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루시드폴 ① 귤 건네는 제주 농부 루시드폴의 향기
[Z인터뷰] 루시드폴 ① 귤 건네는 제주 농부 루시드폴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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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이소희 기자]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현 제주도민. 농부/가수/소설가)” 루시드폴의 인터뷰를 진행하기 앞서 소속사로부터 받은 메일에 딱 저렇게 쓰여있었다. 당연히 웃음이 터졌다. 심지어 이후에는 “한창 수확철인 관계로 한정된 시간 안에 진행하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라고 적혔다. 그의 위트, 아직 살아 있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루시드폴은 실제로, 제주도에서 소속사 식구들과 한창 귤을 따고 포장하다가 서울에 올라왔다. 제주도에 살림을 차렸지만 그래도 인터뷰는 해야 하니까, 새 앨범도 나왔고. 그는 지난 15일 정규 7집 앨범 ‘누군가를 위한’을 발매했다. 2년 간 기록한 감정을 노래와 글, 사진으로 응축했다.

자리에 앉은 루시드폴은 취재진과 마주하는 게 어색한 듯 보였지만,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와 중간중간 배어나는 위트로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인터뷰가 끝나고 루시드폴이 “기사 잘 부탁 드립니다”라고 하는데, 그 상황 자체가 낯설었다. 워낙 조용히 음악 활동을 하는 가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루시드폴과 대화를 곱씹어 보니 ‘생각보다 편안한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 이하는 루시드폴 일문일답.

먼저 컴백 소감을 말해달라.

난 계속 있었는데 ‘컴백’이라고 하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이번 앨범 ‘누군가를 위한’ 설명을 한다면.

앨범은 책으로 구성돼 있어요. 처음에 기획할 때 ‘뭘로 가야 하나’ 고민됐죠. CD가 끼워져 있는 책인지, 책이 있는 CD인건지. 따로 떼놓고 이야기 하기가 어렵게 됐어요. 실린 동화는 작년에 썼어요. 그리고 그 곡에 맞는 곡들을 썼기 때문에 하나의 앨범으로 밖에 말을 못하겠어요. 한 뮤지션이 만들어낸 모음집이에요.

앨범 작업에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1집 이후 처음으로 앨범과 뮤직비디오가 동시에 나오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었어요. 저는 뮤직비디오가 변변치 않은 뮤지션 중 한 명이에요. 앨범 나오고 6개월 뒤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는 식이었거든요. 이번에는 기적 같은 일이에요. (웃음)

사실 제 앨범에는 타이틀곡이 없다시피 해요. 그런데 이번에는 데모 작업할 때부터 타이틀곡이 명확했어요. 주변 분들에게 ‘어떤 노래가 좋냐’고 물어봤는데 한 곡(타이틀곡)으로 표가 몰렸어요. 그런 경험이 기존에 거의 없었는데.

전 아직도 ‘타이틀곡’이 뭔지를 잘 모르겠어요. 팬들은 수록곡을 다 좋아할 거고, 날 모르는 사람에게도 앨범 전체가 다 좋게 들려야 하잖아요.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2년 만에 앨범이 나왔다.

그렇게 정해놨어요. 2년보다 더 빨리 앨범을 낼 자신이 없고, 2년이 넘어가면 뮤지션으로서 약해진다고 보거든요. 앨범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길지 않은 시간이에요. 곡을 모으다 보면 온전히 남아 있는 시간은 1년 반인데, (그 기간 동안) 음악도 많이 들어야 하고 기타 연습도 해야 하고 빠듯해요. 앨범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뮤지션으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성장해야죠.

앨범 구성이 독특하다. 음원CD와 동화책, 그리고 한정판에는 직접 키운 귤까지.

