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영화 ‘판도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김주현의 하루는 너무도 바빴다. 김주현과 제니스뉴스가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던 시간은 무려 아침 9시. 여배우의 메이크업 시간을 계산 해보니 꼬박 새벽 5시엔 일어났을 터였다.
“어제도 집에 갔더니 밤 12시가 넘어있었는데, 벌써 5일째 그러고 있어요”라며 환히 웃기에 “험난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하기엔 얼굴이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이내 돌아오는 답이 “많이 바르고 숍의 힘을 빌렸다”였다. 어여쁜 외모와는 너무나도 다른 털털한 답변, 걸크러시를 선보인 ‘판도라’의 연주를 눈 앞에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김주현이 ‘판도라’를 접한 건 SBS 드라마 ‘모던파머’ 때였다. 이하늬와 ‘연가시’를 함께했던 박정우 감독이 이하늬의 출연작 ‘모던파머’를 모니터링 했고, 곧장 방송국으로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이후 박 감독과 미팅을 하고 오디션을 보게 됐다.
“미팅 때는 감독님께서 제 생각을 많이 물어보셨어요. 무섭다거나 어려운 느낌은 없었고요. 하지만 오디션 때는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잘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연주’에 대한 애착도 컸기에 꼭 하고 싶었죠. 또 제가 오디션에 임할 때 늘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을 갖는 편이에요. 촬영처럼 최선을 다해서 봤던 것 같아요”

2007년 영화 ‘기담’을 통해 데뷔했지만 그간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는 없었다. 데뷔는 빨랐지만 무명 시절이 길었던 편, 그런 김주현에게 ‘판도라’의 연주는 분량으로 보나 임팩트로 보나 꽤 큰 배역이었다. 분명 어마무시한 부담감도 있었을 터다. 그래서 김주현은 많은 준비를 했다. 가장 인상적인 건 버스운전면허를 딴 일이었다.
“버스면허는 감독님께서 의견을 먼저 물어오셨는데 제가 따겠다고 했어요. 캐릭터에 있어서 당연히 있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저 버스운전면허 한 번에 땄어요. 하하. 그렇게 크랭크인에 들어가니 감독님께서 ‘요즘 면허는 그냥 줘?’라고 하시더라고요. 촬영에 들어가서도 매일 연습을 했어요. 면허는 땄지만 버스를 몰 일은 드물었으니까요.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사실 영화에선 훌륭히 운전하지만 시동도 엄청 꺼먹어서 애를 많이 먹었어요”
그리고 김주현은 사투리도 연습해야 했다. 본래 김주현의 고향은 경기도. 이에 반해 연주는 경상도 사람이었다. 베테랑 배우들도 사투리는 어색해 하는 부분이기에 결국 부단히 연습하는 수 밖엔 길이 없었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많은 이들이 칭찬했지만 “아무리 해도 100%는 할 수 없었어요”라며 아쉬워 했다.
“저는 현장에서 많이 혼난 배우였어요. 연기라는 게 하면 할수록 어렵고 고민도 많아지더라고요. 준비를 해가도 현장에서 바뀌는 부분이 있어 어려웠고요. 전 영화를 기술시사회 때 봤는데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이 보였어요”

사실 엄살이며, 겸손이다. ‘판도라’의 언론시사 이후 김주현에 대해 물음표를 가지고 있던 관계자들은 너도나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2016년은 김태리로 시작해 신은수를 찍고 김현주로 마감하는 한 해”라며 새로운 신인 여배우의 탄생을 기뻐했다. 그런 평가를 전하니, “올해 서른 살인걸요”라며, 미소지었다. 맞다. 동안의 외모에 잊고 있었지만 김주현은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을 맞이한 배우였다. 여느 신인 배우와 달리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것도 고개가 끄덕여질 일이었다.
“사실 신인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보통 ‘풋풋하다’에요. 전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고요. 신은수 씨랑 같이 비교되는 기사도 나오는데 정말 죽을 것 같이 부끄러워요. 저 이모뻘이잖아요. 하하. 여러 의미로 보면 신인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전 제가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작품수가 적고요, 현장에서도 부족하고 연기력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전 신인 배우예요”
그래서 신인 배우에게 으레 하는 질문을 던졌다. “배우가 된, 연기를 하게 된 계기”였다.
“이번에 인터뷰 돌면서 곰곰이 계기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사실 제가 고등학교 때 함께하던 친구들이 다 예뻤어요. 친구들 중 한 명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자고 해서 발을 딛게 됐어요. 전 사실 어릴 때부터 연예인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요.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오히려 늘 선생님이 꿈이었죠”
“그런데 제가 동아리 활동 때가 딱 사춘기 시절이었어요. 감정기복이 심한 기간이었는데 연기를 하면서 솔직해질 수 있었죠. 감정 해소도 되고 재미도 느꼈어요. 그렇게 공부를 해서 연극영화과를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땐 재미가 없었어요. 하면 할수록 어려웠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김주현은 데뷔에 비해 공백이 길었다. 본인 말로는 “절실하지 못했고, 소속사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도 서툴렀다”고 이야기했다. 주변 친구들이 모두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고민이 깊어졌다. 그때 자신에게 질문했던 부분이 ‘연기를 하지 않는다면?’이었다.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절망도 느낄 것 같았다는 답. 그래서 김주현은 그때부터 오디션을 많이 보러 다녔다.

그러다 올해 초 화이브라더스로 회사를 옮겼다. 화이브라더스는 유명 연기자들이 대거 소속돼 있는 대형 기획사다. 김윤석, 유해진, 김상호, 오현경 등 대 선배부터 주원, 이시영 등 대세 배우들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이로 인해 배우는 것도 많을 터.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번에 김윤석-김상호-박혜수가 열연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로 경쟁을 붙게 됐다.
“현장에서 선배님들 보면 아직도 신기해요.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배울 수 있는 시간이고요. 두 작품 다 잘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 장르가 서로 다르니까 그렇게 될 것 같고요. 아직 식구들에게 ‘판도라’를 봤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어요”
‘판도라’에 대해 "처음엔 선물이었고, 중간엔 배울 것이 많았고, 지금에서는 ‘성장통’ 같은 영화"라고 말하는 김주현. 인터뷰를 마치며 해보고 싶은 작품과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를 물었다.
“우선 재난영화 말고요. 하하. 정말 힘들었거든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애자’ 같은 작품이요. 엄마와 딸을 그린다는 게 참 어려운 감정이에요. 아마 남자분들은 모르실 거예요. 제가 본래는 ‘연기 잘 하는 배우’가 꿈이었어요. 공백 기간이 길다 보니 ‘항상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연기를 잘 못해냈을 때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좋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배우’를 꿈꿔요. 제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 뒤에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될 것 같아요. 앞으로 많은 노력하려고 해요”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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