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공조' 김주혁 "악역 김주혁, 모두가 반신반의"
[Z인터뷰] '공조' 김주혁 "악역 김주혁, 모두가 반신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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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제니스뉴스와 배우 김주혁이 만난 날, 서울 삼청동엔 눈도 많이 내리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여러모로 추위와 맞아 떨어지는 인터뷰였다. 날씨도 그랬고, 영화 ‘공조’에서 김주혁이 연기한 북한 군인 ‘차기성’도 그랬다. 자칫 많은 질문에 시크한 듯, 혹은 무심한 듯 짧게 답변하는 김주혁도 차갑게 느낄 법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대화가 흐른 후 그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따뜻했다. 단지 담백한 사람이었기에 피어났던 사소한 오해였다. 

자신의 짧은 답변에 대해 김주혁은 “허세도 없고 가식도 없어서, 제 자신에 대한 포장을 못 한다”면서 타고난 성격을 탓했다. “다소 오해도 받았겠다”는 말에 “이렇게 태어난 거라 어쩔 수 없다. 제가 살갑지 못한 편이니,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다. 자존심도 있어서,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포장 같은 건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자신을 포장해 주는 소속사에 잘해야겠다”고 농담을 던지자 “정말 저는 회사가 꼭 필요한 놈”이라면서, “대신 나쁜 짓은 안 하고 다닌다. 어찌 보면 개인주의다. 남에게 피해 입는 것도, 주는 것도 싫어한다”라 답했다. 얼마 전 나온 후배 배우 이유영과의 열애에 빗대어 “여자친구한테도 마찬가지일까”라는 질문에도 “로맨틱 코미디에 많이 나왔지만, 정말 로맨틱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며, “이벤트는 물론 살가운 말도 못한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싱글즈’(2003) ‘프라하의 연인들’(2005) ‘아내가 결혼했다’(2008)부터 최근 ‘좋아해줘’(2015)까지 그의 대표작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로맨틱한 김주혁'에 익숙하다. 반대로 ‘나쁜 남자 김주혁’은 다소 낯설다. 그만큼 배우 본인도 로맨틱 코미디나 부드러운 역할 외에 다른 캐릭터에 대한 갈증도 있었다. 소속사에 대고 불평도 했단다. 그래서 이번 ‘공조’의 절대악 ‘차기성’은 김주혁에게 있어 카타르시스로 다가왔다.

“다른 장르를 한다는 재미가 있었다. 옛날엔 정말 악역이 안 들어왔다. ‘좋아해줘’를 할 때 이번 역할에 제의를 받았는데 흔쾌히 한다고 했다. 아마 제안을 준 쪽에서도 반신반의 했을 거다. 감독의 표정에서도 불안한 느낌을 읽을 수 있었다. 하하. 내 전작을 본다면 당연한 물음표다. 제게도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물음표도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국(북한)을 배신한 차기성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돈 앞에 신념도 없는 진짜 나쁜 놈이다. 물론 자신의 동료들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그 또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관객들은 안다. 하지만 김주혁에게 있어 차기성은 그저 악역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순한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념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굳이 전사를 만들어 본다면 조국에 충성을 다 했지만 불가피한 일로 버림을 받는, 나아가 아내까지 처형을 당하는 전사를 짜봤다. 어쩌면 북한에서 쿠테타를 일으키는 게 꿈이었을 것 같은 인물이다”

특수부대의 수장이었기에 강인한 이미지가 필요했다. 그 이미지에 가장 큰 획을 그은 건 바로 김주혁의 몸매였다. 부드러운 얼굴에 그런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여성 관객이라면 탄성을 자아낼 대목이다. 그리고 사투리도 신경 썼다. 같은 북한 군인 출신이지만 현빈이 연기한 ‘림철령’은 평양말을 썼고, 김주혁은 함경도 말을 썼다. 보다 강한 억양 때문이었다.

