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정말 주변에 있을 아저씨 같아 친근한 배우다. 그렇게 우리 곁에서 숨 쉴 것 같기에 그가 나오는 영화는 현실처럼 느껴진다. 배우 이성민의 이야기다. 영화 ‘보안관’의 ‘대호’도 그렇다. 마포구보안관이 하하라면, 부산 기장의 ‘보안관’은 ‘대호’다. 전직 형사로서 허세롭고 목소리도 크지만 동네 궂은 일엔 발 벗고 나서는, 우리 시대 아재들의 리더다. 여느 곳에 있을 캐릭터를, 어느 곳에 있을 법한 배우가 연기했다. 영화 ‘보안관’이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최근 제니스뉴스가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성민을 만났다. 실제로 만난 이성민은 차분하고 조용한, 담백한 사람이었다. ‘호기로운 대호와의 간극이 크다’고 느낄 때쯤 최근 ‘보안관’ 팀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예능 출연을 굉장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진 이성민이다. 그러나 영화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해 고군분투하는 동생들에게 미안했을 터다. 하여 제작진에게 몰카를 제안했고, 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몰래 스튜디오를 찾았다. 대호와는 다르지만 그가 현장에서 가졌을 리더십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성민은 영화 ‘보안관’에 대해 “된장을 베이스로 한 프랑스 요리 같은 영화”라 한줄평 했다. 고개를 끄덕이다 이성민을 바라보니, 어쩌면 ‘이성민이 바로 그런 배우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미소로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무는, 그러나 연기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섬세한 ‘된장을 베이스로 한 명품 배우’ 이성민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완성본을 본 소감은 어떤가?
영화가 생각보다 품위 있게 나왔다. 저희는 엄청 많이 까불면서 찍었는데 고급지게 나왔다. 뭐랄까, 기장에서 된장을 베이스로 한 프랑스 요리를 먹은 느낌이다. 너무 자화자찬일까? 하하. 제가 유럽 코미디 영화를 좋아한다. 꼭 그런 느낌으로 찍은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잘 보지 못했던 코미디가 나온 것 같다.
독특한 비유다. 생각보다 품위있게 나왔다는 말은 시나리오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일까?
맞다. 시나리오에선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촬영할 때 '너무 과하게 하지 않았나'는 걱정이 있었는데, 완성본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군도' 때에 이어 또 다시 '대호'라는 이름을 썼다.
안 그래도 감독님이 '군도' 때 같이 했던 조감독이다. 감독님의 작업 방식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이번 작품에 바로 오케이를 했다. 저의 처진 살과 젊음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안 그래도 '대호'에 대해선 또 다시 그 이름을 쓴 이유가 있는지,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물어봤다. 별 뜻은 없다고 했다. '대호'의 매력에 대해 "비주류라 끌렸다"고 한 적이 있는데, 제도권 안 쪽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서 좋았다.
'대호'의 지역사랑, 동료사랑이 굉장히 강하다. 리더십만으로는 설명되기 힘든 성격이다.
그런 애정은 과거 자신의 실수에서 온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후배 형사가 죽은 후에 생긴 트라우마가 강한 집착을 남겼다고 본다. 영화에서는 편집됐지만 대호는 죽은 후배의 가족들을 정기적으로 도와온 그런 인물이다.
'보안관'은 대놓고 아재들의 영화다. 현장 분위기 하나는 정말 좋았을 것 같다.
건강하고 밝은 분위기의 영화다. 현장도 마찬 가지였다. 일종의 패밀리 같은 '사나이픽쳐스'만의 작업 방식이 있다. 그들이 가지는 현장에서의 활기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단지 아쉬운 건 여자가 안 나온다. 어쩌면 '보안관'은 사나이의 영화가 아니다. '군도' 때는 양기 강한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면, 이번엔 동네 아줌마 같은, 갱년기 남성들의 모임이다. 어쩌면 (그 나이에 접어든)한재석 대표님의 영향일 수도 있다. 하하.
바다 앞 컨테이너에 모여있는 아재들의 모습이 여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정감있는 모습이라 좋았다.
