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기욤 뮈소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가 쓴 미국 배경의 소설. 그 원작을 과거의 한국으로 바꿔야 하는 작업이었다. 문화적 차이나 정서적인 이질감을 줄이는 게 관건이었다. 다행히도 기욤 뮈소는 각색된 작품을 마음에 들어했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판권을 허락했다. 그리고 덧붙였던 말, “‘추격자’(2008)에서 김윤석을 보고 반했다”였다.
기욤 뮈소도 반한 김윤석과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기욤 뮈소 이야기를 꺼내자 “아마 기욤 뮈소가 아는 한국 배우가 하정우 아니면 김윤석 밖에 없어서 그렇게 이야기 했을 거다”라며 웃었다. ‘추격자’가 프랑스에 수출도 됐고, 칸 영화제에도 갔었기에 알고 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원작 소설을 스크린으로 투영하는 건 이미 ‘완득이’ 때 경험을 했다. 하지만 ‘완득이’는 한국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는 접근이 달랐다. 원작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본인 자신의 경험에 더 접근했던 김윤석이다.
“공통점이 많았다. 딸도 있고 중년이었다. 된장찌개를 끓이는 모습들, 제겐 굉장히 익숙한 일이다. 집에서 밥 해먹는 것들, 손에 물 묻히는 것들이 어색하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식당을 했던 집이기도 했다. 그런 디테일에서는 감독님이 ‘연기 한 것 맞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 요소를 안고 간다. 김윤석이 처음 본 타임슬립 영화는 중-고등학교 때 가장 뜨거웠던 ‘빽 투 더 퓨처’(1985)다. 최근 본 타임슬립 영화는 ‘어바웃 타임’이었다.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는 같지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김윤석에게 주는 느낌은 달랐다.
“무엇보다 과거의 나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다는 포인트가 특이하고 좋았다. 더군다나 사이가 안 좋은 것이 더욱 특이했다. 부모님들이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이 커가면서 본인이 안 좋은 지점을 닮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상한다고 한다. 현재의 수현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과거의 자신이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미루다가 놓치게 되는 걸 아니까 안쓰럽기도 하고 밉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타협하고, 악수하는 부분들이 좋았다”
한수현이 과거로 돌아간 계기는 한 남자의 개인적인, ‘한 번 만이라도 보고 싶다’라는 지극히도 소박한 소망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바꿔가게 되고 그로 인해 후회도 하는 인물이 바로 현 시대의 한수현이다. 우연히 얻은 알약을 비행기에서 한 번 먹어봤을 뿐인데, 3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옛날의 한수현을 만난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공포였지만 이후 오묘한 감정 속에 서로 교감을 나눈다. 과거의 자신을 연기한 배우는 바로 변요한이다. 2인1역을 함께한 배우. 그 교감과 호흡이 남달랐을 터다. 하정우, 유아인, 강동원 등 이른바 ‘김윤석의 남자들’로 대변되는 전설 속에 변요한을 포함하고자 하는 포부도 있었다. 김윤석이 후배와 앙상블을 이끌어 내는 비법은? “무조건 편하게 해준다”였다.
“촬영 들어가기 전 사석에서 편하게 된다. 선배가 먼저 다가가야 마음이 편해지지, 후배한테 ‘안 다가와?’라고 할 수도 없다. 하하. 담배도 다른데서 피우고 있으면 ‘야 이리 와’라고 불러서 담배도 나눠 피운다. 마냥 어려운 선배면 그게 카메라에 다 나타난다. 서로 영화적인 완성도를 높이자는 공동의 목표가 있다. 그걸 위해서라면 선배로서 그 벽을 허물어야 한다”
“요한이의 연기 베이스가 연극이다. 심지어 뮤지컬도 하는 친구다. 저도 연극배우 출신이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허물이 없었다. 정말 확 열려 있는 친구라 허물없이 지냈다. 요한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연습하고 계산하고 와서 현장에서 맞춰서 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요한이는 준비하고 와서 3~40%는 털어버린다. 거기에 즉흥을 집어넣는데, 정말 온몸을 던져 넣는다. 이건 용기나 다름없다. 행동도 즉흥으로 나온다. 그런 지점을 정말 높이 평가한다. 저도 그런 타입이다. 릴렉스해서 보다 털어내고, 현장 분위기에 몸을 싣는 편이다. 이런 부분들이 저와 비슷했다”
현재의 한수현이 과거의 한수현을 만나는 것이 인연의 커다란 줄기라면 그 주변엔 또 다른 가지가 있다. 바로 친구 태호와 딸 수아다. 한수현이라는 남자의 멜로 뿐만 아닌 우정과 부성애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50살 넘은 한 남자의 인생이 영화 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아마 딸을 지키고자 하는 수현의 모습은 자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100% 공감할 내용이다.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딸이 없어진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 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도 안 된다. 식탁에서 딸에게 자신의 병을 고백하는 것, 가장 힘들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걸로 찍혔지만, 가만히 보면 내가 덜덜 떨고 있다. ‘이 아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것, 무엇보다 미안함이다. 혼자 두고 떠나야 하는 미안함이 너무 컸다”

공교롭게도 현재의 태호를 연기한 김상호와 딸 수아를 연기한 박혜수는 같은 소속사 식구다. 본래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 하지만 김윤석은 이를 넘어 박혜수를 직접 집으로 초대해 선후배간의 벽을 허물었다.