“일단 분장을 어둡게 했다. 태닝도 해봤다. 운동을 일부러 했냐고 묻는데, 운동은 계속 해왔다. 살을 좀 빼기는 뺐지만 그런 걸 어필하는 건 배우로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역할 때문에 한 거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함경도 사투리가 역할에 더 맞았다. 평양 사투리는 제가 해본 적이 있는데, 북한의 수도에서 쓰는 말이다 보니까 꼭 서울 말 같다. 그 맛이 그렇다. 하지만 함경도 사투리는 정말 딱딱하고 강하다. 함경도 사람들이 실제로도 세다고 한다. 왜 그 ‘황해’를 보면 연변 사람들이 굉장히 강하게 나오는데, 함경도 사람들은 연변 사람들 보면서 ‘순하다’고 한단다”

1998년 SBS 공채 8기로 데뷔했지만, 그렇게 데뷔 19년 차가 됐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변신에 대해 생각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한다. 인터뷰 자리도 시종일관 차분했고 말수도 많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1박2일’의 ‘구탱이 형’을 찾아보는 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큼 ‘1박2일’에 고정 출연이란 배우 김주혁에 있어 상상하기 힘든 도전이었다.

‘1박2일’도 참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콕 찍어 말할 수는 없지만 하하. 나를 좀 내려놓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사실 살면서 나 자신을 화면으로 볼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건 거울을 통해 나를 보는 것과는 다른 지점이다.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도움이 됐다. 나이 들면서 살아온 흔적을 엿볼 수도 있었고, 덕분에 내 연기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그럼에도 김주혁이 ‘1박2일’에서 하차한 것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속내엔 다른 심정도 있었다. 동생들에게 대한 미안함, 짐이 되고 있다는 자책이 담겼던 선택이었다. “첫 회부터 끝날 때까지 그런 기분이었다. 제가 더 잘 해서 애들을 받쳐준다는 느낌이 있어야 했다”는 말은 형으로서, 그리고 선배로 가졌던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하여 배우 후배들을 향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후배들이 '왜 나는 일이 없을까?', '왜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고 말한다면 그게 제일 한심한 일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하고 훈련해야 한다. 훈련이란 열정일 수도 있고, 감성의 유지일 수도 있다. 또한 체력도 중요하다. 물론 어린 친구들의 장점도 있다. 순수함이다. 저도 그 지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훈련의 방법을 물었다. 달리 말하면 후배들을 위한 원포인트 레슨이겠다. 김주혁은 아버지이자 선배 배우 故 김무생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를 언급하며 설명했다.

“배우들에겐 이상한 버릇이 있다. 어떤 상황 속에 느낀 그 감정을 기억하려는 버릇이다. 직업병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마저도 그랬다. ‘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조문 온 사람들을 보면서도 ‘저렇게 감정을 표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억된 감정들을 연기할 때 꺼낸다. 그런데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다”

“연기자든, 운동선수든 힘을 빼느냐, 아니냐가 바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라는 김주혁. “프로 골퍼도 힘을 빼는데 3년이 걸린다는데, 배우도 마찬가지다”라며, 배우로서의 전환점을 10년으로 셈했다. “10년 정도 하면 어느 정도 감이 생기고, 또 10년을 더 하면 또 다른 감이 생긴다. 앞으로의 10년 후도 또 달라질 거라 믿는다”라며, 자신의 지난 배우 인생, 그리고 앞으로의 갈 길을 점쳤다.

그럼 과연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지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10년 후에 또 달라질 것을 바라고 있다면, 베테랑이 된 지금도 연기와 배우 생활에 슬럼프가 있는 것일까?

“지금은 대사나 상황을 보면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연기 방향의 선택이 달라진다. 제시된 길이 있지만 다른 여러 길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 그 다른 길로 가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걸 안다. 관객도 이해해줄 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어렸을 땐 그러지 못했다. 슬럼프는 언제나 있다. 지금도 어렵다. 단지 전 그걸 드러내질 않는다. 혼자 삭히는 편이다. 심지어 터지지도 않는다. 제 혈액형이 A형이라 그런가 보다. 그저 담배 한 개비 피우며 삭혀낸다. 그래서 못 끊나 보다. 하하”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열애도 인정한 상황에서 결혼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해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반대의 지점에서 답변을 내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살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제대로 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홀로서기를 잘 하는 것, 그것이 제 목표다"

 

사진=나무엑터스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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