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2016년 최고 유행어의 주인공이다. 바로 ‘태양의 후예’에서 ‘서대영 상사’로 활약했던 배우 진구다. “~이지 말입니다”라는 군대식 말투와 극중 김지원과 러브라인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시청률은 38.8%로 대박을 쳤고, 드라마 종영 이후 해외 스케줄과 광고 섭외가 물 밀 듯 들어왔다. 배우 진구는 그렇게 슈퍼스타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구의 행보는 진중했다. 자신의 본분이 배우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느덧 SBS 드라마 ‘올인’으로 데뷔한지도 14년이 지났다. 길다면 긴 시간이다. 배우가 인기가 아닌 연기로, 그리고 작품으로 관객들과 마주한다는 건 이미 숨쉬는 것처럼 익숙한 일이 됐다. 하여 ‘태양의 후예’의 인기 역시 “위험하게 폭발한 작품”이라는 표현으로 거리를 뒀다.

그런 매력의 소유자다. 우직하다고 말하면 너무 강인해 보일까? 하지만 분명 주위 상황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 오롯한 걸음에 박수를 보내려 하면, “주변 사람 덕”이라며 공을 돌린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 있었던 진구와 제니스뉴스의 만남이 훈훈했던 이유다.

어쩌면 이번에 연기한 ‘원라인’의 사기꾼 ‘장 과장’이 다소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 과장’ 또한 나름의 소신과 의리가 있는 사기꾼, 그리고 주변인을 챙기는 인물이었다. 직업을 떠나 인간적인 매력이 서로 비슷하다고 느꼈던 시간, 그 이야기를 이 자리에 풀어본다.

첫 제안 받았을 때 고사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가 잘 읽히지 않았다. ‘장 과장’에 대한 매력도 안 느껴졌다. 그래서 고사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강력히 밀어붙였다. 결국 감독님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제대로 담겼다(‘원라인’ 속에서 ‘속아 넘어갔다’는 뜻으로 쓰이는 은어). 감독님이 아주 잘 담그신다. 전 사실 ‘원라인’이 흔한 범죄 오락 영화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메시지가 있는 영화였다.

‘태양의 후예’의 사랑꾼이 사기꾼이 됐다. 간극이 나름 크다.
두 캐릭터의 성향이 다르긴 하다. 전작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필요 없을 정도로 달랐다. 게다가 양경모 감독님이 절 완전 방목하셨다.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하라”길래 정말 편하게 연기했다.

방목형이 더 편하던가?
작품 마다 다른 것 같다. 방목을 당해도 풀을 뜯을 수 없는 영화도 있다. 사막에선 풀을 찾을 수없는 법이다. 그런 작품을 만났을 땐 양치기 소년, 감독의 디렉션을 따라다녀야 한다.

어떻게 얻은 미남 이미지인데, 아쉽기도 하겠다.
사실 전 이미 충분히 좋은 감독님과 좋은 작품을 지나쳐 왔다. 제 가치관이 ‘중간만 가자’다. 안전제일주의다. 가끔 ‘태양의 후예’처럼 위험하게 폭발하는 작품이 있다. 그게 참 사람 사는 재미 같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저 사실 한류스타, 혹은 미남이라는 수식어는 기대 안 한지 10년이 넘었다. 사실 그 이야기 듣고 싶어서 이 판에서 생활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길래 ‘연기나 열심히 하고 조용히 살자’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시끄러운 사람이 돼버렸다.

그러고 보면 ‘태양의 후예’가 끝난 지 벌써 1년이 됐다.
교류를 자주 하진 못하지만 얼마 전 1주년 파티를 했다. 감독님부터 작가님까지 다시 모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원라인’을 보러 오지 않았다. 우리가 그 정도로 끈끈한 사이다. 하하.

‘태양의 후예’에서는 뜨거운 러브라인을 펼쳤는데, 이번 작품에선 멜로가 없다.
아쉬울 건 없다. 대신 많은 분들이 “마치 영화 ‘타짜’ 속의 고니와 평 경장을 보는 듯 하다”고 말해줘서 기분은 좋다.

그만큼 임시완과 호흡이 좋았다는 뜻도 되는데.
시완이와 남남케미는 좋았던 것 같다. 브로맨스라기 보다는 사제지간 느낌이었다. 영화 후반엔 오히려 제가 시완 씨에게 배우는 지점도 있었다. 시완이는 배역에 대한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한다. 과하다. 그래서 저랑 (박)병은 형이랑 뜯어말리는데 바빴다. 보다 편하게 연기해도 된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그런데 시완이가 촬영 초반과 후반이 달라졌다. 점점 여유도 생기고 베테랑 냄새가 난다. 아마 다음 작품에선 더 잘 할 것이다.

