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영화 ‘싱글라이더’는 그 제목처럼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간다. 바로 아들과 아내를 호주로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 ‘재훈’(이병헌 분)의 시선이다. 그가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에서 변주 되는 재훈의 심정과 감성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아련함을 남기는 그런 영화다.
그래서 아내 ‘수진’의 역할은 중요했다. ‘재훈’의 심경(心境)을 비추는 마음의 거울(心鏡)이었다. 허나 ‘수진’이 가진 연기의 진폭은 크지 않았고, 하여 어려운 연기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효진은 그 연기를 능히 해내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제니스뉴스와 배우 공효진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보통 배우 인터뷰라 하면 복층의 구조 속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진행되기 마련. 당시 카페도 지하와 2층까지 구비된 장소였다. 하지만 공효진은 “오랜만에 햇빛이 따뜻해서요”라며 취재진을 테라스로 안내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는 모습. 우리가 알고 있는 공효진의 매력이 오롯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싱글라이더’와 마주한 시점은 언제인가?
‘질투의 화신’을 찍기 바로 직전, 정말 잠시 시간이 비었을 땐데 일정이 짧아서 딱 맞았죠. 영화 ‘577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친구들이 있는 퍼펙트스톰픽쳐스의 첫 작품이라 참여한 부분도 있어요.
하정우라는 이름도 선택에 한 몫 거들었다는 이야기?
하정우 오빠요? 제작사 대표로서 한 일은 절 캐스팅한 거 밖에 없을걸요? 하하. 회식에도 안 오고, 쫑파티 때도 잠깐 왔다가 가곤 했어요. “퍼펙트스톰픽쳐스의 창립작이다”라며 큰 의미를 부여해줬고, 좋은 시나리오였으니까 제겐 감사한 기회였죠. 하정우 오빠의 부탁이라 출연한 건 아니에요. 농담 아니고요. 아빠가 투자했어도 작품이 별로면 출연 안 했을 거예요. 둘 다 망하면 안 되잖아요. 하하.

촬영 기간이 짧아서 힘들었겠다.
한달 반 정도의 촬영이었는데, 정말 신기루처럼 지나갔어요. 영화를 찍고 ‘질투의 화신’에 들어갔고, ‘미씽’ 홍보활동에 전념하다 보니 잊고 지낸 거 같아요.
이병헌 씨와 호흡을 맞췄다.
제가 연기한 ‘수진’은 이병헌 선배님이 연기한 ‘재훈’을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역할이었어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담긴 것 같아요. 수진의 역할에 대해 관객의 호불호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죠. 결국 ‘싱글라이더’는 이병헌 선배님이 전부 해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완성된 영화에 시나리오를 보고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담아져 있더라고요. 그 감성이 그대로 남았어요.
이병헌 씨가 공효진 씨를 엄청 칭찬했다.
이병헌 선배님이 인터뷰마다 좋아하는 여배우로 저를 꼽아줘서 황송했어요. 그런데 정작 이번 ‘싱글라이더’ 때는 많이 만나지 못해 아쉽기도 하고요. 이번 작품은 이병헌 선배님과의 워밍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언젠가 연기배틀을 할 수 있는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고 싶은 바람이에요. 하하. 농담이고요. 선배님께 한 수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요. 특히 스릴러 장르요. 다음 번에 만난다면 선배님이 연기를 할 때 잘 하실 수 있게 앞에서 도와드리고 싶어요.
필모에 비교해보면 어쩌면 많이 평범한 역할인 것 같다.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역할들 중 가장 흔한 사람이에요. 제가 연기한 역할은 항상 ‘전대미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특별한 인물이었잖아요. 그런 특별한 사람 아닌,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번 영화는 제 캐릭터를 보고 출연했다기 보단, 나무 한 그루를 넘어 숲을 보고자 노력했고요. 그래서 보여줄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았고, 영화를 찍으면서도 ‘내가 하는 일이 없네’라며 성에 안 차기도 했죠. 제가 재훈을 걱정하며 여러 번 전화를 하는데, 횟수가 중첩될 때마다 걱정의 강도를 높였거든요? 근데 잘 표현 되지는 않더라고요.
워낙 호평받은 시나리오였기에 그 감성이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건 다행인 지점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싱글라이더’는 ‘미씽’보다도 관객의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아요. 남녀의 입장에서 갈리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여운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전 사실 드라마보다 영화가 감정을 오롯이 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는 성향은 개개인이 다르잖아요. 특히 영화 쪽엔 좋은 영화는 관객들이 몰라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요즘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고요. 저도 ‘미씽’ 이후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진심을 담는다면 그 마음은 전해진다’는 게 느껴졌거든요.

