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슈퍼맨의 사나이’ 이후 9년 만의 상업 영화 복귀였다. “머리 속에선 항상 영화를 찍고 있었다”는 정윤철 감독이었지만, 그 이야기와 영상을 스크린으로 펼쳐내는 건 영화 감독이라면 누구나 설렐 일이며, 직업적 사명의 표출일 터다. 그렇게 정윤철 감독은 영화 ‘대립군’을 관객에게 내놓았다.
정 감독은 ‘대립군’을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가라 말했다. 영화 속의 광해는 백성, 그리고 대립군과 함께 하며 그들에 의해 오롯한 군주가 된다. 우리도 그랬다. 국정농단의 늪을 건너, 탄핵의 벽을 넘고,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 우리나라다. 국민이 국가의 리더를 내리고, 새로이 올렸다. 국민을 대신하여 서 있는 리더, 그래서 ‘대립군’과 현실은 닮아 있었다.
제니스뉴스와 정윤철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정치, 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 감독의 사견이 담겼기에 영화 흥행에 영향을 미칠까 하여 다소 늦게 공개할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을 이 자리에 전한다.
오랜만에 상업영화 출사표를 내밀었다.
임진왜란보다 더 긴, 9년에서 10년의 시간이다. 그래도 계속 영화를 준비해왔으니까, 공백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저는 계속 제 머리 속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마다 머리 속에선 수백 번씩 영화를 보고 있다. 결과물이 없었을 뿐이다. ‘대립군’은 운명이 닿아서 이렇게 태어나게 됐다. 허나 잘못된 만남이 아닐까 싶었다.
왜 잘못된 만남인가?
너무 힘들었다. 사극이고, 액션이고, 로드무비였다. 그리고 암울한 시기에 촬영을 했다. 물론 그 시기에 힘들지 않은 국민은 없었을 거다. 리더에 대한 좌절과 실망이 컸었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모두가 헬조선이라고 부르며 살아갈 때 진짜 지옥의 조선, 임진왜란의 참상을 그렸다.

각색에 이름을 올렸다. 첫 시나리오는 어땠을까? 각색의 비율은?
처음 받은 시나리오는 대립군들의 삶에 더 주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각자의 가족들이 이야기도 많았다. 각색을 거치면서 개개인의 사연들을 줄이고, 광해와 토우의 투톱 스타일로 맞춰갔다. 곡수라는 캐릭터를 추가하며 세 명의 갈등 축을 구축해냈다.
세 명의 갈등이지만 투톱의 스타일인건, 어쩌면 토우와 곡수는 한 사람의 양면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거다.
맞다. 토우의 또 다른 내면이 곡수다. 광해의 또 다른 내면이 덕이일 수도 있다. 토우라는 인물이 두 개로 쪼개져서 곡수가 나온 걸 수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대립한다. 토우의 내면의 갈등이 형상화 돼 곡수가 됐다고 생각한다.
광해와 임진왜란은 이미 여러 콘텐츠로 만들어진 소재다. 정윤철 감독이 본 광해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광해에게는 모든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좋은 업적도 나쁜 업적도 있다. 연산군이 폭군의 아이콘이라면, 광해는 정치 쿠데타로 숙청 당했다는 게 다르다. 이후 조선은 엄청난 전쟁을 또 겪게 됐다. 결국 광해가 잘한 것은 명청교체기에 펼쳤던 줄타기 외교정책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거다. 전쟁은 결국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아무리 잘해도 전쟁이 나면 모든 게 끝이다. 그렇다면 광해의 그런 노력과 정책은 어디서 나왔을까? 세자 시절 임진왜란을 겪으며 참상을 목격하고 백성과 함께 숨쉬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전쟁을 피하려고 한 걸까?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층, 또는 국민의 많은 사람들이 전쟁세대, 혹은 전쟁 이후 재건의 시대를 살아온 인물들이다. 그런데 대북정책에 대해선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진다.
전쟁세대지만 그 시기의 공포감을 이용해서 자꾸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광해의 시기에도 같은 전쟁세대이지만 광해와 반대의 지점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은 결국 망각의 동물이니까, 전쟁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과거의 경험 속에 가졌던 결심을 이어나갔다는 면에서 광해는 대단한 것 같다.

