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지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 제목이 바로 '변호인'이었다. 그리고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기했던 배우 송강호가 그 위에 서있었다.
정권이 바뀌었고, 송강호는 또 다른 정치적으로 민감한 작품을 들고 관객을 찾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다. 송강호는 '김만섭'이라는 택시운전사로 분해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을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이다.
배우 본연의 정치적 성향을 떠나, 다소 버거웠을 외압이었다. 하지만 송강호는 오롯하게 자신의 주관에 따라 영화를 선택했다. 택시운전사 김만섭이 소신에 따라 옳은 방향으로 U턴을 했다면, 배우 송강호가 소신에 따라 걷는 옳은 방향은 직진이었다. 송강호의 연기에 대한 신뢰가 탄탄했던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일, 이젠 배우의, 나아가 사람의 도리까지도 전달하고 있는 송강호였다.
최근 제니스뉴스가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서 만났던 송강호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 전한다.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지?
언론시사 때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영화를 잘 안 보게 됐다. ‘택시운전사’도 기술시사 때 봤다. 그땐 스태프만 있으니 마음이 괜찮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만족했다. 다른 영화에 비해 기술시사 대비 편집된 지점이 많지 않은 영화다. 아마 1박2일의 여정을 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영화 보는데 ‘운전사의 체구에 비해 택시가 너무 작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하하. 저도 ‘우리나라 사람의 체구가 이렇게 커졌나’라고 생각했다. 정말 좁고 불편했다. 그래도 제가 실제로 운전을 다 했다. 제가 운전을 좀 한다. 하하. 좁은 골목에서 후진하는 것도 제가 다 직접 운전한 거다.

송강호가 과거 체험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라디오 방송으로 접했다. “폭도들이 제압됐다”는 보도에 안심하고 학교에 갔다. 그만큼 암울했던 시대였다.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너무 처절하고 아팠던 희생, 그리고 그분들의 열망을 생각하면 많이 아련하다.
언론시사 당시 "마음의 빚"이라고 이야기 했다.
우리나라는 최근에도 아픈 일이 있었다. 지난 1년의 모습들이 하루 아침에 생겼다고 보진 않는다. 시민의식이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든 과거 아픈 역사를 딛고 조금씩 성숙해온 것이다. 지금 우리가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던 건 그때가 있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50대 중반이다. 이 시대 사회 속 중추적인 나이다. 그런 사람이 그분들에게 마음의 빚이 없다면 정상이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 뜻이 너무 거창하게 표현된 것 같다.
사회 속 중추의 세대, 어쩌면 만섭이 딸을 바라보는 눈빛은 송강호 본연 그대로의 모습일 수 있겠다.
제 딸이 18살이다. 어느덧 그만한 나이대를 지내왔다. 아마 아버지의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우연치 않게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일부러는 아니다. 영화계라는 것이 환경이 변화할 때가 있다. 현대물을 많이 나오다가도, 어느 정도 소진된다는 느낌이 있을 때 사극 또는 역사극이 나온다. 제가 일부러 시대극과 역사물을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시대극 발현하는 에너지 때문에 하게 된 것 같다. 분명 근현대사를 다룬 시대극에서도 그 에너지가 있다.
에너지라면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새로운 시선에서 발견했을 때 나타난다. 현대물은 소재의 다양성은 있겠으나 상상력, 혹은 창의적인 측면에서 제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물은 새로운 해석과 색다른 시선이 가능하다. 그런 지점에서 포괄적인 에너지가 있다고 본다.

이번엔 ‘김사복’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연기했다.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신지, 돌아가셨는지 잘 모른다. 38년생이라고 하시니 올해 팔순이시겠다. 제작진에서 촬영하기 전에 그분을 다각도로 찾아봤다는데 결국 그런 분들은 안 계셨다. 택시운전사 중 동명이신 분들은 여럿 계셨다는데, 결국 아니셨다. 아마 가명을 썼다는 게 가장 유력한 설이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예상해본다. 결국 ‘김만섭’이라는 인물의 성격은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마음은 같았을 것 같다. 영문도 모른 채 광주에 내려가서, 그 사지에서 기자를 도와 탈출을 했다는 건 사실이니까.
실제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 사건을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겠다.
‘변호인’ 때와 비슷했다. ‘내가 정말 많은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이었다. ‘변호인’ 때도 故 노무현 대통령님을 기리는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내놔야 했다. 그런 부담이 없다면 이상한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작품에 대한 열망의 싹이 내 마음 속에서 점점 커져갔다는 거다.
‘변호인’ 이후 블랙리스트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럼에도 ‘택시운전사’를 선택했다. 그 부분이 작품 선택에 있어 고민의 씨앗이 되진 않았을까?
많은 분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신다. 그러나 전 정치적인 환경 때문에 고민하진 않는다. 방송에서 자기검열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그보다는 블랙리스트가 정치적인 압박이라기 보다는 예술가들의 창조력을 제한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대중들이 송강호란 배우에 대해 편견이 생길 수도 있으니 검열을 한 거다. 실제로 촬영이 다 끝난 후에 작년 10월이 찾아왔다. 현 상황이 될 거라는 걸 몰랐을 때 오롯한 마음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정치적인 두려움보다는 내부적인 고민이 있었을 분이다.