이주영 감독과는 어땠나?
굉장히 감각적인 분이에요. 특히 짧고 간결하면서도 본인의 색이 있는 문장 구사가 참 좋아요. 필체가 매력적이랄까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무엇보다 ‘싱글라이더’는 영화가 설명적이지 않아서 쿨했어요. 수진과 재훈의 사연들이 없잖아요. 플래시백도 간단하고요. 그들의 공기만 느낄 수 있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관객들의 궁금증도 많아질 것 같았어요.
타이트한 일정이라 들었는데, 광고 경험이 많은 분이라 진행이 빨랐던 것도 있었겠다.
참 바쁜 일정인데 외국 스태프들은 밤샘 촬영이라는 게 안 돼요. 오죽하면 ‘치치’로 나온 포메라이언도 50분 연기하고 10분 휴식을 가져야 했어요. 우리끼리 “치치는 할리우드 스타일”이라며 웃기도 했고요. 제가 치치의 주인이었는데 오히려 소희랑 더 많이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정작 소희는 치치를 안으면 으르렁거리고 물려고 해서 무서웠대요. 저도 한 번 안아보려고 했는데 강아지가 털에 파우더 분장을 했다고 거부당했어요.
광고를 많이 하신 분들에겐 특징이 있어요. 순간포착을 잘하세요. 앞뒤에 이어지는 호흡보다는 순간의 모먼트를 잘 캐치하세요. 디렉션도 정확하고요. ‘느낌이 좋은데 한 번 더 할까’ 같은 게 없어요. 이게 뭔지 잘 모를 때 그런 요구가 오면 어려울 때가 있거든요.
사실 광고 현장이 정말 다급하게 돌아가요. 영화의 배우와 감독은 한 작품을 하면 한 배를 타고 가는 느낌이라면 광고 작업은 건 바이 건의 느낌? 오늘 하루 안에 다 찍어내야 하는 다급함이 있어요. 영화는 재촬영이라는 것들도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색다른 작업이었어요.
여성 감독과 여러 번 작업을 해왔다.
이번까지 5번 정도 호흡을 맞춘 거 같아요. 어느날 영화 시사회에 갔는데 여성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시길래 “당분간은 여성 감독님과는 안 하려고요”라고 정중하게 사양한 적도 있어요.
사실 여배우 입장에선 남성 감독님들이 더 편해요. 여배우라고 더 챙겨주시는 지점도 있고, 배려하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여성 감독님은 동성이니 그런 부분은 없죠. 또 제가 여성이라 알고 있는 공통지점이 있으니 더 세심하게 챙기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를테면 식사를 할 때도 남성 감독님들은 ‘뭐 알아서 먹겠지’라고 생각된다면, 여성 감독님껜 ‘감독님도 같이 식사하셔야 하는데’라고 저절로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연기적으로는 또 도움이 돼요. 남성 감독님과 작업할 땐 제가 여자 캐릭터에 대해 의견을 내면 의심이 없으세요. 제가 여자니까요. 하지만 여성 감독님과는 협의를 해야하죠. 여자들의 여러 심리를 가지고 감독님을 설득해야 해요. 어려운 부분이긴 한데, 고민을 더 하다 보니 연기적으로 도움이 되죠.

기러기 아빠의 이야기라 공감가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유학생활을 했는데.
이번 영화를 아빠가 보면 많이 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전 중3 때 호주에 갔었는데, 가끔 아빠가 오시면 3~4일 있다가 돌아가시곤 했죠. IMF 터지면서 저랑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왔거든요. 그때 아빠의 고통이 재훈과 비슷했을 거 같아요. 아빠도 ‘사는 의미가 뭘까?’라는 생각을 했을 거 같고요. 그땐 그런 아빠의 마음에 관심도 없었어요. 아빠한테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안 했죠. 오히려 친구들과 떼어놨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요즘 충무로 여성 영화에 대한 계몽이 늘어나고 있고, 실제 여성 영화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 일선에 공효진이라는 배우가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여성, 남성으로 구획을 나누는 것에 대해 ‘미씽’ 때 기자들,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후에 나온 기사들, 리뷰들을 보고 제 속에서도 조금 정돈된 것 같아요. 사실 돌이켜보면 전도연 선배님이 많은 작업 하실 때, 여성 영화 많았어요. 돌아가신 장진영 선배님도 왕성하게 활동했고요. 그땐 스코어도 좋았고 재미도 있었죠. 그때에 비하면 지금 여성 영화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취향의 흐름, 장르의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그 흐름이 올라오고 있는 지점인 것 같고요. 우리나라가 유행에 민감하잖아요. 치킨만 하더라도 치맥, 찜닭, 구운닭 등 금새 변해요. 단지 지금은 영화에 대한 관심이 다양해진 것 같아요. ‘라라랜드’나 ‘재심’에 대한 관심도 그런 종류 같고요. 제가 그 일선에 있다는 건 의도한 지점은 아니에요. 제가 촉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요. 단지 운이 좋은 거 같아요. 뒷북 안치고 앞북 친거죠.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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