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이소희 기자] 밴드 삐삐밴드가 컴백했다. 지난 1995년에 데뷔한 이들은 12일 데뷔 20주년 기념 미니앨범 ‘pppb’을 발매, 오랜만에 대중과 마주했다. 이는 지난 1996년 정규 2집 앨범 ‘불가능한 작전’을 끝으로 탈퇴한 이윤정을 비롯, 원년 멤버들간 18년 만의 만남이다. 게다가 타이틀곡 ‘오버 앤 오버(Over and over)’는 기존 삐삐밴드의 파격적인 모습과 사뭇 다른 로우템포 곡. 우리 주변의 소외 계층이 느끼는 쓸쓸함과 공허의 악순환과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식사하셨어요 별 일 없으시죠 / 괜찮으세요? 수고가 많아요’와 같은 솔직한 가사가 담긴 옛날 곡들을 살펴보자면,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개봉한 영화 ‘프랭크(Frank)’가 떠오른다. ‘프랭크’에는 일상의 감정과 생각들을 미사여구 하나 없이 오롯이 순수하게 음악으로, 거침없이 내지르듯 표현하는 인디 밴드가 출연한다. 이들과 삐삐밴드의 차이점이 있다면 딱 하나. 바로 사람 탈을 쓴 영화 속 밴드와 달리 삐삐밴드는 화끈하게 맨 얼굴로 대중들과 마주했다는 것. 정말 오랜만에 만난 이들, 과연 여전할까?
- 이하는 삐삐밴드와의 일문일답이다.
Q. 데뷔 20주년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린 곡 ‘ㅈㄱㅈㄱ’ 이후, 본격적인 활동이다.
달파란: 지난해 삐삐밴드 예전 매니저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20주년 기념 앨범을 만들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내가 멤버들에게 연락을 했고, 다들 재미있을 것 같다며 흔쾌히 작업에 응했다. 밴드가 없어지고 나서는 서로 바빠지고 자주 만나지는 못했었다.
이윤정: 진짜 오랜만에 만났다. 서로 해외에 나가있기도 하고 생활도 바뀌고. 오랜만에 작업을 하는데 20년 전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 때가 참 재미있었던 시기 같다. 당시에도 삐삐밴드는 대중 가수들과 섞여 있는 상태가 아닌 모습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독특한 문화적 형태가 있었다.
Q. 각자의 생활을 하다가 만났는데 앨범 작업 진행은 잘 됐는지?
달파란: 예전보다는 편하고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기념하는 것이니까. 예전에는 무언가를 기념한다기 보다 하나의 앨범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
이윤정: 삐삐밴드 해체 이후 서로 다른 작업들을 해왔었고 나도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겉돌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나니까 옛날에 작업했던 것 보다 더 빨리, 생각보다 빠르게 일이 진행됐다.

Q. 삐삐밴드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달파란: 원래 우리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반가워했다. 새로운 것을 들려준다는 것이, 이윤정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다는 것이 반갑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게 전부다.
이윤정: 반갑기도 했지만 놀라는 기색이 더 컸던 것 같다. 옛날 추억으로 남아있다 보니 ‘너 할 거야? 오빠들은 한대?’ 그런 반응이었다.
Q. 타이틀곡 ‘오버 앤 오버’에 가수 자이언티(Zion.T)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윤정: 자이언티가 나에게 먼저 본인의 곡 피처링을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우리 앨범이 먼저 나오게 돼서 ‘우리 걸 먼저 해주면 하겠다’라고 했다. (웃음) 자이언티가 직접 작업실에 와 현장에서 본인 파트의 가사도 쓰고 했다. ‘오버 앤 오버’는 다들 생각하는 삐삐밴드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다운 템포의 곡이다. 가사를 보면 ‘어, 내 이야기인데’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을 담고 있다.
Q. 가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박현준: 평소 단어를 던지는 방식으로 작사를 한다. 대충 듣고 넘길 수 있는 가사가 아닌,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가사들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시사하기 보다 단어들로써 시사하고 싶었다. 단어의 상징적인 것들을 더 찾아냈으면 좋겠고, 물론 듣는 사람들이 우리가 가사를 쓴 의도와 의미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윤정: 다른 가요는 이미 설명이 다 된 상태로 대중에게 들려준다. 우리의 가사들은 얼렁뚱땅 쓴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물음표를 던지는 듯한 내용들이다.
Q. 삐삐밴드의 앨범에 다른 가수가 피처링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윤정: 우리의 곡과 느낌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피처링을 받을 용의는 있다. 열려있다.
달파란: 우리가 앨범 작업을 더 하게 된다면 피처링 참여 여부와 관계 없이 밴드의 색을 만드는 데 치중할 것이라는 건 확실하다. 오히려 반대로 재미있는 친구들이 있으면 돈 안받고 우리가 프로듀싱 해줄 때는 있다. ‘좀만 더 길을 터주면 잘 갈 수 있겠다’ 싶은 친구들도 있고. 다만 안타까운 건 요즘에는 ‘음악=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몰고 가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음악이나 밴드의 형태가 부각됐으면 좋겠는데 기교나 사람에게 포커스되는 문화가 돼버렸다.

