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천우희는 참 야무진 배우다. 청룡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고 “유명하지 않은 제가”라는 수상소감과 함께 눈물로 무대를 수놓았던 것이 불과 5년 전의 일. 이후 ‘해어화’ ‘곡성’ 등 차곡차곡 필모를 쌓아가며,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늘 자신의 연기를 해냈고, 끊임없는 작품 활동으로 관객을 즐겁게 했던 천우희였다.
하지만 그 흐름이 끊어졌다. 감정적으로 부담이 센 캐릭터를 연기하고도 “후유증은 없어요”라며, 강한 모습을 보여왔던 천우희였다. 그러나 절친했던 선배 故 김주혁의 사고는 그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하여 잠시 연기를 멀리 두고,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의 감정을 내맡겼다.
그리고 이제야 작품으로 관객과 마주하고 있다. 천우희가 이번에 들고 온 작품은 바로 ‘우상’이다. 자신에게 청룡을 안겼던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과 다시 만났다. 천우희가 연기한 ‘연화’는 현실의 바닥에서 자신의 평범한 삶을 ‘우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처절한 인물이다. 여러모로 정말 힘들게 버티며 연기 했을 천우희였다.
그 노력 덕분일까? 결과는 좋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 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초대 됐다. 개봉 이후 어렵다는 평도 있지만, 분명 좋은 잘 만든 영화로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는 중이다. 배우 인생의 굴곡에서도 결국 ‘연기’로 해답을 찾은 천우희의 이야기를 이 자리에 전한다.
연기는 결국 천우희의 삶이 아니다. 하나의 하성인 거다. 그런 지점도 ‘우상’과 맞닿아 있다.
맞다. 연기하는 순간엔 진심이고 진실이지만, 결국 허상이다. 가짜인 거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노력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제가 센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그런데도 연기 중에 몰입이 안 되거나, 연기 부족으로 생기는 한계를 맛볼 땐 ‘차라리 내가 진짜 이 상황에 빠져있었으면, 내가 실제 이 상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많이 깨달은 거 같다.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무너졌다. 그간 한계를 맛보긴 했지만 무너진 적은 없었다. 한계에서 성장하고 뛰어넘으려 했다. 이번에도 의욕은 넘쳤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김주혁 선배의 일을 겪고 많이 무너졌었다.
전 ‘연기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불태워져도 좋다’는 신념으로 일을 해왔다. 하지만 그 일을 겪고 배우 생활이, 그리고 연기를 한다는 것이 부질 없다고 느껴졌다. ‘과연 이리 노력한다 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줄까? 이런 것들 것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와르르 무너졌다.
현장에선 뭐랄까? 현장의 분위기가 있으니 마치 약을 먹고 일을 하는 것처럼 의식하지 못한 채 움직였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땐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정말 쉽지 않았다. ‘내가 생각보다 별 거 아닌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해결된 부분이 있다. 재작년 9월부터 작년 4월까지는 작품 선택을 하지 못했다. 너무 힘든 시간이었고, 여력도 없었다. 연기야 하라면 하겠으나, 그 연기를 제가 볼 자신이 없었다. 좋은 작품도 많았다. 그런 작품을 거절한다는 것도 제겐 안타까웠고, 제안 주신 분께는 참 죄송했던 일이다. 그렇게 연기를 제게서 멀리 뒀었다. 이 자리를 빌어 많은 감독님과 제작자님들에게 사과 드린다. 정말 좋은 작품과 놓치기 아까운 캐릭터가 많았다.
그간 센 작품을 했어도, 연기를 멀리 뒀던 적은 없었다.
전 작품이나 캐릭터 때문에 후유증이 있었던 적이 없다. 어렵고 힘든 역할을 많이 했기에 주변에선 많이 걱정 하시는데, 전 연기와 일상의 혼동을 경계하는 편이다. 연기를 일상으로 가져 오면, 저도 힘들고, 그런 연기가 좋을 거라고 생각도 안 한다. 연기는 현장에서 카메라가 돌 때 순간의 감정과 호흡으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연기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는 이야기다.
배우의 삶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삶도 중요하다. 자기 감상적인 연기를 하지 않아야 좋은 연기고,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봐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전 현장에서 힘들다거나, 동요하지를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 더 당황했던 거 같다. 제 새로운 모습을 본 거다. 저 역시 제게 놀랐고, 후유증까지 오다 보니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도 몰랐다.
보통 여유 시간을 갖고,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기던데.
전 아직도 취미를 못 찾았다. 여러가지를 해보는데, 순간의 흥미는 생기는데 오래가질 않는다. 역시 연기가 제일 재미있다. 한석규 선배님이 낚시를 좋아하신다. 그래서 따라가서 해볼까 했는데, 선배님이 다른 작품을 하고 계셔서 그러질 못했다.

한석규-설경구, 다 연기 선수들이다.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 같다.
영향을 준 건 잘 모르겠다. 사실 영향을 받은 것도 잘 모르겠다. 연기할 땐 인물로서 접근하니까 다른 게 잘 안 보인다. 선배님들의 연기도 잘 안 보인다. 작품이 끝난 후에야 느낄 수 있는 거 같다. 다만 현장에서 함께 할 때 너무 좋았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함께한 두 선배가 인간적으로 너무 좋았다. 옛날에도 그렇지만 더 팬이 됐다.
대체 어떤 면에서 더욱 팬이 됐을까?
인간적으로 따뜻한 선배님들이다. 무엇보다 배려심이 많다. 제가 까마득한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하니까 저도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느꼈던 당혹스런 순간들에 저도 모르게 좌지우지 됐다. 하지만 선배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몫을 해내고 계셨다. 어마어마한 내공인 거다. 이 일을 해오면서 정말 많은 일이 있으셨을 거다. 흔들릴 때도 많으셨을 거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쭉 해오셨고, 앞으로도 쭉 해나가시려고 하신다. 그런 부분들이 정말 멋있다.
막상 셋이 붙는 신은 많지 않았다.
맞다. 하지만 저희끼리는 즐거웠다. 현장에서 만났을 땐 석규 선배는 유머러스 하시고, 경구 선배는 츤데레 성향이 있으시다. 두분 다 제가 어려워할 거라 걱정하신 거 같다. 농담도 많이 해주셨다.
‘우상’은 관객에게, 그리고 배우 천우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내가 생각한 이야기들, 그 감상이 잘 표현되길 바랄 뿐이지, 관객에게 의미적인 영화이길 바라는 건 욕심인 거 같다. 다만 ‘우상’은 정말 바닥 끝까지 떨어져본 느낌을 받은 작품이다. 연기나 역할을 넘어 제가 살면서 시기적으로 겪은 것이 있던 때였다. 덕분에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제 한계를 본 작품이기에 나름 의미가 있다. 전 연기에 대해선 아주 심하게 칼 같은 면이 있다. 제 스스로에게 가혹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상’을 통해 나 자신을 다독일 줄 알게 됐다. 예전엔 ‘훌륭한 연기를 해내자, 작품 안에서 인물로 살아 숨 쉬자’ 같은 걸 생각했는데, 이젠 ‘관객에게도 그렇겠지만 내게 여운이 남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진 거 같다. ‘메시지를 전한다’ 보다는 ‘마음으로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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