 할머니다. 직업에서부터 연기하기 녹록하지 않았음이 엿보인다. 하지만 ‘소영’이 죽여주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바로 친분 있던 영감님들의 존엄사를 돕는 역할을 한다. 이 또한 쉽지 않을 감정이었다.

▶ 1편에서 이어

윤여정은 나이 많은 배우 중 가장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중 하나다. 하여 윤여정은 자신의 여생 혹은 남은 배우 인생을 이야기함에 있어 거리를 두지 않기로 유명하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에 많은 이들이 그에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죽음을 마주하는 자세, 그 부분만큼은 소영과 윤여정의 공통분모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됐다.

“내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도 많이 했다. 벌써 90세가 넘은 엄마를 보면서 느낀 건 생명은 유한하지만 85세가 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나 내리막길이다. 대중들은 죽는다는 것에 대해 기피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죽음이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소년기-장년기-노년기를 향해 가고, 꽃도 피고 지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주변 친구들이랑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스위스의 조력 자살이라는 것도 알아봤다. 스위스에 사는 친구한테 잘 알아보라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걱정인 부분은 ‘그때 내가 판단력이 있을까’이다. 아마 더 살고 싶어할 것 같다. 그게 바로 판단력을 잃은 지점이다.

그런데 조력 자살이 까다롭다. 친구가 알아본 결과, 외국인들을 받는 기관이 2군데가 있는데 조력 자살을 하게 되면 시체 처리를 할 사람이 같이 가야 된다고 했다. 과연 그걸 누가 가줄까? 그래서 아직까지 연구 중이다.

의사 친구한테도 물어본 적 있다. ‘세상이 힘든데 나 죽여줄 수 있냐’고. ‘할 수는 있는데 너 죽이면 나 감방 가’라고 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거다. 천년만년 살면 뭐 어쩔까? 내 뜻대로 사느냐가 문제인 거다. 인생이 내 계획대로 안 된다

죽음에 대해 초연한 윤여정이었지만, 영화 속 소영은 타인의 죽음을 도울지언정 자신의 목숨을 해하진 않는다. 오히려 소영을 바라보면 지난 시절에 멈춰있음을 느낀다. 그 시절은 자신이 가장 아름다웠을 때다. 하여 소영은 겨울로 향하는 만추의 길 위에서 봄을 꿈꾼다. 마치 낙엽 위에 피어있는 꽃처럼 말이다.

“남을 죽인다는 부분에 고민도 많았다. 죽어서야 나오는 소영의 이름이 ‘양미숙’이다. 제가 시나리오를 봤을 때 소영이는 이미 죽어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입양 보냈을 때 이미 죽었던 거다. 새끼를 버린 어미의 마음은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재용 감독에게 의상에 대해 물어봤다. 청재킷과 판타롱 바지에 혼동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 이 감독이 ‘아마 이 여자에겐 미군이 자기를 정말 사랑한다 착각하고 아이를 낳았을 시절이 화양연화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당시의 옷을 입는 걸 거다. 또 다른 성매매 할머니와도 ‘난 너희와 달라’라는 생각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남산의 정사신도 참 울컥했다. 낙엽 위에 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게 참...”

전작 ‘계춘할망’이 육체적으로 윤여정을 괴롭혔다면 이번 작품은 감정의 소모가 극심했을 작품이다. “어느 게 더 힘들었냐고 물으면 창녀가 더 힘들었다”면서, “쉬운 일은 없다. 늘 알고 있었지만 또 당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하여 “왜 이리 힘든 작품을 하냐”고 물었다.

“난 예쁜 배우가 아니다. 그래서 개성 있는 역할이 많이 들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물어본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그렇게 정리했다. 또 요즘은 내가 늙어서 작품 초이스가 아무래도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낡은 혹은 병든 역할들이 들어올 나이이기도 하다”

자조적인 이야기에 “요즘 2~30대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롤모델, 게다가 패셔니스타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패션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편하게 입는 걸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패셔니스타라고 하니까 ‘잘 입어야 하나?’라며 신경이 쓰이고 거슬리고 거북해졌다"는 이유다. 롤모델로서 조언을 구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롤모델이라는 말은 물론 칭찬이겠지만, 그냥 충고를 한다면 자연스럽게 본인이 본인답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롤모델이 있다고 누군가를 흉내 내고, 따라하는 행동 자체가 자신이 없어지는 행동이다. 영어에서 제일 좋은 말이 ‘Be yourself’. 간단한 말이지만 정말 좋은 것 같다. 나도 아니고, 쟤도 아니고. 갈피를 못 잡는 것보단 그냥 최선을 다해 내 자신 그대로 사는 것.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라면 다 예쁘다”

되짚어 생각하면 대중들이 윤여정을 좋아하고 롤모델로 삼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여정 만큼 ‘Be yourself’로 살아가며 노력하는 배우가 얼마나 될까. 본인 역시 윤여정으로 살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일에 노력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패셔니스타로는 노력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콕 찍어 강조했다.

끝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죽여주는 영화”를 물었다.

“아무래도 첫사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하녀’다. 이번에 회고전도 열린다 해서 가볼 생각이다”


사진=CGV아트하우스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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