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영화 '걷기왕'에서 목소리 연기를 했던 '소순이'(소)의 눈과 똑 닮았다. 크고 맑은 눈을 껌벅거리며 느릿하게 입을 떼어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최근 제니스뉴스가 서울 삼청등의 한 카페에서 만났던 배우 안재홍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소순이의 흔적을 느꼈을 인터뷰의 중반, 카페의 테이블엔 츄러스가 등장했다. 순간 슬그머니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음식으로 다가가는 모습, 초코 시럽을 가리키며 "이건 뭔가요?"라고 묻는 안재홍에게는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느낌의 정점을 찍은 것은 "아! 초코시럽 보다는 연유였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 가득 담긴 '정봉'스러운 멘트였다.
안재홍은 5월 황금연휴 기간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에 그가 연기한 역할은 왕(이선균 분)을 지척에서 보좌하는 사관 '윤이서'다.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다소 어리바리한 캐릭터다. 안재홍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가 슬쩍 엿보이기도 해 더욱 반가운 인물이다.
그러나 작품을 이야기하는 안재홍은 정봉이, 윤이서 등 자신의 작품 속 인물들과 달리 훨씬 신중하고 진지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기 보다는 부족한 경험치를 생각했고, 상업 영화 첫 주연에 대한 흥분 보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더 신뢰할 수 있는 배우 안재홍과 제니스뉴스가 나눈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상업 영화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맡은 게 처음이다.
대중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제안을 받았을 때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많았다. 고민은 늘 하는 것 같다. 신중하려고 노력한다. 작은 역할이라도 고민을 하고, 예민하게 보려한다. 영화가 나온 후 일반 관객 시사 때 몰래 들어가서 반응을 지켜보기도 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기분 좋았다.
그래도 흥행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경험이 많았다면 그런 책임을 느낄 것 같다. 그러나 제겐 처음인 주연작이다.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하하. 전 정말 관객수 예측을 못한다. 누군가 물어보면 항상 다 틀렸다. 근처에도 못 다가갔던 것 같다.
상업 영화 첫 주연작으로 '임금님의 사건수첩'을 선택한 이유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가 저의 친숙한 이미지와 닮아있다는 것도 매력있었다. 이야기가 흘러가고 오보는 성장해간다. 그 변화가 자연스러웠다. 탐이 나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함께 출연한 이선균 선배도 큰 몫을 차지했다.
이선균 씨와는 원래부터 알던 사이라고 들었다.
저예산 영화의 제작부 스태프로 일할 때 알게 됐다. 그때 전 대학생이었다. 연기전공인데 스태프로 일하며 현장 경험 하는 것을 귀엽게 봐주셨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셨다. 전 학생이었고, 선배님은 이미 사랑받는 배우였다. 쉽지 않은 일이다. '족구왕' 때도 따로 연락 주셨다. 그런 선배님이 여러 명이 계신 게 아니다. 정말 이선균 선배님 딱 한 분 같다. 멋있는 형님이라 생각한다. 물론 형님으로 느끼기에 나이차가 가까운 건 아니지만, 이번 작품하면서 더 가까워졌다. 가족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을 선택하는데 오래걸렸다고 이선균 씨가 서운해 했다.
큰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고, 결정하고, 답을 드리는 과정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잘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기간은 아니었다. 작품을 잰 것이 아니라 신중이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이선균 선배님이 제게 이야기 해주셨던 게 큰 힘이 됐다.

친숙한 이미지와 닮아있다 했지만, 사실 많은 인기를 끈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 보다 더 진지한 사람 아닌가?
맞다. 저 웃긴 사람 아니다. 이번에도 진지하게 일했다. 하하. 우리 영화가 처음부터 코미디 영화로 시작했던 것이 아니다. 아마 이선균 선배님도 같은 생각이실 거다. 오락영화,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결을 담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코미디를 유발한다기 보단 임금님과 사관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조화의 재미를 담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윤이서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리바리한 오보의 모습도 있다. 또한 청운의 꿈을 걷고 있고, 사관에 대한 사명감, 임금에 대한 충정도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인물이다. 톤앤매너를 정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다.
오보는 그 시대에 장원급제를 할 만큼 총명한 인물이다. 그런 친구가 허둥대는 것을 표현하는데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궁이라는 환경에 집중했다. 그 누구라도 낯선 환경에 가면 어리바리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이등병처럼?
맞다. 아무리 똑독하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도 군대에 가면 똑같아 진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이서가 성장하고 우직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그렸다.
코미디 영화로 시작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영화에 웃음 포인트는 여러 곳에 존재한다. 판타지적 설정도 있다. 이서가 기억력을 더듬는 장면이다.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얹고 찡그리는 얼굴이 너무 웃겼다.
대본에서부터 강조 됐던 신이다. 그렇지만 그런 동작까지 설정됐던 건 아니다. 감독님께서도 포인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여러 동작을 해봤다. 주먹을 꽉 쥐어보기도 했고, 인상을 찡그리고 용을 써보기도 했다. 결국 이선균 선배님의 제안으로 그 동작이 나왔다. 처음엔 놀리는 줄 알았다. 너무 만화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 영화의 원작도 만화다. 그래도 의심을 갖고 촬영했는데 결국 이서라는 캐릭터를 드러내는 포즈가 됐다.

사극이라 어려웠던 지점도 있겠다.
작년 여름이 제 인생에서 제일 더웠다. 물론 수치적으로도 유례 없는 폭염이라고 했던 작년이다. 정말 군대있을 때보다 더웠던 것 같다. 그런데 옷을 다섯 겹을 입어야 했다. 특히 사극에서는 옷의 풍채를 살리기 위해 두툼한 조끼를 입는다. 그래야 태가 산다. 선균 선배님이 그 옷 때문에 더 더운 것 같다고 하셨는데, 사실 전 그걸 안 입었었다. 하하하. 안 입었는데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천만다행인 건 전 수염을 안 붙였다. 아마 붙였으면 더위에 다 녹아내렸을 거다.
영화 속에서 이서가 긴장했을 때 흘리는 땀이 분장이 아니었나보다.
글리세린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신데 따로 분장한 게 아니다. 실제 땀이었다.
영화의 캐릭터가 너무도 좋다. 속편도 기대할 법한데.
이걸 말하는 게 참 조심스럽다. 일단 기대는 분명히 있다. 영화의 엔딩에 속편의 여지를 남겨뒀다 생각한다.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시리즈로 간다면 분명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분명 안재홍에게 하나의 도전이었을 터다. 앞으로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은지?
사랑 받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다양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 진짜 솔직한 바람이자 마음이다. 어떤 분께서 "다양한 경험을 잘 쌓아가면 좋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좋은 흔적이 생긴다"고 말해주신 적있다. 시간이 있을 때 여행도 다니고, 좋은 책과 영화를 본다. 그렇게 좋은 작품에 들어가면 연기자로서, 한 명의 사람으로서 좋은 힘, 좋은 에너지를 준다는 것이 기쁘다. 아직 저는 젊다. 그게 참 좋은 일 같다.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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