현지에 정말 그런 아저씨들이 있었다. 스태프들과 낚시를 하다가 라면을 먹는데 몇몇 나이 든 아저씨들이 모여계셨다. 캐릭터도 우리와 비슷했다. 마을 대소사를 이야기하는데 바람 잡는 사람이 있고, 맞장구 치는 사람이 있고, 기가 센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랑 너무 닮아있어서 키득대며 웃었다. 어느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따뜻한 이웃의 모습 같다.
그런 모임에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는데, 실제로는 술을 못 마시는데도 불구하고 음주신이 참 리얼했다.
꼭 몸으로 해봤어야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제가 술 취한 사람을 옆에서 봐온지 30년이 넘었다. 엄밀히 말하면 고등학교 때부터 지켜봐왔다. 언제나 나 혼자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봐온 사람들의 모습이 내게 각인된 것 같다. 옛날엔 뒷정리까지 싹 해냈었는데, 이젠 나이가 들으니 그렇게까지는 힘들어졌다.

영화 속 코미디 코드 중 하나가 '영웅본색'의 패러디이자 오마주다.
전 사실 '영웅본색' 보다는 '첩혈쌍웅'을 더 좋아했다. 제가 '영웅본색'을 본 시기가 딱 사춘기 시절이다. 그땐 그땐 부모님보다 친구가 더 중요했을 때다. 지금 애들도 그렇다. 제 딸이 고등학생인데, "아빠가 좋아? 친구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답이 바로 안 나온다. 딱 그럴 시기인 거다. 지금 중년 아저씨들이 당시를 떠올리며 로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시기, 그리고 그런 영화가 '영웅본색'이다.
이번 촬영을 하며 제 젊은 시절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 같다. 아직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아마 예전 영화라 우리 영화 속에서 '영웅본색'의 오마주를 못 느끼는 관객들도 있을 거다. 정말 여러 오마주가 있다. 음악도 정말 어려운 과정을 거쳐 차용한 걸로 알고 있다. 어떤 극장에선 '대호'가 제트스키를 타고 등장하는 순간 아저씨들이 박수를 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젊음으로 돌아간 과정, 마음도 그랬겠지만 몸도 그랬다. 영화 속 몸을 만드느라 운동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제가 워낙 운동을 멀리하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감독님이 원하는 몸은 복근이 튀어나온 몸이 아닌 탄탄해 보이는 아저씨의 그림이었다. 그런데도 제겐 정말 많은 운동량을 필요로 했다. 무엇보다 식이요법 하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체중 유지를 안 먹는 걸로 하는 편인데, 정말 촬영 중엔 어지러울 때가 있었다. 소위 말 하는 당 떨어지는 현상을 겪었다.
'보안관'을 홍보하며 예능에도 잠시나마 얼굴을 비췄다. 주연 배우로의 책임감이라고 봐도 될까.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저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이름값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름값엔 좋은 연기, 책임 등 여러 의미가 있다. 확실히 책임의 무게가 커졌고, 그래서 신중하게 된다. 젊었을 땐 좋았다. 아무렇게 해도 됐고, 잘 못하면 다시 하면 됐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니 그러지를 못한다. 자신감도 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보안관'이 중요한 갈림길이었다. 잘 되든, 아니든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 그게 제 팔자다. 전 아직 그런 것들을 질길 경지가 못 된다. 딱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다.
평범한 아재들이 활약하는 영화라 좋은 '보안관'이다. 이번 영화가 잘 돼서 한국 영화에 보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시리즈로 돼서 후속도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 영화가 로컬 수사극이라고 하는데, 우리끼리는 이 영화를 '히어로물'이라며 작업했다. '대호'가 아이언맨처럼 슈트를 입는 건 아니다. 우리가 시골 아저씨처럼 입었으니 망정이지, 까만 슈트 입고 홍콩에 서 있으면 땟깔이 날 거다. 한국적인, 서민적인 히어로 영화가 바로 보안관이다.
속편, 시리즈의 그림은 그려보긴 했다. 우리끼리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우리 멤버가 딱 6 명, 거기에 조진웅까지 들어오면 7 명이 된다. 뭔가 '7인의 사무라이' 같은 그림도 나올 거 같다. 그러니 이번 작품이 잘 돼야 한다. 우리가 러시아나 미국으로 갈 수도 있는 일이다. 아재들의 어드벤쳐가 펼쳐질 수 있을 거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저작권자 © 제니스글로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