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개봉 전부터 참 일이 많았다. 제 70회 칸국제영화제 진출이라는 호재로 시작했지만 넷플릭스 배급 방식이 발목을 잡았다. 칸에서도 터져 나온 잡음은 국내 개봉까지 이어졌다.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이 넷플릭스 동시 개봉을 이유로 상영을 보이콧했다. 하지만 서울극장, 대한극장을 비롯 여러 단일관이 ‘옥자’의 손을 잡아줬기에 관객들은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옥자’를 만날 수 있었다.
어쩌면 봉준호 감독이었기에 가능했던 행보였다. 국내 감독 중 해외 최일선에서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렇기에 넷플릭스도 그에게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을 것이다. 또한 봉준호라는 브랜드의 힘이 아니었다면 영화 시장의 절대 갑(甲)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결국 ‘옥자’는 개봉했다. 그렇게 우리는 '미자'(안서진 분)와 비록 고기가 되기 위해 유전자 조작 아래 태어났지만 강원도 산골에서 미자와 교감하며 자라온 슈퍼돼지 옥자를 만나게 됐다.
봉준호 감독은 지방 무대인사을 비롯 홍보에 열을 올리며, 그의 바람대로 ‘길게’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런데 조금 아쉽다. 영화 외적인 부침을 겪었기에 정작 영화 내적인 이야기의 볼륨이 그리 크지 않은 모양새다. 그래도 봉준호 감독인데, 그리고 칸 진출작인데.
그뿐일까.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과 제이크 질렌할, 스티븐 연 등이 함께 했고, 슈퍼돼지 ‘옥자’의 모양새를 ‘라이프 오브 파이’의 에릭 얀 드 보아 감독이 매만졌다. 카메라를 잡은 이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미드나잇 인 파리’의 다리우스 콘지였다.
하여 제니스뉴스와 봉준호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옥자를 탄생시킨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와 탐욕스러운 동물 학자 '죠니 윌콕스'(제이크 질렌할 분)의 마수를 피해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한 명과 한 마리의 고군분투. 이른바 ‘봉테일’이라 불리는 봉 감독이 ‘옥자’ 속에 꾸려놓은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 풀어본다.
‘옥자’가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산고가 길었다.
칸에 가기 전에 기자회견을 했었다. 그 뒤로 개봉까지 한 달하고 2주 정도 걸린 것 같다.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여러 말들이 무성하게 나왔다. 일련의 상황들이 빨리 과거사가 됐으면 좋겠다. 영화라는 것이 이슈에서 벗어났을 때 쯤엔 진열장에 꼽혀있는 DVD도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어떤 영화가 됐든 개봉시기가 되면 불에 데일 듯한 심정이 된다. 하하.
결국 대형 멀티플렉스를 제외하고 개봉하게 됐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있던 극장들도 주목 받고 있다.
많지 않은 극장이지만 길게 됐으면 좋겠다. 넷플릭스에서 동시 스트리밍이 진행이 되는 상황인데, 관객들도 저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다. 지금은 뭔가 유체이탈 상태다. 강 건너 불 구경 하는 기분? ‘옥자’가 내 영화가 맞던가? 하는 자아 분열의 경지다.

‘옥자’엔 여러 메시지가 있다. 먼저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동물에 대한 시선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가장 특이했던 반응은 미국 SNS에서 봤던 ‘미란다 그룹의 입장이 너무 이해가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미란다 코퍼레이션은 마치 자동차 공장 같은 곳에서 고기를 가공하고 있다. 많은 연구 개발비와 시간이 투자 됐다. 즉 엄청난 비지니스다.
육식에 대해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태고부터 고기를 먹어왔다. 자연의 일부로서 고기를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수요와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미란다 코퍼레이션은 인류의 식량난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윤을 얻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결국 육식에 대한 시선, 그리고 동물에 대한 시선 차이로 귀결된다.
관객들은 중간지대에서 산다. 완벽한 비건(엄격한 채식주의자)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비건이 아니라고 해서 동물을 증오하고 학대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애완견을 사랑한다. 강아지를 안고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산다. 그런 행동에 대해 불편한 시선은 없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반려동물과 음식으로서의 고기를 분리하는 훈련이 돼있다.
