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유도소년' 이현욱 "새로운 노선의 민욱? 좋은 뜻이라고 생각해요"
[Z인터뷰] '유도소년' 이현욱 "새로운 노선의 민욱? 좋은 뜻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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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같은 사람이 맞나 싶다. 전작 '올드위키드송'에서 배우 이현욱은 말 그대로 스티븐 그 자체였다. 섬세하고 예민한 피아니스트 스티븐과 높은 싱크로율로 매력을 발산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연극 '유도소년’으로 돌아온 이현욱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무대 위의 그는 한결 여유롭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즐기는 듯 보였다. 

이현욱이 연기하는 복싱선수 민욱은 짝사랑하는 배드민턴 선수 화영이 유도선수 경찬과 데이트하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요령 없는 남자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 뒤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할 말을 연습하다 긴장한 탓에 전혀 엉뚱한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서툴긴 해도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 애쓰는 민욱은 ‘유도소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다.

무엇보다 억지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즐거워서 복싱을 하는 민욱은 관객에게 열정과 초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현욱 또한 민욱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했고, 어려웠지만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람과 재미를 느꼈다. 그의 진심 담긴 한 마디 한 마디는 연기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느끼게 했다. 훌쩍 따뜻해진 어느 봄날, 이현욱과 제니스뉴스가 나눈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올드위키드송’의 다음 작품으로 전혀 다른 ‘유도소년’을 택했다.
그 전에 ‘트루웨스트’하고 ‘올드위키드송’을 했다. 두 작품 모두 인간에 관한 깊은 고찰과 본질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 극이었다. 나름대로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한 재미와 보람이 있었지만 정서적으론 좀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 ‘유도소년’을 통해 유쾌하게 정서적으로 환기를 시키고 싶었다. 새로운 것에 숙제 같은 느낌으로 도전한 것도 있다.

프레스콜에서 민욱 캐릭터가 어렵다고 했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전작들은 인물들이 나와 교집합이 많아서 찾기 쉬웠다. 민욱은 나와 아예 다르다. 민욱은 엄청 표현을 하는데 그 방식이 서투르다. 나 같은 경우는 표현을 잘 못하는 편이고, 시도조차 잘 안하는 성격이다(웃음). 또 민욱은 순수한 사랑을 꿈꾸면서 표현하는 인물인데 내 자신이 순수한 것 같지 않아서(웃음) 내적 갈등이 좀 있었다. 화영이를 생각하면서 시집을 준비하거나 이런 정서가 많이 소멸된 것 같다. 차라리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으면 물어봤지 뭔가 빙 둘러서 조심스레 다가가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졌다고 해야할까. 

그럼 민욱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었나. 
이 공연을 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서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재미있다. 워낙 초, 재연이 잘되서 기대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민욱이라는 캐릭터를 훼손시킬까봐 부담도 됐다. 극 중에서 본인은 진지하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창작의 고통도 있었다. 이 장면에선 분명히 민욱이랑 화영이가 재미있게 환기를 시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자꾸 웃기려고 하게 되더라. 그래서 이번에는 민욱이 캐릭터를 나름 진지하게 가져왔다. 보신 분들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노선이라고 말씀 많이 해주시더라. 좋은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말 특유의 캐릭터가 탄생한 것 같다.
다르긴 한 거 같은데 그건 내 의도가 먹혔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말 해도 되나. 사실 가끔 내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한다. 경찬이 얘기 보다 내 얘기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한다. 그러니까 미묘하게 관객들이 따라올 때가 있는데 나 혼자 좋아한다. 재미있더라.

맞다. 경찬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민욱 역할도 중요하다.
연습 때 연출님이 그러셨다. 원래 경찬이 위주의 대본이기 때문에 경찬이를 볼 수 밖에 없다고.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경찬, 민욱, 화영 셋의 구도가 확실하게 드라마가 보여서 초연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되게 뿌듯했다. 지금도 조금씩 상대 배우에게 피해 안 가게 디테일들을 바꿔가고 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걸 또 알아채는 관객들이 있어서 재미있다. 

다른 배우들의 공연은 봤나.
스페셜팀 형들 공연을 재미있어서 두 번 봤다. 원래는 내가 해야하는 캐릭터의 공연을 보면 연기적으로만 보게 된다. 그런데 보면서 처음으로 그게 없었다. 아예 상관없는 다른 공연을 보는 느낌이어서 그냥 웃다가 끝났다. 처음엔 보면서 형들한테 힘이 될만한 걸 얻어가야겠다 했는데 그냥 막 웃다가 ‘아 맞다!’ 이렇게 됐다. 그러고 나니까 공연이 끝났다. 그래서 한 번 더 봤다. 근데 또 웃었다. 그래서 그냥 혼자 해야겠다, 그렇게 됐다(웃음).