“밖에서 만나면 일단 차려 입어야 한다. 집에서 만나면 트레이닝복만 입고도 만날 수 있다. 하하.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벽이 허물어진다. 우리 집사람이 과일도 깎아주고 커피도 타줬다. 리딩 연습도 제 서재에서 했다. 아시다시피 혜수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에 스카이 출신 국문과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총명하고 말을 잘 알아 듣는다. 촬영 끝나고 김상호 씨랑 부산에서 바닷가에 한 잔 하러 가면 꼭 따라와서 같이 마신다”
박혜수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에 김윤석의 딸바보의 모습도 엿보였다. 실제로 두 딸이 있는 아빠이기에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타짜’(2006) ‘추격자’ ‘황해’(2010) 등 센 역할을 많이 맡았기에 잠시 접어두었던 김윤석의 면모였다. 물론 로맨스를 펼친 적도 있었다. 바로 ‘쎄씨봉’(2015)에서 현재의 ‘오근태’를 맡아 현재의 ‘민자영’, 김희애에게 애틋한 눈빛을 전했다. “그래 봐야 15분 남짓, 그때의 울분을 이번 작품에서 풀었다”라고 말하는 김윤석. 맞다. 김윤석은 이번 작품에서 지고지순한 멜로를 펼쳤다.
“사실 나이 든 중년의 로맨스에서 불륜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중년의 로맨스 작품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번 로맨스는 깔끔하고 담백해서 마음에 들었다. 거기다가 부녀간의 애정도 들어가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제겐 딱 이 정도까지인 것 같다. 풍선 들고 있는 것도 정말 괴로웠다. 변요한 채서진 씨의 러브신을 보면서 솔직히 ‘어쩜 저렇게 자연스럽게 할까’라고 했다. 저는 못할 것 같았다. 너무 쑥스럽고 부끄럽다. ‘난 저렇게 절대 못해’라고 했다”

김윤석이 말한 풍선은 과거의 한수현이 연아에게 프러포즈 하는 신을 말한다. 젊은 커플이 달달하게 표현해 냈던 것을 김윤석이 다시 한 번 재연한다. 김윤석이 이야기하는 ‘괴로움’이란 곧 오글거림의 감정이었다. 사실 변요한이 제안했던 프러포즈 방식이기에 대본에도 안 써있었던 장면이다. 그래서 부끄러움은 더욱 김윤석의 몫이었을 터. 감독에게 “내가 강동원도 아닌데, 사람들이 웃을 것”이라고 경고했단다. 뭐가 그렇게도 오글거렸을까?
“중년의 로맨스는 정말 어려운 감정이다. 어떤 의미로 액션, 스릴러 등 장르에 기대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해야 하고, 정확한 계산 하에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사실 좋은 중년 멜로가 나오기 힘든 현실이다. 젊은 로맨스야 실수를 하거나 우왕좌왕 하는 과정을 다 그려내도 된다. 그런 시행착오 속에 서로 성장하는 거니까. 하지만 중년 멜로가 그렇게 되면 죽일 놈이 된다. 물론 외국 영화엔 좋은 중년 멜로가 많다. 그야 그들은 키스하는 게 일상이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년들이 일상다반사로 키스한다는 그림은 조금 이상하다”
“그렇다면 불륜 연기는 어떻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서경중 교수님이 ‘불륜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TV에서 이야기 했다”고 답했다. 여기에 ‘닥터 지바고’를 언급하며 “불륜은 어쩔 수 없는 코드”라 설명했다. ‘불륜이 재미있다’가 아닌 중년 멜로엔 스릴러, 추리, 코미디, 등 다른 장르가 덧붙여져야 한다는 현실을 토로한 것이다. 순수 로맨스가 나오기 힘들다는 건 중년 배우로서는 많이 아쉬울 일이다.
김윤석은 영화 속 수현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알약을 구한다 하더라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아간다고 해서 행복한 일만 있을 것도 아니고, 언제 어디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그리고 지금 아내와 딸이 소중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타임슬립을 "독약"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돌아간다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어머니”라고, 또 돌아가서 과거를 고칠 수 있다면 “세월호 참사를 막고 샆??rdquo;고 했다.
“그게(세월호 참사) 쉽게 잊혀질 일일까? 온 국민들 마음 속에 무거운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을 정치적인 뜻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건 아니다. 천안함도 구하고 싶고, 삼풍백화점, 성수대교도 구하고 싶다”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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