결국 장 과장은 ‘돈’으로 장난을 치는 사기꾼인데, 배우 진구에게 돈과 명예, 둘 중 어떤 것이 중요할까?
명예다. 과거에 지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던 적도 있다. 반대로 많이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 없이 항상 전 행복하고, 배불렀다고 자부할 수 있다. 돈이 없는 것에 자존심 상하지 않는다. 돈 없는 건 내 탓이다. 허리 숙여가며 돈 빌리고, 밥 얻어먹고, 배만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거창하게 말해 명예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게 제 꿈이다. 그래서 명예라고 말한 것 같다.

영화 안에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쌓아놓고 있는데, 그 정도의 양이면 사람이 돈에 대한 꿈을 꾸기 마련이다.
실제 지폐는 아니지만 ‘전부 다 내 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시완이랑 돈다발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정말 많았다. 다 세어지지도 않을 많은 양이었다. 한 다발에 100만 원으로 세볼 때 대충 계산해도 1000억 원 정도였다.

돈 많으면 어디에 쓸 건지?
그 돈으로 사업을 벌리지는 않을 거다. 그저 피규어 사고, 농구화 살 거다. 피규어 모으는 게 취지다. 주변에 소문이 나서 선물도 피규어로 들어온다. 작년 생일엔 소속사 대표인 (손)석우 형이 마이클 조던을 사줬고, 얼마 전엔 매니저가 이소룡을 사줬다. 무려 75주년 한정판 피규어다.

BH엔터테인먼트(소속사)와 끈끈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태양의 후예’가 잘 돼서 소속사에서 좋아했겠다.
‘태후’의 인기 이후 공허하거나 초조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일이 없다. 제 주변엔 착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많다. 조바심을 내려 할 때 그 바보들이 제 앞에 더 열악한 고민을 들고 온다. ‘와 난 정말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던 거구나’라는 걸 느끼게 한다. 그 바보들 중 가장 바보가 바로 손석우 대표다.

얼마나 바보이기에?
저도 저에 대한 믿음이 있는데, 저에 대한 믿음이 저 보다도 큰 사람이 바로 손 대표다. 제가 주저 않고 싶을 때 절 끌어올린다. 그 형이 은퇴한다고 한지가 10년이 넘었다. “왜 안 하냐”고 따져 물으면 “너 잘 되는 거 볼라고”라고 한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가 잘 됐다. 그래서 다시 물어보니 “너의 끝이 궁금해서”라고 했다. 형이 데뷔 시켜서 지금까지 데리고 있는 배우가 제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저만 편애한다는 게 느껴진다. 소속사 회식 자리에 잘 안 나가는 이유도 그거다. 하하. 나만 사랑 받는 걸 보여주기 조금 그렇다.

예전에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겠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보질 않았다. 그런 생각은 한다. ‘다시 고3 때로 돌아가서 미친 듯이 공부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다. 다시 하면 잘 할 것 같다. 만점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거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하는데, 막상 해보라면 어려울 일이다. 공부라는 거 어렵다.
맞다. 예전에 너무 심심해서 언어영역 문제를 건드려 본 적이 있다. 1번 문제 읽으면서 다시 덮었다. 무슨 지문이 그렇게 긴 건지. 작가가 의도한 걸 찾으라는데 무슨 소린가 싶었다. 공부는 다시 태어나도 포기해야 하는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는 게 제 목표다. 나이를 들면 역할도 작아지고 제 체력도 떨어지겠지만, 그 시점에서 주어지는 역할에 감사하며 연기하고 싶다. 제 아이가 배우를 하겠다해도 응원할 거다. 배우라는 건 매력 있는 직업이다. 연기를 한다는 건 너무 행복한 작업이다. 아들의 오디션 낙방을 어찌 볼까, 무명 기간을 어찌 볼까 싶지만, 모든 직업에 힘든 시절이 있다. 그건 본인이 헤쳐 나가야 할 몫이다. 무엇보다 남자로서 괜찮은 직업 같다. 배우는 정말 매일 다른 일을 한다. 마치 모험과 탐험의 길이다. 인생이 지루할 틈이 없다.

만약에 다시 태어나서 또 다시 배우를 한다면, 그때도 BH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갈 건가.
당연하다. 석우 형과는 지금이라도 종신계약을 해도 괜찮다. 제 목숨도 내 놓을 수 있는 의리는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들이 연기를 한다면서 BH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겠다 해도 추천할텐가.
그건 석우 형한테 부담을 주는 일이다. 제 자식인 걸 감추고 들어간다고 하면 추천할 거다. 하지만 석우 형이 제 자식 얼굴을 모를 리도 만무하고, 만약 얼굴을 모른다고 가정한다면 신분을 숨기고 오디션을 보라고 할 거다.

 

사진=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