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재벌 총수 임태산은 강한 남자다. 살인 용의자로 딸(이수경 분)이 지목 됐음에도 자신의 주식에도 눈을 두는 냉철한 남자다. 돈과 권력을 앞세워 딸을 구해내려고 몸부림 친다. 딸이 살해 했다고 하는 이가 자신의 연인(이하늬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마음의 정리보단 딸의 구명, 그리고 자신의 입신이 먼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가장이고, 아빠이고, 누군가의 남자였다.
최민식도 강한 배우다. 1989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로 데뷔한 이래 역대 흥행 1위인 ‘명량’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다. 30년에 가까운 경력 아래 찬란히 빛나는 필모그래피를 가지고 있는 배우. 그의 이름 석자 만으로도 관객은 신뢰를 보낸다. 현실에 안주할 법하지만 끊임없이 작품을 탐구하고 연기에 도전하고 있기에 더욱 강한 배우가 바로 최민식이다.
그런 최민식이 영화 ‘침묵’의 임태산을 연기했다. 긴 경력 속에 그 또한 부침과 슬럼프가 있었을 것, 그래서일까? 최민식은 ‘침묵’에서 ‘임태산의 힐링’을 바라보며 연기했고, 그의 치유를 관객에게 전달했다.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있었던 제니스뉴스와 배우 최민식의 만남, 그 강렬했던 시간을 이 자리에 풀어본다.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완성본이야 언론시사 때 처음 봤지만, 작품 초기의 편집본부터 봤다. 정말 많이 본 것 같다. 정지우 감독님, 제작사 임승용 대표, 그리고 저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렇게 계속 의견교환을 하며 만들어 간 것 같다. 물론 최종 결정은 감독님이었다. 늘 그렇지만, ‘작품이 보다 더 길었으면’하는 아쉬움은 있다. 괜히 놓치고 가는 게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편집되는 지점들이 있다고 본다.
편집된 부분 중 가장 아쉬웠던 신이 있다면?
아쉬웠다기 보다는 담겨서 다행이었던 신이 있다. 처음 한식당 신이다. 미라와 유나의 관계가 그려지는 지점이 있다. 두 사람의 밀접한 관계가 보여져야 했다. 그 신 전체를 드러낸 적이 있었는데, 역시 그 신을 빼고 ‘침묵’을 풀어나갈 수는 없었다. 미라가 질풍노도의 시기에 아빠의 새엄마를 거부하는 불량한 아이로 비춰지는 건 너무 단편적이었다. 그 신이 짧게 라도 들어가서 너무 다행이었다.
아 또 하나, 말미에 딸과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 이야기를 저와 제 딸의 추억으로 채워냈었다. 그런데 제가 너무 길게 이야기를 했나 보다. 완성본에는 편집 됐다.

정지우 감독과는 오랜만의 조우다.
감독님과 함께 하는 건데, 굳이 ‘침묵’이 아니었더라도 함께 영화를 했을 것이다. 이상한 작품을 들고 올 리 없다. 감독님, 그리고 임승용 대표라는 사람과 필모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오랜만에 옛 전우들을 만나 회포를 풀어보는 풀어보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침묵’ 그리고 ‘임태산’이라는 인물에 끌리는 지점이 있었을 거다.
‘힐링을 한다’는 부분이었다. 아주 착하게 살아왔던 사람이 회복을 한다는 건 임팩트가 없다. 개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지점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임태산이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때 제가 느끼는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 돈으로 세상을 바르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런 임태산이 미라의 아버지로, 그리고 유나의 남자로 거듭 태어나는 거다. 그게 바로 임태산의 회복이었다.
살인 용의자로 임미라가 지목 됐을 때 임태산의 가슴 속에 딸이 인식 됐을 거다. 늘그막에 찾아온 사랑도 그렇다. 돈 많은 재벌 총수와 인기 여가수의 로맨스? 일단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게 된다. 아마 두 사람도 그렇게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계를 쌓다 보니 인생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낀 거다. 그래서 임태산은 지금까지 쌓아온 외적 프레임, 돈, 권력, 인맥을 다 버릴 수 있었다. 그런 지점에 끌렸던 것 같다.
이하늬와 멜로 연기를 펼쳤다.
유나라는 역할은 보여줘야 하는 감정선이 많았다. 늙수구래한 재벌을 사랑한다. 그리고 전처 소생의 딸도 끌어안는다. 돈 때문이 아니다. 정말 임태산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노력이고 임태산을 향한 배려다. ‘그런 감정들을 이하늬라는 배우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있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해냈다. 정말 감동 받았다. 이하늬는 속이 깊은 친구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그릇이 가슴 안에 있어야 표현되는 연기였다. 정말 스펙트럼이 놀라운 배우였다. 특히 유나는 ‘침묵’의 처음을 열고 끝을 닫는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하늬에게 많은 덕을 본 것 같다.

이수경 씨와는 ‘특별시민’에 이어 다시 한번 부녀로 호흡을 맞췄다.
참 잘 하는 친구다. 딸 역할을 이야기할 때 그 친구부터 생각이 났다. 이번에도 아주 훌륭하게 해냈다.
회식 때마다 그렇게 주옥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던데.
제가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 술자리가 사람 만나는데 가장 좋은 자리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된다. 그때 나름대로의 제 생각을 전하고, 제 고민도 이야기한다. 그러면 서로가 보다 더 가까이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게 작품으로 이어진다. 물론 후배들이 소주 한 잔 하는 자리를 피한다면 그런 교감은 없었을 거다. 그런데 그런 후배가 없었다. 다들 술도 잘 마셨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갔던 것 같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도전이 있다면?
많다. 장르가 매번 달라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전 정말 편식이 없다. 코미디도, 멜로도 해보고 싶다. 제 사고와 감성이 미치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 있을 거라고 본다. 똑 같은 사랑이야기를 해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변주를 원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예를 들면 한번 먹어본 음식이 있다면, 살짝 살짝 레시피를 바꿔보는 셈이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 라면을 넣어본다던가, 햄을 넣어본다던가, 참치를 넣어본다던가 하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소설 읽는 듯한 느낌의 ‘파이란’ 같은 작품을 다시 하고 싶다. 사랑, 가족 등 짧은 이야기지만 두고두고 생각나는 드라마를 요즘 들어 그렇게 하고 싶다. 휴머니즘 가득한 장르의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가족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는, 영화가 끝나고 여운이 남는 작품을 하고 싶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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