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연나경 기자] 계속 선한 얼굴로 대중 앞에 서다가 두 번째 악역을 연기했다. 전작에선 밉상인데 사랑스러웠다면, 이젠 그가 하는 행동이 기가 차는데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는 수식어가 임세미와 참 잘 어울릴 듯했다.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KBS2 ‘오늘부터 사랑해’ 등 주로 선한 모습을 보여줬던 임세미다. MBC ‘쇼핑왕 루이’를 통해 밉상 캐릭터에 한 발짝 다가갔지만 다른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새 발의 피였다. 그런데 임세미는 KBS2 ‘완벽한 아내’ 속 꽃뱀 ‘정나미’를 통해 사람을 정떨어지게 했다.
그러면서도 임세미가 연기한 ‘정나미’를 보고서는 동정심이 들기도 했다. 죽음을 극복하고 구정희(윤상현 분) 옆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며 걸크러쉬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구정희를 좋아했던 이은희(조여정 분)의 손에서 또 한 번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정나미는 떨어지는데, 미워할 수 없었다.
지난 10일 임세미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제니스뉴스 사옥에서 제니스뉴스를 만났다. 임세미는 제니스뉴스에 ‘쇼핑왕 루이’ 속 ‘백마리’와는 다른 ‘정나미’를 만들기까지의 노력을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Q. 체력적으로 아주 힘들었을 드라마였겠다.
실제로 감정 소모보다 체력 소모가 많았어요. 꽃뱀이긴 하지만 누군가를 사로잡는 장면보다는 맞고, 죽는 장면에 더 많았거든요. 그래서 드라마 끝나고 계속 집에서 쉬면서 지냈어요.
Q. 연속으로 드라마 속에서 기존의 악녀와는 결이 다른 악녀를 소화하게 됐는데.
‘쇼핑왕 루이’의 마리도, ‘완벽한 아내’의 나미도 사랑스러운 악역이었던 것 같아요. ‘완벽한 아내’ 촬영 전에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께서 “임세미라는 배우가 정나미를 사랑스럽게 풀어줬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고소영 선배님의 남편을 뺏고, 돈을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친구라 연기하기 전에 걱정이 됐죠. 그래도 매 신마다 집중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Q.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악역인데, 이미지 걱정은 없었는지.
임세미를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작품이 없었고, 제가 젊으므로 이미지 관해서 걱정은 없었어요. 악역 이미지로 굳어져 버리더라도 이미지를 바꿀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완전한 악역은 아니었잖아요.
Q. 아무래도 ‘쇼핑왕 루이’ 속 '백마리'와는 다르게 보였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더 대본에 충실히 하려고 했어요. 작품에 임할 때 늘 ‘시나리오에 빠져들자’라고 다짐하고 연기하거든요. 대본 속 마리와 나미는 달랐으니까 대본 속에 있는 나미의 느낌을 최대한 표현해보려고 노력했어요.
Q. 누군가를 유혹하는 역할이라 화려하게 보였어야 할 텐데.
옷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고급스럽게 화려한 것보다 생기있는 화려함을 추구했던 것 같아요. 20대의 싱그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함을 표현하려고 했고, 남자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는 웨이브 헤어를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디테일하게 만들어가다 보니까 재미가 생겼어요. 그때 ‘스타일도 연기에 포함되는 것이구나’ 싶었어요.

Q. 윤상현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췄다. 그런데 전작에서 너무 친해졌다고.
상현 오빠 초대로 돌잔치도 다녀왔어요. 마이크 잡고 상현 오빠 아이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줬는데 오빠와 극 중에서 키스를 해야 하는 거예요. 서로가 상대역이라는 사실을 듣고 오빠께서 “네가 이 작품 할 줄 몰랐다”라고 하셨고, 저도 “피하실 줄 알았는데 안 피하셨네요”라고 그런데 시청자분들께서 ‘쇼핑왕 루이’가 아니라 ‘완벽한 아내’ 속 캐릭터로 봐주셨어요. 감사했죠.
Q. ‘쇼핑왕 루이’에서 아버지였던 김규철 배우도 ‘완벽한 아내’에 출연했다.
그래서 셋이서 “’쇼핑왕 루이’ 시즌 2 찍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도 했어요. 같은 극단에서 동고동락하는 연극팀이 다른 작품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Q. 시청자들 사이에서 임세미의 죽음이 충격적이었다는 평이 나온다. 두 번 죽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죽는 연기 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니까. 원래 대본에 ‘눈 뜨고 죽어있다’라는 지문이 있었는데 두 번 모두 눈 뜨지 못하고 죽은 것 같아요. 그런데 눈을 뜨고 죽으면 나미에게 너무 한이 많을 것 같아서 ‘눈을 감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눈 감고 죽기로 했어요. 시청자들이 그 장면을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어요.
Q. 정나미가 살아서 돌아왔을 때 활약을 기대했는데, 다시 죽음을 맞아 굉장히 아쉬웠다.
저도 시청자와 같은 마음이었어요. 방송을 보는데 “나 죽어?” 싶었고 실감도 안 났어요. 감독님께서는 “왜 이렇게 허무해? 정말 나미가 죽었어?”라는 반응을 예상하고 연출을 하셨던 것 같아요. 출연하는 배우들과 함께 마무리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논밭 일이라도 도우면서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웃음)
Q. 만약 정나미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개과천선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면 봉구(성준 분) 오빠가 달려와서 머리채를 잡았을 것이고 혼냈겠죠. 그런데 이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같아요. 나미가 많은 분의 마음속에 아련한 인물로 남았잖아요.

Q. ‘완벽한 아내’ 촬영을 하면서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고.
제가 와이어를 생각보다 잘 타더라고요. ‘몸을 잘 쓰는구먼’ 하고 뿌듯해했어요. 방송을 본 가족들도 “네가 저거 직접 연기한 거야, 액션 배우가 연기한 거야?”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래서 제가 했다고 자랑했었죠.
와이어는 액션 스쿨에서 처음 타봤어요. 운동을 좋아하는데 와이어를 탈 때는 운동할 때와 또 다른 근육을 쓰더라고요. 처음 와이어 탔을 때 일주일 동안 몸살을 앓았어요. 급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Q. 임세미의 연기 행보가 급하지 않았기에 더욱 저 말이 와닿았을 듯하다. 시청자에게 임세미를 알리기까지의 시간을 기다려 온 원동력이 있을까?
어릴 땐 누구나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그랬는데, 힘들어할 시간에 다른 활동을 더 하자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신나게 놀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수없이 해보고. 그러면서 ‘지금의 활동들이 나중에 다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농담했어요. 긍정적으로 살아왔던 게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Q. 이제는 전과는 다른 고민이 생겼을 것 같다.
어떤 마음가짐을 한 배우가 되어야 할까 생각해요. 대중의 기대치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소신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Q. 대중의 기대치를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변신을 원할 것 같은데.
이것저것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캐릭터에 구애받지 않아요. 그저 잘 즐길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이제까지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는 캐릭터를 많이 맡아서 장르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메디컬 드라마라던가 법을 다루는 드라마에 관심이 가요. 사실 드라마와 영화를 가리지 않고 기회가 있으면 무엇이든지 하고 싶어요.
Q. 임세미에게 ‘정나미’란.
파란만장한 친구였어요. 다양한 사건을 마주하기 쉽지 않은데 모든 풍파 속에 나미가 있었죠. 어떤 작품을 하더라도 ‘나미를 연기할 때 그렇게 정신이 없었는데 이 작품도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모든 작품, 캐릭터가 소중하지만 나미는 인생 캐릭터에요.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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