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어느날' 천우희 "인생 연기 했는데..., 발만 나와 억울했죠"
[Z인터뷰] '어느날' 천우희 "인생 연기 했는데..., 발만 나와 억울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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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배우에게 "연기 잘한다"는 것만큼 최고의 칭찬이 있을까? 지난 2014년에게 있어 천우희라는 이름 세 글자 위엔 바로 그 찬사가 수 없이 쏟아졌다. 영화 '한공주'를 통해 청룡영화상을 비롯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올해의 영화상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눈물 어린 수상소감은 그가 연기에 바쳤던 노력의 반증이었고, 이에 관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후 천우희는 올곧은 길을 걸어왔다. 배역의 크기에 관계 없이 '카트' '손님' '뷰티인사이드'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냈고, '해어화'와 '곡성'을 통해 주연 연기를 펼쳤다. 흥행이야 배우의 손을 떠난 결과. 그러나 천우희의 연기 만큼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충무로의 기대주는 한국 영화의 대들보로 자리매김 했다.

최근 천우희는 영화 '어느날'의 '단미소'로 관객을 만났다. '단미소'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인물로 영혼으로서 병원읠 배회하는 인물이다. 오로지 보험회사 과장 '이강수'(김남길 분)의 눈에만 보이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이끌어낸다. 

'단미소'는 배우로서는 여러 숙제를 안기는 역할이었다. 시각장애인이었고, 실체가 혼수상태에 빠진 영혼이었으며, 하여 1인2역을 해내야 했다. 그리고 천우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능히 해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제니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인생 연기를 펼친 것 같다"고 말한 천우희. 그와 나눈 영화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 전한다.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엔 고사했다고 들었다.
처음 읽었을 땐 여러 이유로 작품을 하는 것에 대해 주저했다. 결국 이윤기 감독님에 대한 믿음으로 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이윤기 감독님의 전작과 너무 달라서 어떻게 그려질까 궁금해졌다. 이후에 이윤기 감독님을 만난 후에는 ‘감독님 식으로 표현되겠지’라는 믿음이 생겼다. 감독님의 결대로 잘 만들어 주신 것 같다.

시각장애인을 연기했다.
무엇보다 흉내내는 것처럼 보이는 걸 제일 경계했다. 초기 제작 단계부터 도와주신 선생님이 계신다. 시각장애가 실제로 있으신 분과 그 분을 케어하는 분이셨다. 여러가지를 질문하고 들었다. 그러나 행동양식 같은 걸 공부할 필요는 없었다. 어느 정도 사전분석을 통해 알 수 있겠으나, 연습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빛을 차단하는 전시, ‘어둠속의대화’를 가봤다. 정말 시각장애를 체감하는 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이번에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제게도 시각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편견일까?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정말 예쁘게 꾸미고 오셨다. 손톱도 하고, 메이크업도 완벽히 하고, 하이힐도 신고 오셨다. 정말 내 자신에 대해 소름 끼쳤다. ‘그동안 내 마음대로 생각해왔구나, 내 마음대로 장애인에 대해 이럴 거, 저럴 거라고 재단해왔구나’ 싶었다. 정말 그냥 똑같았다. 그 나이에 좋아하는 것, 고민하는 것들도 같았다. 정말 많이 반성했다. 

어렵게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멋진 연기가 나왔다. 미용실에서 나오는 신은 천우희 씨가 우는 모습만으로도 관객을 울리기 충분했다.
고성 로케이션이었는데, 선생님들이 현장까지 와서 도움을 주셨다. 개인적으로 그때 연기가 제 인생연기라고 생각한다.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라 리허설 겸 슛을 들어갔는데 정말 최고의 몰입이었다. 주변 스태프들도 눈물을 흘렸고, 저도 모니터링하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모니터를 보니 발만 찍혀있어서 무척 억울했다. 하하. 얼굴 표정이 잡힌 신은 다음날 다시 촬영한 부분이다. 사실 로케 현장을 미리 가보지 않았었다. 미소에게도 굉장히 낯선 곳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더 그랬을 거다. 그 느낌을 가지고 가고 싶었다.

