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박열' 이준익 감독, 항일정신 넘어 아나키즘 선택한 이유
[Z인터뷰] '박열' 이준익 감독, 항일정신 넘어 아나키즘 선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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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저 책을 읽어, 저 책 보면 다 나와 있어”

지난해 초의 데자뷰일까? 이준익 감독은 전작 ‘동주’ 때의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책 몇 권을 권했다. 이번에 ‘박열’과 함께한 책은 가네코 후미코의 자서전인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 ‘나는 나’,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후세 다쓰지가 쓴 ‘운명의 승리자 박열’이었다.

시대물의 장인으로 불리는 이준익 감독이 책을 내민 건, 그의 말대로 ‘박열’이라는 영화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실존 인물, 실제 사건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예고했을 만큼 이 감독이 ‘박열’에 가장 신경 쓴 지점이다. 책을 넘어 신문과 법정 기록까지 사료들을 수집해 박열(이제훈 분),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분)의 삶과 사상을 관객에게 인도한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당연하게 가지고 있을 항일, 또는 반일 정서를 넘어 아나키즘으로 큰 울림을 안기는 영화 ‘박열’. 전작들을 넘어 또 하나의 명작을 내놓은, 이제 명장보다 거장이라는 칭호가 걸맞는 이준익 감독과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나눈 대화를 이 자리에 전한다.

영화 시작과 함께 실제 사건의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했음을 알린다. 다른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강렬한 메시지였다.
일본 관객을 향한 메시지다. ‘박열’의 무대는 동경이다. 배우도 일본 배우가 더 많이 나온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의 사상가다. 고증 자체도 박열보다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고증이 더 많다. 박열을 기억하는 한국인보다 가네코 후미코를 기억하는 일본인이 더 많다. 이 상황에서 고증에 소홀했을 경우 우리 영화의 신빙성이 의심 받는다.

그래서일까? 대사까지도 한땀 한땀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했다. 거의 편집증처럼 느껴졌을 정도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일본 쪽 고증에 신경을 썼다. 관련 책들을 참고했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기사가 실제 게재 됐던 신문도 찾아봤다. 일본 쪽에선 아사히 신문, 산케이 신문, 우리나라 쪽에서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기사를 취합했다.

어쩌면 감독으로서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각오를 하고 넣은 부분도 있다. 우리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을 할 지, 안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시비를 애초에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영화 내에 일본 내각의 구성 변화, 박열이 법정에서 제시했던 네 가지 조건, 법정에 분홍색 한복을 입고 나오는 것 등 세세한 부분까지도 사실과 똑같이 하려고 했다.

이준익 감독이 그리는 시대극은 특별하다. 이준익 감독이 생각하는 고증이란 무엇일까?
제 스스로 정한 고증의 3요소가 있다. 첫째 요소는 실존인물이다. 실존인물이라 설정했는데, 허구의 인물을 만날 때 그것은 왜곡이 된다. 둘째 요소는 사건의 사실성이다. 관동대지진, 6000명의 관동대학살, 박열의 재판 기록, 박열과 후미코의 사진, 그 사진이 일본 정치에 미친 여파, 그리고 후미코의 죽음까지 사실을 벗어난 것이 없다. 셋째 요소는 시기와 날짜다. 이른바 연표다. 시기와 날짜가 뒤죽박죽이면 그건 사건의 재구성이 된다. 물론 3년의 이야기를 2시간 안에 담자니 압축과 단축은 생긴다. 다만 고증을 벗어난 영역, 예를 들면 불령사들의 일상적 생활은 입증할 길이 없다. 그런 부분은 100% 창작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일본어 연기가 중요했다. 그만큼 고증의 요소를 디테일하게 배치했는데, 일본어가 가짜처럼 들린다면 큰일이었다. 이제훈 씨도 부담이 많았다고 했다.
이제훈이야 괜찮았다. 박열은 원래 문경 사람이니까. 일본어가 어설프다 해서 크게 흠이 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배우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제훈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배우가 일본어 경험이 있었다. 실제 일본 배우를 쓰기도 했고. 특히 최희서의 경우는 중학교 때까지 일본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관동대학살에 대해선 수위를 다소 낮춘 것 같다. 실제로는 정말 끔찍했을 사건이다.
관동대학살은 분명히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학살의 기록도 매우 참혹하다. 그러나 그것을 비주얼로 확대해서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대신 사법체계의 공정함을 내세우면서 일본 행정부가 그것을 어찌 은폐하려 했는지, 그 과정에서 박열을 어떻게 이용하려 했는가가 우리 영화의 핵심이다.

영화 속의 일본 행정부, 어쩌면 지금과 비슷하다. 아직도 일본은 관동대학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23년의 관동대지진은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서 발생한 6000명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는 빼놓는다. 일본의 수많은 만행들, 위안부 문제와 에 못지 않은 사건들이 산재해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문명국이었다는 주장을 한다. ‘박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상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다.

그 말대로 ‘박열’ 속의 일본은 자신들이 표면적으로 문명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을 교묘하게 비틀어 낼 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영민함이 빛난다.
일본 만엔권에 그려져 있는 인물이 후쿠자와 유키치다.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주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상가다. 그는 탈아론을 제시했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는 이념 아래 일본의 제국주의를 불러 일으켰다. 자신들이 미개한 아시아를 개도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박열’은 아나키즘이 영화 전반의 큰 줄기를 이루는 작품이다.
당시 일본 역시 국수주의에 가둬져 있는 나라였다. 그런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이념이 있다. 아나키즘이다. 아나키즘은 권력을 향해 투항한다. 그러나 자신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들었던 촛불이 그렇다. 국민들이 들었던 촛불은 권력을 잡자고 나왔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나키즘이 커뮤니즘(공산주의)로 변질됐다. 공산주의는 인류의 철학 중 실패한 이념이다. 권력층인 브루주아에 반하여 일어났으나, 노동자가 권력을 잡았다. 아나키즘과 다른 지점이다. 예를 들면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사상 차이와 같다.

맞다. 체 게바라는 혁명가라 불린다.
카스트로가 공산주의자라면, 체 게바라는 아나키스트다. 쿠바에서 혁명을 이끌어내고 장관까지 지냈지만, ‘쿠바에서 할 일은 다 끝났다’는 편지 한 장과 함께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콩고로 가 혁명군을 이끌고, 이후에 볼리비아에서도 혁명을 시도한다. 일본에도 아나키스트가 많았다. 박열과 후미코는 일본에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 당한 세 번째 인물이다. 앞서 두 명의 인물이 있다. 우리 영화에서도 그려진다. 그들 또한 아나키스트였다.

반일과 항일 정신이 아닌 아나키즘을 그린 다는 것, 당시를 그린 다른 영화와 차별되는 ‘박열’의 시선이다.
분명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아픔을 겪은 나라다. 그렇지만 민족의 틀에만 갇혀서 역사를 바라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으로 제한될 수 있다. 반일과 항일이라는 감정의 프레임을 벗어나면 보다 확장된 시선으로 당시를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은 객관적인 시선이다. ‘박열’은 일본 사람이 쓴 책에서 사료를 찾았다. 그래서 객관적인 박열을 만날 수 있다. 

박열은 조선인이고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이다. 분령사라는 집단 또한 조선인 집단이 아니었다. 아나키스트 집단이었다. 일본인이 6 명이나 포함돼있었다.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민족의 프레임을 넘어 탈민족적 운동을 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당시를 감정을 섞어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또 다른 것들을 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그 시절을 감정 섞어 바라본다면, 그들도 감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논리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도 논리적으로 그 시절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바로 ‘고증’이 가진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하윤서 기자 hays@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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