공연 기간이 길다. 몸을 계속 보여줘야 하는데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전작들을 할 때는 정서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까 뱃살에 신경을 많이 안 썼다(웃음). 근데 이건 갑자기 몸으로 보여줘야 하니까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뱃살이 나오고, 근육이 멋있고 이런 것보다 복싱선수로 보일 수 있을까, 그 정도의 몸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도 타이밍 맞게 예전에 좋았던 몸으로 돌아왔다. 식단관리는 잘 안 한다. 딱히 닭가슴살 먹으면서 하거나 이러지 않는다. 집에 가면 치킨도 먹고 한식도 먹고 많이 먹는다. 그만큼 움직이면 되니까.

경찬과의 액션 장면이 격해서 합이 잘 맞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다.  
경찬은 피하는 입장이고 나는 때리는 입장이다 보니까 연습할 때 다칠까봐 자꾸 때리는 척을 하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까 가짜 같은데 또 진짜로 하자니 불안하고. 한번 허정민 형이 내 주먹에 스쳐서 코피가 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공연 중에 정민이 형 옆구리를 때리는 시늉을 하다가 진짜로 때린 적도 있다. 형 동공이 엄청 커지더라. 사람 눈이 갑자기 그렇게 커지는 건 처음 봤다(웃음). 미안하다고 했다.

그것 말고도 유도 도복이 뻣뻣해서 멱살을 잡다가 손톱이 슥 들릴 때가 있다. 그래서 유도선수들은 손에다 테이핑을 하는데 우린 안 감는다. 공연하다가 손톱이 들리는 느낌이 났는데 다시 붙긴 했다. 공연 중에는 생각 안 나고 공연 끝나고 보면 깨닫는다.

경찬이 같은 사랑의 라이벌이 실제로 등장한다면.
난 포기한다. 뭔가 그런 걸로 감정을 소비하는 내가 조금 유치하게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될 거 였으면 그 전에 됐을 거 같다. 애써 사람 마음을 쟁취하려고 그런다는 게… 만약에 친구랑 시작이 같으면 나는 안 간다. 상대방에게 어필이 되기 전에 출발을 동시에 하면 난 빠진다. 

극 중 화영이는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좋다고 말한다. 배우로서 이현욱은 어떤가.
예전에는 못 그랬던 거 같다. 내 문제인데 하는 일에 대해서 회의감도 많이 느끼고 그랬다. 연극 하면서 내 일을 많이 사랑하고 스스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좀 더 고귀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 전에는 나에 대해, 내 재능에 대해 스스로 의심이 많았다. 그건 아직도 있지만 지금은 좀 많이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예전 같았다면 ‘유도소년’을 안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뭔가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걸 보면 내 일을 지금은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유도소년’엔 유독 가슴을 울리는 대사들이 많다. 본인이 생각하는 명대사는.
그 대사만 생각하면 소름 돋고, 항상 눈물이 난다. 유도부 코치님이 경찬이한테 '내가 지는 법을 먼저 알려줬어야 하는데 이기는 법만 가르쳤다'라고 하는 말이 너무 와 닿는다. 사실 민욱이 하는 대사 중에도 좋은 말들이 많지만 나는 그 대사가 대본 보자마자 탁 와 닿았다. 딱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 잘된 사람들 다 통틀어서 필요한 말인 것 같다.

대사 중에 ‘인생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 배우로서 이현욱에게는 어떤 시기인가.
민욱이 대사 중에 '우리 근육이 나오는게 덤벨 10개 들어서 나오는게 아니라 못 들겠어서 억지로 버티고 있을 때 나온다'는 대사가 있다. 내가 지금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버틴다고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니라 연기 생활하면서 안주하지 않고 뭔가 계속 생각하는게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되게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고, 그 중요한 순간에 이렇게 작업을 하고 있는 것도 나한테는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관객들이 가져 갔으면 하는 것은. 
초심과 열정 같다.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많이 잃어버린 것 같은 그런 마음들. 배우들이 앞에서 땀 흘리면서 몸 쓰고 땀 냄새, 파스 냄새 나고… 쿵쾅 거리면 의자에도 전달된다. 약간 4D 같은 느낌이지 않나(웃음). 그런거 느끼면서 잠들었던 감정들을 깨웠으면 좋겠다.

다음엔 어떤 작품 해보고 싶나. 
휴먼적인 거 해보고 싶다. 일상적인. 결핍도 없고, 화목한 인간적인 캐릭터. 이미지적으론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은 두 가지다. 완전 따뜻한 역할을 하거나 아주 치열한 역할을 하거나.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워도 내가 끌리면 할 것 같다. 민욱이란 캐릭터도 사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엄청 걱정을 많이 했다. 지금도 걱정하고 있고. 그런데 또 찾아가는 게 재미있다.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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