Q. 삐삐밴드는 1집 정규 앨범 '문화혁명' 타이틀답게 가요계 혁명을 일으켰다. 요즘 음악의 혁명은 어떤가?
딜파란: 1990년대 말 정규 1집 앨범을 낼 때만 해도 음반 시장이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앨범에 투자를 많이 하고 그로 인한 수익을 얻는 구조가 됐는데, 요즘에는 인터넷 등을 통해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앨범으로 인한 수익이 생기지 않을 뿐더러 음악이 얼굴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만 소비가 된다. 음악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벌고 못 버는 사람들은 계속 못 벌게 되는 것 같다. 계속 음악만 해오던 사람이 똑같이 해오기에는 어려워졌다.
Q. 그래도 지금은 옛날보다 음악이 다양해지긴 했다. 삐삐밴드는 그때부터 남다른 음악을 해왔지만.
달파란: 삐삐밴드 활동을 할 때 파격적인 것을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고 파격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젊고 어린 나이다 보니 그저 우리 생각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했을 뿐이다.
이윤정: 참 신기했다. 왜 우리에게 ‘세다’ ‘파격적이다’라고 하는지. 나는 있는 그대로 했던 것이지 무언가 연출을 하고 기획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치 어떤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처럼 기사가 나오고 사람들도 그렇게 기억하더라. 삐삐밴드 같은 밴드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우리 말고도 자기 색깔을 잘 드러내는 밴드가 생겼으면 좋겠다.
Q. 예전의 음악적 활동과 모습이 지금의 삐삐밴드에게 미친 영향이 있는가?
박현준: 삐삐밴드는 우리가 앞으로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줬다.
이윤정: 물론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삐삐밴드의 연장선 상으로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오빠들의 영향으로 인해 내가 더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다.
달파란: 삐삐밴드 활동을 할 때에는 재미있는 이미지를 만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 후에 음악적으로 더 나아간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영화 음악을 해왔기 때문에 여러 음악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다시 모였을 때는 각자 음악을 보는 시각이 넓어져서 편하게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편하게 작업을 했다.

Q. 그래서 좀 더 넓어진 스펙트럼으로 다시 만나니 달라진 게 있나?
박현준: 세 명의 멤버가 다들 자유롭게, 서슴없이 뿜어낼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윤정이를 비롯해서 서로에게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기대할 때도 있고 그게 실제 결과로 나올 때도 있다.
달파란: 다들 여전히 센 편이다. 다만 지금은 다들 많은 경험을 하고 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본인이 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 편하게 해주기 위해 조절을 하게 됐다. 예전에는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맞붙었다면 지금은 약간 물러나는 여유들이 있다.
Q. 앞으로 세 명이 뭉친 삐삐밴드의 모습을 기대해보겠다.
이윤정: 안그래도 계속 다음 앨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확히 다음 앨범 발매일을 잡은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고려해서 시간과 조건들이 맞는다면 정규앨범을 낼 생각도 있다.
달파란: 공연 활동으로 앨범 활동을 펼치고 팬들을 만날 것이다. 큰 공연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데 조그만 깜짝 게릴라 공연도 해보고 싶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지 않고 갑자기 공연을 열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진=팝뮤직
저작권자 © 제니스글로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