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현장] ‘알앤제이’, 네 명의 남학생은 왜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나(종합) 
[Z현장] ‘알앤제이’, 네 명의 남학생은 왜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하나(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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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네 명의 남학생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기한다. 동성애 코드를 가진 극이 또 하나 탄생했나 싶겠지만 조금 다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변주한 연극 ‘알앤제이’가 국내에 상륙했다. 

연극 ‘알앤제이(R&J)’의 프레스콜이 17일 오후 서울 중구 필동3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김동연 연출을 비롯해 배우 문성일, 손승원, 윤소호, 강승호, 손유동, 강은일, 송광일, 이강우가 참석했다. 

엄격한 규율이 가득한 가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연극 ‘알앤제이’에는 오직 네 명의 남학생만이 등장한다. 네 명의 학생들은 늦은 밤 기숙사를 몰래 빠져나와 붉은 천으로 감싸 놓은 금단의 책 ‘로미오와 줄리엣’을 낭독한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금지된 사랑, 폭력과 욕망, 죽음의 서사는 따분한 설교와 학과 공부만이 가득한 학생들의 삶에 신선한 자극제가 된다. 학교의 규율을 어기고 역할극을 이어가던 학생들은 점차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언어와 이야기에 매료되고, 희곡 속 인물의 삶에 자신들의 삶을 투영한다. 

금기를 넘어선 젊은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소재로 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남자 배우들만으로 연기하다 보니 동성애 코드에 대한 논란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작품에서 줄리엣, 벤볼리오, 존 수사 등을 맡은 학생 2 역을 맡은 윤소호는 “작가가 대본 앞에 친절하게도 많은 글들을 적어줬다. 이 작품은 결코 동성애에 관한 것이 아니다, 결코 동성애를 혐오하거나 그런 식으로 보여져서도 안된다, 남학생 소년들의 치열하고 열정적인 이야기다, 라는 말들이다. 이 작품에서 역할로 빠져들때 동성애적으로 보인다고 생각을 했다면 연기 방향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윤소호는 “현실적으로 배우로서 키스신도 있고 육체적으로 닿는 신이 있어서 조금 어렵다고 연출님께 질문했었다. 우리 공연은 그게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좋아하거나 호감을 가지고 연기하는건 허용한다고 하셨다. 줄리엣 역할을 하기에 그게 편하다면 가지고 가도 된다고 하셔서 나같은 경우는 약간은 감정을 가지고 간다”라고 밝혔다. 역할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정도의 감정 또한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김동연 연출은 작품에 대해 “네 명의 남학생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학교 내에선 금지되어 있는 책을 읽고 연극 속에 빠져들어가면서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쌓여있던 것들이 분출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로미오와 줄리엣’뿐만 아니라 ‘소네트’, ‘한여름 밤의 꿈’의 대사들도 있다. 구조적으로는 ‘한여름 밤의 꿈’에 가깝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관객이 어느 순간 학생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이 원래 가지고 있는 취지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동연 연출은 “작품에 대해 많이 설명하고 싶진 않다. 작품 전체가 셰익스피어의 시로 이루어진 것처럼 전체적인 분위기도 시처럼 만들고 싶다. ‘왜 ‘로미오와 줄리엣’을 남자 넷이 해?’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면 안된다. ‘남학생 네 명의 이야기를 왜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하지?’가 더 맞는 질문이다. 그게 본래의 의도다”라고 덧붙였다. 

보수적인 가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동성애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베어 더 뮤지컬’과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이에 대해 두 작품 모두에 출연한 윤소호는 “시대가 완전히 다르다. ‘베어 더 뮤지컬’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익숙한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이다. 지금 우리 나이에 그런걸 느껴도 되나, 성별이 다르더라도 느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면 우리 작품은 시대가 1900년대다. 100년 정도 차이가 난다. 사랑이라는 감정과 어떤 다른 많은 감정을 글로만 배웠지, 체감으로 알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대다. 시대성을 생각한다면 작품을 보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연극 ‘알앤제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집중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역할극을 통해 처음 느끼는 ‘감정’에 집중한 작품이다. 엄격한 가톨릭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금서를 낭독하고 연기하면서 금지된 것에 대한 탈출, 검열에 대한 반항을 시도한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의 해방을 느끼고, 현실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탈출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동성애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혈기 왕성하고 에너지 넘치는 10대 소년들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는 감정을 그대로 따라가보는 것은 어떨까. 연극 ‘알앤제이’는 오는 9월 20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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