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너도 블랙리스트니?”라는 어머니의 걱정 섞인 질문을 받은 감독이 있다. 바로 영화 ‘더 킹’의 감독 한재림이다. 어쩌면 그래서 한재림 감독은 ‘더 킹’을 관객들에게 내놓았는지도 모른다. 블랙리스트라는 이 시대의 그림자는 결국 웃픈(웃기고도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화를 낼 수도,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어이가 없네”라며 웃음부터 나오는 일이다. 그래서 ‘더 킹’은 블랙 코미디로 관객을 만났다.
‘더 킹’은 권력의 달콤함에 중독된 정치 검사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온갖 일을 벌이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또한 비분강개에 앞서 개탄 섞인 웃음이 앞선다. 단지 현재 시국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웃음이 사라지는 지점도 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메시지는 보다 강력하게 만드는 시국이겠으나 코미디를 위한 연출의 묘가 희석되는 지점이다.
복잡한 시국 속에 우리나라의 정치 현대사를 조망한 '더 킹'을 들고 나온 한재림 감독과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가 확고했던 만큼 감독의 깊은 속내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 그 다양한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 전한다.
‘더 킹’의 구상은 언제부터였나?
2014년 여름에 생각을 했고, 초고는 2015년 2월에 쓰기 시작했다. 제가 옛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이번 인터뷰를 통해 시기를 조금 헷갈린 부분이 있는데 2015년 2월이 맞다. 그러고는 2016년에 다 찍었다.
시나리오 수정은 여러 번 있었나?
많이 못했다. 2월에서 3월까지 두 달 정도 썼는데 6번 정도 수정했던 것 같다.
역시 각본에 강점이 있는 감독답게 생각보다 탈고가 빨랐다.
저는 구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메모도 많이 한다. 관련된 책도 많이 읽는다. 머리 속에 여러 구상을 넣어 놓고 있다가 써야 할 타이밍이라고 느껴지면 초고를 빠르게 써낸다. 그 초고를 읽어보고 ‘재미있다’는 판단이 들면 시나리오를 고치기 시작한다.
시국과 맞물리며 한재림 감독 예언가설이 돌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고 가니까 결국 터진 일이다. 예언이 아니라 필연의 지점이다. 그렇게 읽힐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취재는 어느 정도 했나?
취재 겸 구상에 6개월쯤 소요했다. 법조인들을 만났다. 변호사, 검사, 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법이라는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는 법, 정의, 진실 등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 생각의 끝에서 ‘더 킹’이 나온 것인가?
소송을 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진실과 정의는 없다. 소송엔 서류가 우선이다. 증거가 우선돼서 법리적 판단을 내린다. 그 과정에서 또 사람이 중요해진다. 어느 변호사를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물론 진실은 있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변호사를 쓴다 해서 유죄가 무죄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검사는 기소와 수사가 가능하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그럼 법의 힘을 쥔 사람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움직인다면, 사회적으로 큰 비극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들이 마음을 먹으면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더 킹’은 우리나라 정치의 근대사를 조망한다. 그간 역사 속 한 사건을 그려냈던 영화는 여럿 있었지만 시대를 훑어내는 영화는 드물었다.
‘국제시장’이 우리 나라 산업근대화 시대를 다뤘다면 우리는 보다 정치적 현대사다. 군부독재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다. 다르지만 비슷한 지점이 있다면 중장년층이 공감한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역사지만 그들에겐 걸어왔던 시간들이니 흥미를 느끼시는 것 같다.
해외에서는 그런 작품들이 꽤 있다. 추천할 작품이 있을까?
‘포레스트 검프’가 대표적이다. 좋아하는 작품이다. 한 남자의 우화이고 동화다. 저는 ‘더 킹’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회고를 하는 식으로 연출된다. 한 남자가 “내 아버지는 양아치였다”로 시작해 자기 인생을 돌아본다. 주관적인 판단으로 신이 구성된다. 할리우드에선 ‘포레스트 검프’와 비슷하다. ‘포레스트 검프’에도 역사를 지나간다. 성장부터 위기, 사랑을 겪는다. 그런 지점이 비슷한 것 같다.
중장년에겐 지나온 시절의 반추이겠으나 어린 친구들에겐 몰랐던 시절을 알게 되는 지점도 있었을 거다. 분명 이번 정권에 역사에 대한 국정교과서 논란도 있었고, 게다가 ‘더 킹’은 15세 관람가라 더 그렇다.
어쨌든 우리의 현대사의 속성이 이런 현실, 최순실 사태가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때문에 어리고 젊은 친구들이 현실을 보면서 정의란 무엇인지, 어떻게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역사를 반추하는 건 지금의 삶을 위한 행위다.
어쨌든 ‘더 킹’은 블랙 코미디다. 현실을 꼬집는 위트와 풍자를 담았는데 현 시국 때문에 그것을 오롯이 느끼지 못한다. 이를테면 코미디가 다큐가 됐다.
아쉽다. 분명 시국만 아니었으면 굉장히 많이 웃고 재미있었을 이야기다. 시국과 연결되다 보니 진지한 이야기로 접근한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가는 게 맞다. 지금이라도 터져서 다행이다. 매일매일 많은 사건이 온 나라를 뒤집고 있다. 우리 영화에 도움이 되고, 해가 되고는 다른 이야기다.
우리나라 극장가에 블랙 코미디 흥행 타율이 높지가 않다.