광해는 좋은 리더였을까?
임진왜란 때 임시정부 역할을 하며 많은 노력을 했다. 밑에서 이순신 장군이 싸우고 있을 때 국가의 컨트롤 타워를 했다. 그러나 선조가 너무 많은 견제를 했다. 그 속에서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었을 거다. 심지어 동생이 태어나면서 모든 걸 뺏길 수 있는 입장에도 놓였던 사람이다.
안타깝다. 좋은 리더의 끝은 항상 안 좋은 거 같다.
제가 광해를 공부하면서 느낀 건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과 닮아있다는 거였다. 일단 국민을 사랑했던 리더다. 광해는 서자 출신이었다. 노 대통령도 적통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고졸 출신이었고, 메인 스트림 출신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주적인 외교를 하려고 했다. 전작권환수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이상은 높으나 경험 부족에서 오류도 있었다. 소수의 정권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때문에 정권 안정을 위해 교조적인 정책을 펴기도 했다.
광해와 곡수의 가무신을 보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을 안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저도 그랬다. 전쟁 속에서 춤과 노래라, 어이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이다. 백성에게 밥을 얻어먹은 왕이 다리를 주물러 주듯, 등을 토닥이 듯 그려냈던 장면이다. 어쩌면 그런 리더를 기다려 왔던 것 같다. 그것을 현실에서 보고 있자니 얼떨떨하다. 영화와 현실이 맞닿아 있는 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대립군’은 희망과 생존의 의지를 담은 영화다. 새로운 시대에 던지는 희망가처럼 들어줬으면 좋겠다.
결국 ‘대립군’은 광해의 성장기이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신의 분량이 상당하다.
의외로 적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다. 제가 포커스를 맞췄던 지점은 전쟁 속에서 백성과 왕이 만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백성 중에서도 가장 낮은 천민이 최상위 존재인 왕을 만난다. 전쟁이 아니면 불가능한 만남이다. 그 속에 광해가 진정한 군주가 되는 과정이 나온다. 그 안에는 백성들이 주는 용기와 지지가 담겼다. 지금의 현실과 비슷한 또 하나의 지점이다.
결국엔 백성인가. 전투신에서 화려한 액션 보다는 일반 백성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제가 그린 임진왜란은 거대한 전투보다는 의병들이 싸우는 게릴라전이나 백병전의 전투다. 실제로 싸우는 민초들의 얼굴이나 느낌이 전달 되길 바랐다. 전쟁을 찍는 방식도 화려한 기술이나 컷 분할 보다는 롱테이크를 통해서 사실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수위 조절도 있었던 것 같다. 기실 전쟁이란 참혹한 법이다.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보길 바랐다. 15세 정도에 맞췄던 것 같다. 18세까지 그린다면야 사지절단 같은 것도 담을 수 있었을 거다. ‘명량’ 정도의 수위를 원했다. ‘명량’도 생각보다 잔인한 장면들이 없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광해도 청소년이다. 그럼에도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다가 자신을 찾아나간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그 모습을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저도 ‘대립군’은 청소년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최근 우리나라에 정치적인 내홍이 있었다. 그릇된 정치를 바꿔놓은 주체는 국민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건지 영화를 통해 더 잘 알았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가 이뤄낸 것이 굉장한 일이다. 국민이 새로운 나라의 리더를 만들어 낸다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나라는 자살률 1위에 있는, 사는 게 힘든 나라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 남자는 용기도 전해 주고 싶다.

결국 좋은 리더가 ‘대립군’의 화두다. 정윤철 감독은 현장에서 어떤 리더였나? 일단 배우들이 고생을 엄청 했을텐데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많이 열려있는 감독이었다는 평이다.
영화를 힘들게 찍었다. 다들 극한의 상황이었다. 거기에 불을 지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세게 나가면, 계속 그래야 하는데 그럴 배짱은 없었다. 하하. 그럼에도 연기와 그림을 얻어내는데 있어서는 끝까지 밀어붙였던 것 같다. 그런 지점은 타협할 수 없는 거니까. 당초 배우들 자체가 우리 영화에 들어올 때 각오와 기대를 하고 들어왔다. 강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 표정들을 보는데 제 가슴이 아팠다. 그럼에도 결과물이 좋았기에 저는 갈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물 덕분에 배우들도 따라올 수 있었다고 본다. 결과물을 자주 보여주려고 했다. 굳이 정의 하자면 소통하는 리더? 하하. 우리는 산으로 가고 있지만 영화는 산으로 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대립군'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강렬한 느낌이 있다. 군사 군(軍) 대신에 임금 군(君)을 쓰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백성들의 대립인 임금, 광해이며, 국민들이 직접 뽑는 민주주의의 대통령이다.
저도 같은, 그리고 여러 함의를 느꼈다. 대립이라는 게 결국 남 대신 산다는 것, 아바타 같은 거다. 그런데 실제로 남 대신 사는 경우가 많다. 남의 욕망을 위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영화는 남의 삶을 대신 사는 삶에서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삶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그린다. 대립에서 자립으로 가는 것이다. 광해에게는 성장이지만 대립군에겐 회복의 드라마다.
그래서 마지막에 ‘대립군’이 아닌 ‘의병’이라고 말하는 게 더 와닿는다.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된 거다. 세월호의 비정규직 선생님들이 아직까지 차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뛰어들던 그 분들은 인생의 주인이기에 하실 수 있었던 선택이다. 다른 것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생명을 던져 위험을 부담할 수 없었을 거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던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라는 생각 속에서 ‘대립군들이 왜 임금을 위해 목숨을 걸었을까?’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진=20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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