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영화 ‘기묘한 가족’의 이민재 감독은 영화 속 남주 캐릭터를 가리켜 “처음부터 엄지원을 생각하고 쓴 캐릭터”라고 밝혔다. 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힘든 말이다. 남주는 억척스럽고, 무뚝뚝하며, 마음먹고 욕설을 털어놓으면 최소 5분은 욕으로 도배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캐릭터다. 우리가 생각하는 엄지원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이 부분은 엄지원도 동의하는 부분, 엄지원은 ‘기묘한 가족’의 출연과 함께 완전한 변신을 꿈 꿨다. 전작 ‘미씽: 사라진 여자’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이 컸다. 하여 웃고 싶었고 즐겁고 싶었다. 그러기엔 ‘기묘한 가족’은 딱이었다. 아무 생각할 필요 없는 B급 정서 위에 놓인 가족 코믹극, 하여 엄지원은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를 마쳤다.
그 기운은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제니스뉴스와 만난 엄지원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엄지원은 ‘미씽’ 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유쾌한 분위기로 지난 촬영 당시를 털어놓았다. 웃음도 많아졌고, 소소한 뒷이야기들도 훨씬 더 많이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엄지원과 나눈 이야기들을 이 자리에 공개한다.
‘기묘한 가족’과 엄지원, 선뜻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기묘한 가족’은 ‘미씽’ 끝나고 들어왔었다. 감정을 많이 쓰는 작품을 했으니까 다른 톤의 작품을 하고 싶었다. 제가 코미디도 좋아한다. ‘불량남녀’나 ‘박수건달’을 재미있게 찍었던 기억이 있다. ‘미씽’은 ‘영화를 보고 집에 가서도 생각해줬으면’ 하는 마음이고, 이번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 웃음을 나누고 싶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정말 잘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영화를 준비할 땐 굉장히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준비했다. 그런데 제 생각만큼 펼쳐내지 못한 것 같아 실망했다. 늘 그렇다.

준비는 확실히 많이 한 것 같다. 증량도 했다.
‘소원’에서도 배 불러 있는 신이 있다. 그때도 살을 8kg 정도 찌우긴 했다. 증량이 처음이 아니라서 익숙하긴 했다. 우리 영화는 좀비 소재의 가족 코미디다. 제가 본 남주는 연기력을 어필해야 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래서 외모에 포커스를 많이 뒀다.
외모에 힘을 많이 주긴 했다. 정말 엄청난 변신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영화를 마치고 ‘남주 : 엄지원’이라는 자막이 나가면 그제서야 “그게 엄지원이었어?”라고 할 정도의 변신을 원했다.
작품 때마다 의상이나 분장에 아이디어를 제시했었는데, 이번에도 엄지원의 한 수가 들어갔을까?
기본은 의상팀과 분장팀이 만든 콘셉트에 따라간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마치 시안처럼 이미지로 찾아서 공유하기도 한다. 소품에 필요한 게 있으면 제 것을 쓰던가, 새로 사보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함께 하는 게 재미있다.
이번엔 패턴 프린팅의 치마를 입었다. 시장에 나가 할머니들 입으시는 걸 그냥 사 입었다. 그리고 머리에 제일 많이 신경 썼다. 진짜 많은 테스트를 거쳐서 만들어낸 머리다. 매니저와 직접 가발집에 가서 수많은 가발을 다 써보고, 영감을 받아 그걸 토대로 만들어 낸 머리다. ‘무뚝뚝하고 시크하지만 귀여움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결국 쁘띠 스카프를 쓰고 나온다.
엄청난 변신을 감행한 건데, 사실 감독님은 남주 역할을 엄지원을 생각하고 쓰셨단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정말 좋았다. 그런데 그게 10년 전부터 그리 생각하셨다고 하니, ‘대체 어떤 점을 보고?’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그 이유도 물어봤는데, 그냥 “처음부터 남주는 엄지원이었다”라고만 답했다. 아직도 그 이유는 모르겠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은?
제가 한국 영화 중에 ‘조용한 가족’을 좋아한다. 거기에 ‘늑대소년’의 코드를 더한 느낌이라 재미있었다.
남주는 가족을 이끄는 실세다.