회사 식구들이 내려와 함께 귤을 땄어요. 어제까지도 포장을 했고. (웃음) 제가 할 수 있는 한 담아내고 싶었던 앨범이에요. 느낀 걸 곡으로 표현하는 게 한계가 있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약간 건방진데, 노래라는 틀이 답답했어요. 글을 써보니 노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가 있었어요. 앞으로도 노래와 글 등으로 표현을 할 것 같아요.

수록곡에는 동화를 위한 사운드 트랙 5곡이 중간중간 포함되어 있다.

책의 흐름에 맞춘 거에요. 2CD로 할까 생각했었는데, 내 목소리가 계속 나오니 지루한 거죠. (웃음) 다른 느낌의 곡들이 중간마다 들어가면 듣는 사람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특히 첫 번째 피아노 곡은 앨범 구상 시 처음 썼던 곡이라 의미가 커요. 저는 피아노를 전혀 못 치거든요. 또 동화와 떼려야 땔 수 없는 곡이라 첫 트랙으로 배치했어요.

홈쇼핑을 통해 신곡 최초 공개도 하고 앨범과 귤로 구성된 한정판 앨범을 판매했다.

8월 중순 경 오랜만에 회사 식구들과 모여 밥을 먹으며 앨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다가 유희열이 농담처럼 “홈쇼핑에서 한 번 해보지?”라고 해서 다들 웃었어요. 전 방송 안 하잖아요. 그런 걸 아니까 유희열도 “홈쇼핑에서 한 번 진하게 하고 끝내’ 그러는데 솔깃했어요.

막상 하려니 막막하긴 했어요. 귤을 어떻게 나눌 것이며 어떻게 주문을 받을 것이며 방법을 고민했죠. 없었던 일이 생긴 거라 다들 힘들어 했어요. 매니저부터 대표님까지 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귤을 따고… 다음에 또 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쫓겨날 것 같아요. (웃음)

귤 모양 탈도 쓴 거 봤는데 엄청 웃겼다.

그 귤 모자 제가 쓴다고 했어요. (웃음) 망가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어요. 다만 우리의 본 뜻이 곡해되고 팬들이 싫어할까봐 걱정됐어요. 그래서 이 방송이 라이브로 음악을 들려드리는 프로지, 몇 개를 더 팔고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그 틀에서 벗어나면 전 안 하겠다고 했어요.

다음 앨범도 이번처럼 독특한 구성으로 할 생각이 있는지.

앨범의 형태이기만 하다면 뭐가 됐든 그게 중요할까 싶어요. 다만 누가 내 앨범을 간직해줬으면 좋겠다는 건 변함이 없어요. 물리적으로 만질 수 있고, 안을 수 있고, 냄새도 맡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제 앨범이었으면 좋겠어요. 가상의 디지털로만 존재하는 음악은 뮤지션으로서 허무할 것 같아요. 손 때 묻은 기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그나저나 지난해 제주도로 이사하고 농사도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물려 받은 땅이 있는 거면 참 좋겠지만 그런 건 아니에요. 우연히 만난 동네 친구들과 양파, 키위를 재배하고 있었는데, 아는 형님이 300평 정도 되는 귤 밭을 빌려주신다고 해서 두 농사를 병행했어요.

그런데 규모가 점점 커지는 거에요. 자꾸 주변 분들이 땅을 빌려주셔서 1000평까지 커져서 이러다 음악을 못하겠다 싶었어요. (웃음) 그래서 귤 밭 빌린 것만 농사 지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작년에 첫 수확을 하고 계속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도에서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나.

이상순과 제주도에서 자주 보는 편이긴 한데, 굉장히 오랜만에 봐요. 두 세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서 가끔씩 친구들이 내려오는데, 애틋해요. 그래서 나쁘지 않다고 느껴요. 어떤 사람은 같은 서울에 있어도 1년 만에 보는 사람도 있는데 제주도에 내려와서 보면 확 반가운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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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인터뷰] 루시드폴 ② 7집, 홀로서기, 교감, 가창력 그리고 쉼표

 

사진=안테나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