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옥자’다. 영화에서 제이크 질렌할이 고기의 품질을 재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는 실제 쓰이는 도구다. 살아있는 동물에 빨대 같은 파이프를 꽂아 고기를 추출한다. 굉장히 섬뜩한 장면인데, 우리는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고기를 먹는다. 다만 ‘옥자’는 육식을 반대하고, 채식을 권장하는 영화는 아니다. 미자만 해도 닭 백숙을 맛있게 먹는다.
유전자 조작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유전자 조작 돼지를 만들고 있다. 관련 관계자나 연구원을 만난 적 있는데 “유전자 조작이 아닌 컷아웃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뭐가 다른 건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유전자 변형이 옥수수에서 동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유전자 조작 연어는 나오고 있다. GMO(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 ‘옥자’가 SF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전자 변형을 연구하는 과학자를 비난하자는 건 아니다. 영화 속에서 틸다도 자신이 만든 소시지를 먹으며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을 한다.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무서워하기 때문에 하는 거짓말이라는 거다. 그게 바로 미란다의 진심이자, 관련 회사의 최소한의 변명일 거다.

SF가 아니라지만 ‘옥자’는 일단 가상의 동물, 하여 CG로 그려졌다. 그 퀄리티가 매우 놀랍다. 영화의 가장 중요했을 요소다.
옥자는 사실적이어야 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옥자가 CG라는 걸 잊었다”는 평에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모든 정서는 옥자로 함축돼있다. CG의 옥자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것은 제게 모험이자 도전, 그리고 부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에릭 얀 드 보아 감독의 캐스팅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 리처드 파커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2014년에 처음 만났는데 3분 대화로 강한 확신을 주신 분이다. 정말 접근하는 레벨이 달랐다. 그분은 CG 보다 동물 CG에만 집중하신 분이다. 오로지 동물 생각 뿐이다. 동물원에 가서 세 시간 동안 하염없이 바라본다. 정육점에 가서 동물의 뼈와 근육을 조사한다. 옥자의 작업 또한 내부에서 시작됐다. 장기와 근육, 뼈, 지방질까지 세팅해서 시뮬레이션 했다. 정말 엄청난 노가다다. 120 명에서 170 명의 사람들이 1년 넘게 작업해서 ‘옥자’가 탄생했다.
CG가 훌륭하다는 것, 대변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신에서 감탄했다.
하하하. 하마에서 착안한 거다. 인터넷에서 ‘hippo pooping’이라고 찾아보면 여러 영상이 나온다. 정말 웃긴다.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면서 대변을 사방에 뿌린다. 많은 동물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있지만 그런 지점을 보여주진 않는다. 나름의 금기다. 그러나 금기를 깨는 것도 영화인이다. 삐뚤어질테다! 똥을 그리겠다! 하는 마음? 하하. 응가하는 걸 하마의 방식으로 그리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옥자’는 소통과 교감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하는 것 같다.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화두가 됐던 소통과 불통의 간극? 스티븐 연의 통역 에피소드도 있고, 옥자와 미자의 귓속말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우선 우리 구순범 씨, 스티븐 연이 참 중요한 역할을 연기했다. 우리 영화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언어가 섞이면서 중요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거짓말을 해도 귀여울, 밉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스티븐 연이 딱 적역이었다.
우리 영화에서는 옥자와 미자,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옥자와 미자에게 여러 사건과 사고, 소동이 생긴다. 미자가 미국에 도착해 영어를 공부하는 것도 소통을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옥자와 미자는 서로 소통을 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이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것은 우리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다. 우리 영화는 옥자 입장에선 홀로코스트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온 어떤 생명체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고요하면서도 마음의 울림이 있게 찍어보고 싶었다.
쿠키 영상을 보면 속편을 암시하는데, 속편 연출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쿠키에서 속편을 암시하는 건 제 의도이긴 하다. 그러나 ‘옥자’의 속편을 직접 만들 생각은 없다. ‘설국열차’의 TV 파일럿에 대한 제안도 왔었다. 아무래도 오리지널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의견에 온 제안이었지만 거절 했다. “다시는 기차 타기 싫다”고 했다. 저는 제 머리 속에 연출하고 싶은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들이 많다. 지금도 7~8편 정도가 정체돼 있다. 제가 찍는 속도가 워낙 느려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속편 보다는 새로운 걸 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사진=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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