김남길과 호흡이 참 좋아보였다.
일하면서 많이 배웠다. 저보다 선배이고 오빠라서 이런 표현이 미안하긴 한데, 정말 똑똑하다. 전 제 것을 잘해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자 주의인데 오빠는 정말 여러가지, 조명부터 작은 소품까지 신경 쓴다. ‘내 연기하기도 힘든데, 저런 에너지가 다 될까’ 싶었다. 어쩌면 오빠의 성향인 것 같다. 연기적인 호흡도 참 좋았다. 오빠가 본인만 돋보이려 하는 타입이 아니다. 워낙 털털하기도 해서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이윤기 감독의 작품이고,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리다 보니 멜로가 없다는 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이번 영화는 멜로와 전혀 다른 방향이니까 그 부분이 있으면 안 됐다. 물론 로맨스와 멜로도 하고 싶다. 아직 팬들 중엔 "안 돼요, 스킨십 하지 말아요" 하는 분들도 있지만(웃음), 저로서는 많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아직 제겐 보여드릴 모습들이 많다. 작품을 할 때 제게 주어지는 미션들이 있고 그걸 표현해낸다. 좋은 작품으로 저의 다른 면을 더 이끌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팬들의 반응도 체크하는 편인가?
요즘엔 악플도 달린다. 예전엔 아는 분들만 절 알아주셨다. 그래서 "화이팅" "힘내요" 이런 리플만 달렸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반응이 생겨났다. 다 관심이라고 생각돼 기분 나쁘진 않다.

'한공주' 이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청룡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곡성'은 칸에도 진출했다. 연기 잘 하는 배우, 야무진 배우, 똑똑한 배우라는 평을 받고 있다.
사실 전 '써니' 이후에 2년 정도 슬럼프 때문에 고생했다. 오디션 결과들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 당시엔 '빛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한공주'를 만나 캐릭터에 의지했고 위로 받았다. '한공주'로 상을 받아서, 주목 받아서가 아니라 그 힘든 캐릭터로 인해 어려운 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받았다.

이제는 오디션에 일희일비하는 위치는 아닐텐데, 요즘에도 힘든 부분이 있을까?
예전에 비하면 기회도 많아지고 작품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반대로 생각보다 어려움도 커진 것 같다. 예전엔 '일이 많아질수록 편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나보다. 배부른 생각이었다. 막상 닥치니까 현실은 어렵다. 

이를테면 들어오는 작품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들다던가?
아니다. 오히려 예전엔 시나리오 하나만 보고 선택했다. 반대로 지금은 보다 부드러운 지점이 있다. 이번 '어느날'도 '중간 규모의 영화가 없으니, 내가 발 벗고 나서야겠다'라는 마음도 있었다. 예전엔 시나리오가 재미 없거나, 당위성이 없으면 연기하기 쉽지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영화를 볼 관객들, 그리고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많아진 것 같다.

언제나 느끼는 건 참 똑부러지는 배우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을까?
어렸을 때는 쑥스러움이 많았다. 그런데 장기자랑은 꼬박 나갔던 것 같다. 하하. S.E.S 센터 출신이다. 그런 면에서 내성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반장이나 부반장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쑥스러울 때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 연기하는 걸 보면 "신기하다"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다.

쑥스러움이 많았는데도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꿈이 없었다. '나는 뭐가 되려고 태어났지?'라는 고민을 했을 정도다. 고등학교 때 친구와 떨어지기 싫어서 연극반에 들어갔다. 그런데 무대에 오르니 평안해졌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러다 전국 청소년 연극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잘한다고 하니 쉽게 느꼈나 보다. 진지하게 '연기 해야해'라는 생각보다는 '연기가 흥미롭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결국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됐다.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매일 변한다. 연기로 뒤지지 않는 배우이고 싶었는데, 요즘엔 좋은 사람도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면서 좋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어려운 표현 같은데, 어떤 배우는 사람은 참 좋은데 연기가 부족할 수 있고, 어떤 배우는 연기는 참 좋은데 인성이 별로일 수 있다. 둘 다 좋은 배우이고 싶다.

 

사진=오퍼스픽쳐스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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