이번에 토마스 크레취만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서로 다른 언어로 연기해야 했는데.
저보다는 토마스 크레취만이 조금 힘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국제적인 영화를 많이 찍은 배우라 그런지 소통이 어렵진 않았다. 오히려 그가 우리를 많이 배려해줬다. 개인적으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가 그의 대표작이라 생각한다. 다른 할리우드 영화도 많이 봤지만 ‘피아니스트’의 인상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미국, 호주, 한국 등 다양한 나라의 영화에 출연 중이다. 이번 ‘택시운전사’ 때도 호주에서 3개월의 촬영을 마치고 합류했다. 국제적인 감각이 있는 친구다.
친분을 위한 스킨십은 어떤 스타일이었을까?
세 번 정도 술을 마셨다. 사교적으로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는 분은 아니다. 그의 생일을 맞이해서 한 번 마셨고, 박찬욱 감독님이 현장에 오셨을 때 자리를 함께 했다. 팬이라면서 좋아하셨다. 박찬욱 감독님하고는 제가 워낙 친하니까 서로 작품을 할 때 현장에 한 번씩은 찾아 가는 편이다. 공통점이 있었다. 박 감독님이 존경하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 이야기를 주로 했다. ‘올드보이’로 칸에서 상 받을 때 우연히 그분을 만났던 이야기도 했다.
엄태구 씨가 강렬한 신스틸러로 등장한다. ‘밀정’에서 함께했던 연이 닿은 걸까?
제가 추천한 건 아니다. 감독과 제작자에게 “너무 잘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했는데, 하필 중사 역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오디션을 봤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 잘 해서 캐스팅이 됐다는데, 결국 반추천인 셈이다. 하하. 토마스 크레취만도 현장에서 그의 연기를 보고 “누구냐, 너무 잘한다”라고 했다. 아마 단역 배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신기하다. 배우끼리는 언어는 달라도 느껴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사실 그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많은 희생자가 있었지만, 군인 또한 희생자였다. 모두의 아픔이었다는 걸 나타내는 신이었다.
관객들이 송강호라는 배우에게 보내는 신뢰도는 상당하다. 보다 많은 작품에서 자주 볼 수는 없는 걸까? 드라마는 어떨까?
드라마는 힘들 거 같다. 전 많은 일을 못하는 사람이다. 아마 작품을 가장 안 하는 배우에 속할 거다. 1년에 한 편 정도 하는 것 같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영화 배우라는 신비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저도 그 간극이 짧았으면 좋겠다. 다른 배우들은 바로 바로 새 작품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전 1년을 쉴 때도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6개월은 쉰다. 뭔가 작품을 만난다는 건 운명 같다는 생각이다.
그럼 그 시간 동안은 무슨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별다른 일을 하진 않는다. 가벼운 등산이나 산책으로 운동 같은 걸하고, 주로 혼자 있는데. 여행도 좋아하지 않고, 이제는 스포츠도 재미없다. 어느 샌가 취미활동을 다 포기했다. 무색무취다. 하하. 물론 지루하긴 하다. 그래서 배우들이 일을 많이 하나보다. 하지만 전 견딜 수 있다. 몇 달은 가능하다. 술 친구도 별로 없다. 배우들 보다는 감독님들이 많은데, 박찬욱 감독이 제일 친한 술 친구이자 선배다. 봉준호는 술을 못 먹고, 김지운은 안 마신다. 박찬욱 감독이 정기적인 인사이고, 아마 앞으로 우민호 감독이 그 자리를 노릴 것 같다. 술을 아주 좋아한다. 하하.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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