가족 구성원을 보면 남자들이 수다스럽고, 여자들이 시크하고 무뚝뚝하다. 그게 더 재미있게 와닿았다. 인물의 옷을 입기 전까지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는데, 남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정말 즐겁게 만들어 갔던 게 있다.
B급 정서의 영화인데, 오버가 없다. 딱 적정 수위를 지킨 웰메이드 느낌의 영화였다.
엉뚱한 가족의 이야기여서 쿨하게 갔으면 했고, 뻔한 클리셰가 없었으면 했다. 여러 회의를 거쳐서 담백하게 만들려고 했다. 처음 계획했던 거에 비하면 콘티도 많이 줄여서 촬영에 들어갔다.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현장에선 떼씬이 많다 보니 왁자지껄하고, 재미있었다. 재영 오빠가 워낙 유쾌하시고 센스가 좋다. 덕분에 항상 재미있는 현장이었다. 저희끼리 장난도 많이 쳤다. 숙소 생활을 하는데 12시간 표준근로제를 이행하다 보니, 덕분에 12시간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같이 영화도 보고, 피자, 치킨도 시켜 먹었다. 현장에 읍내가 있었는데 다른 배우들은 쉬는 날 읍내에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전 잘 안 나가는 편이다. 다른 배우들은 읍내에서 인기가 많았다는데, 제가 그걸 못 느껴봤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수경 씨와 특히 지냈다고 들었다.
오래 했던 배우들이라 잘 맞았고, 수경이랑 가람이도 잘 맞았다. 아무래도 수경이랑 저랑 가장 꽁냥 꽁냥 했던 거 같다. 수경이가 참 예쁘다. 저랑 잘 맞는 부분도 많다. 같이 하는 배우들이 좋을 때도 있고, 덜 좋을 때도 있다. 항상 좋을 수는 없는 거다. 하지만 이번엔 찍을 땐 그냥 그랬는데, 끝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구나’ ‘배우를 넘어 사람으로도 좋은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정재영 씨의 유머 순발력이야 알아주는 부분이다. 애드리브도 많았을 거 같은데.
전 대사 애드리브는 나름 절제를 많이 했다. 하지만 재영 선배는 워낙 애드리브를 워낙 많이 하신다. 웃기는 애드리브는 일단 NG 받고 가는 거다. 그런데 애드리브로만 진행하는 신도 꽤 많았다. 대본엔 한 줄 정도만 적혀있었는데, 다들 애드리브로 작정하고 덤볐다. 다들 웃기고픈 욕심은 있는 거 같다.

가족들의 과거사가 나오지 않는다. 특히 준걸과 남주의 연애사가 궁금했다.
제작자와는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채널로 프리퀄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전사가 생략돼서 더 재미있게 상상하며 진행할 수 있었다. 저희끼린 “원래 남주는 욕의 달인이었을 거야. 하지만 그나마도 임신 중이라 자제하고 있는 거야” “민걸이랑 남주가 동창인데, 중걸이가 꼬셔서 결혼한 걸 거야”라는 식의 비하인드를 만들었다.
큰 부상도 당했다고.
좀비가 온다고 문을 막다가 제 손가락이 껴 있는 상태에서 문을 닫아버렸다. 너무 아팠는데도 그냥 너무 아픈데도 일단 그냥 연기를 진행했다. 나중에 보니 손가락이 골절됐다.
아이고, 너무 고생 많았다.
아니다. 배우보다는 좀비분들이 너무 고생하셨다. 가을 배경을 먼저 찍고, 나중에 겨울에 찍었다. 저흰 좀비를 막는다며 옷을 껴입고 있었는데, 좀비들은 정말 추운 복장이었다.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재미있는 비하인드가 있다면?
제작팀에서 배려를 많이 해줬다. 저희가 집 안의 신이 많다 보니, 실제 집에서의 연기처럼 편안하게 나오라고 보일러를 설치해주셨다. 예전에 효진이가 ‘고령화 가족’ 찍을 때 그걸 경험해 봤는데 정말 나오는 연기가 달랐다고 했다. 그걸 한 번 경험해보나 했는데, 알고 보니 보일러 스위치가 저희가 잔뜩 해놓은 바리케이드 뒤쪽에 있었다. 결국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자린고비와 같았다. 딱 한 번 썼는데, 그때 발전차가 다운됐다. 참 슬픈 보일러다. 추운 현장이었지만 스태프들의 배려는 정말 따뜻했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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