맞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유독 블랙 코미디에 약하다. 미국의 주류 코미디가 바로 블랙 코미디다. 그들은 스탠딩 개그를 해도 블랙 코미디로 꾸민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유머를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저는 관객들이 ‘더 킹’을 보고 마음껏 웃었으면 좋겠다. 한 바탕 비웃었으면 좋겠다. 블랙 코미디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블랙 코미디를 즐기신다면 굉장히 많이 웃을 수 있는 영화, 블랙 코미디를 모르더라도 즐길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결국 블랙 코미디란 비틀어 꼬집는 통쾌함이 필수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신은 대단했다. 여러 이야기를 그렸지만 결국 ‘더 킹’은 블랙 코미디라는 방점이었다.
“미안하다”는 성우 형의 애드리브였다. 풍자이고 해학이지만 성우 형이 눈물까지 흘리며 진심으로 연기해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볍게만 보지는 않았던 거 같다. 사실 영화의 중간에 위치했었는데, 마지막으로 옮겼다. 관객들이 자리에서 ‘이 영화는 풍자’라며 웃고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맨 뒤로 뺐다.
마지막 신도 그렇고, 영화 전체도 그렇고 지금 시국의 실제 인물이 떠오른다.
떠오르신다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 디테일한 사건들이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허구라 해도 그들의 습성이나 속성이 투영되는 거다. 우리 영화는 우화다. 해석은 관객이 하는 거다. 해석을 그리 하셨다면 무리는 없다고 본다. 제가 봐도 똑같다. 그래서 예견이 아니라 필연적인 구조라고 말하는 거다.
데칼코마니를 연상시키는 오프닝도 인상적이었다. 좌우가 똑같다의 느낌도 받았고, 영화 속에서 검찰과 조폭의 성격이 반대로 보이는 지점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한국 현대사를 여러 의미로 보자였다. 객관적으로 보자는 이야기다. 늘 보던 화면도 좌우 데칼코마니로 보면 이질감이 생긴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보이는 거다. 좌우가 같다는 의미도 있다. 영화 속엔 여러 가지 드라마적 대칭구조가 쓰였다. 한강식과 태수, 김응수와 두일이, 약점과 강점 등 여러 가지를 상하좌우 대칭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영화 초반에 펜트하우스로 올라가는 장면도 인상적인데. 정말 위로 올라간다는 게 그렇게 멋진 일인지 몰랐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권력을 동경하고, 단맛을 같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권력의 상승을 같이 느끼고 싶었다. 만약 기득권으로 가는 길이 지하의 룸살롱으로 들어간다면 거부감이 생겼을 거다. 그러면 관객이 태수와 동화되기 힘들다. 권력에 맛에 취한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군무신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정우성-조인성-배성우의 댄스도 그렇지만 영화에 쓰인 노래도 인상적이다. 선곡에 의미가 있을까?
자자의 ‘버스 안에서’는 시나리오 때부터 정해놓고 갔다. 권력자와 정말 안 어울리는 유행가, 그것도 댄스곡을 넣고 싶었다. 그들도 그냥 인간이라는, 회식 때 노래하는 회사원과 똑같다는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 클론의 ‘난’도 같은 맥락이었다.

영화에서 여러 대통령이 지나가지만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루는 결은 다르다. 언론시사 때도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셨다.
제가 이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지점이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라 생각한다. 전 제 첫 투표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했다. 예전 우리나라 정치는 독재정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들이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들, 훗날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고 두 대통령이 재판에 서는 모습도 봤다. 대통령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본 날이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되고 나서 2002년 월드컵에 모두가 광장에 모여 즐거워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의 힘이 이렇게 까지 왔구나’ 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고 탈권위시대가 왔다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가 좋아졌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탄핵이 진행됐고, 결국 서거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의 기득권이란 엄청 강했구나, 그 세력이 아직도 여전하구나’ 생각했다. 그 세상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그냥 하나의 오류, 또는 에러였다. 그의 실패가 제게 좌절감을 안겼다. 내가 깨닫지 못한 대한민국을 느꼈다. 너무 슬펐고, 아팠고, 아쉬웠다. 그래서 한동안 정치를 외면했었다.
하지만 결국 영화감독이니까 ‘더 킹’이라는 영화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맞다. 전 결국 영화 감독이니까 영화로 이야기하게 됐다. 물론 SNS도 하고 촛불집회도 나가봤다. 하지만 전 감독이니까, 정치적 표현은 영화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블랙리스트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리스트 최상위로 올라갈 이야기들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더 킹’은 진보와 보수, 구분 지어 싫어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거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검사가 아닌 정치 검사 이야기다. 전 검찰 안에 자정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또한 ‘더 킹’은 선택에 관한 영화다. 우리의 선택이 세상을 바꾸고 나라를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비극과 희극의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한강식의 일장연설, 그것이 우리의 역사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된 거다. 지금 이 시점을 꼭 정리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판까지 편집하는데 고생했다고 들었다. 촬영분에 비해 편집된 장면도 많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감독판이 따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린다.
감독판은 안 나올 것 같다. 전 지금에 매우 만족스럽다. 편집 과정에서 지치기도 했다. 감독판이라는 게 단순히 편집된 신을 추가하는 개념이 아니다. 전체의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그 작업이 꽤 걸린다. 혹시 DVD 등을 통해 삭제 장면을 따로 보여드릴 수는 있을 것 같다.
사진=NEW
저작권자 © 제니스글로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