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해어화' 유연석 ① "변심한 나쁜 남자? 악역이라 생각 안 했다"
[Z인터뷰] '해어화' 유연석 ① "변심한 나쁜 남자? 악역이라 생각 안 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배우 유연석이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앳된 얼굴로 유지태의 아역을 연기한지도 벌써 십수년이 지났다. 군복무 이후 ‘혜화, 동’ ‘건축학개론’ ‘늑대소년’ 등 꾸준하게 얼굴을 비췄지만 노력에 비해 나름의 아쉬웠던 시간들이었을 터. 하지만 2013년 드라마 ‘응답하라1994’에서 순정파 야구선수 ‘칠봉이’로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았다.

화제의 중심에 선 유연석은 ‘제보자’ ‘상의원’ ‘은밀한 유혹’ ‘뷰티 인사이드’까지 바쁜 시간을 보냈고, 올해엔 ‘그날의 분위기’에 이어 벌써 두 번째 작품으로 관객과 마주한다. 바로 영화 ‘해어화’를 통해서다. 영화 ‘해어화’에서 ‘소율’(한효주 분)과 ‘연희’(천우희 분)의 사랑을 받는 천재 작곡가 ‘윤우’를 연기한 유연석을 지난 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제니스뉴스가 만났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윤우는 ‘천재 작곡가’와 ‘소율을 버리고 그의 친구 연희를 사랑하는 남자’로 설명된다. 물론 캐릭터에 여러 설정이 있었겠지만, 영화에서는 윤우에 대해 그리 친절한 설명은 하지 않는다. 특히 사랑에 대한 감정이 소율에서 연희에게로 넘어가는 과정이 급작스럽다. 그래서 윤우에 대해 ‘나쁜 남자’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사실 전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윤우가 나쁜 남자나 악역이라고 생각 안 했어요. 영화를 보시는 여성 관객들이 아무래도 소율의 감정에 이입하다 보니 악역으로 느끼시는 것 같아요”

다소 억울하다는 유연석의 항변이다. “윤우가 연희에게 빠져가는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음악적 뮤즈로 인연을 맺게 된 거지, 급하게 변심을 한 건 아니에요. 작업을 같이 하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또 다른 감정이 싹트게 된 거죠. 실제로 뮤즈와 작업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 작곡가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우에 대한 여성 관객의 원성이 자자한 건 윤우가 소율에게 했던 철썩 같은 약속 때문이다. 노래는 연희에게 주지만 다른 여성을 마음에 품어본 적 없었다고, 앞으로도 소율에 대한 사랑은 계속될 것이라는 언약이었다.

특히 그 약속은 유연석이 윤우가 소율에게 상처를 주는 신 중 가장 인상 깊었다고 꼽은 장면 뒤에 이어진다. 소율은 "왜 자신에게 주기로 한 노래를 자기에게 주지 않았냐”고 절규하지만 윤우는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는 소율에게 “지금 내 노래엔 연희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라며 변명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남자 입에서 선의의 거짓말을 기대했을 텐데 음악에 대해서는 곧이곧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윤우라는 캐릭터다. 그리곤 사랑의 언약을 한다.

“사실 저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죠.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다른 뮤즈와 인연이 생겼다고 그 사랑의 약속마저 저버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됐거든요. 그런 케이스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간신히 이해하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두 여자의 사랑을 받는 역할이다 보니 분명히 영광스러운 캐릭터이긴 한데, 저 자신은 굉장히 복잡하고 혼란스러웠어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들이 있다 보니 그것들을 ‘어떻게 잘 표현해야 할까’라는 고민들이 많았죠. 아마 저는 그런 상황 놓여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굉장히 혼란스러웠을 것 같아요”

뮤즈와의 인연이었다 해도 결국 사랑하던 여자를 버리고, 그의 동무를 사랑하게 된 것은 틀림없다. 유연석이 이야기한 윤우와 연희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민을 느낀 부분은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두 사람의 인연은 많은 남녀가 그러하듯 집에 데려다주는 도중 우연히 일어난 일에서 비롯됐다.

“윤우와 연희가 곡 작업을 하면서 애로 사항이 굉장히 많았어요. 연희에 대해 몸 안에 가시를 품은 가시꽃 같은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됐죠. ‘조선의 마음’이라는 노래가 잘 풀려가지 않았고, 저에 대해 마음도 풀지 않는 상황이었고요.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연희를 집에 데려다 주는데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고 연희는 윤우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해요. 돈을 요구하고요. 그때 연희가 윤우에게 ‘이게 조선의 모습이다. 돈 몇 푼에 딸을 팔아 넘기는 게 바로 조선이다’라고 말해요. 그 말을 들은 윤우가 ‘당신이 내 선생이다. 다시 조선의 마음을 써보겠다’라고 답하고요. 그 이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연민을 품고 그렇게 곡 작업을 하면서 우리의 감정이 조금씩 달라져 가고 이해하고, 맞아갔던 거 같아요. 그런 장면들이 생략되다 보니 조금 급하게 감정이 변화된 것처럼 비춰졌을 것 같아요”

연희와 윤우는 소율의 감정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계기가 되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전사가 빈약하기에 그 매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쉬울 일이다. 과연 윤우와 소율은 어린 시절 어떻게 만났고, 왜 윤우는 ‘조선의 마음’이라는 곡을 쓰게 됐을까? 

“윤우는 기생의 아들이었어요. 특히나 그의 어머니는 삼패 기생(대성권번의 기생은 그 실력에 따라 가장 높은 일패 기생부터 삼패 기생까지 나뉘었다)이었죠. 그런 어머니 밑에서 정가라는 노래를 노름판에서 들으면서 자랐고요. 그러다 보니 정가에 대한 반감도 있었고요. 노름판에서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듣는 게 아닌 모든 사람들이 듣고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졌던 인물이에요” 

사랑의 변화의 중심에 서있는 윤우이지만 유연석이 바라본 윤우는 ‘작곡가’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유연석은 윤우에 대해 복잡한 사랑 관계에 놓인 인물이지만 나라를 잃은 혼란의 시대에 놓인 한 작곡자로 접근했다. 그 연기를 위해 감독과 음악감독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영화 후반부 준비했던 뮤지컬의 음악감독과 스태프를 참고했다. 그만큼 작곡자로서 윤우가 그 시대에 어떤 목소리를 내고 싶었는지가 중요했고, 그래서 영화 속에 직접 연주하여 삽입된 아리랑신에 큰 애착을 보였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신이 있어요. 윤우에게 피아노 연주란 곧 본인의 목소리고,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에 제가 피아노 연주를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표현하고 싶지 않았고요. 제가 피아노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안 됐지만 고집스럽게 연습해서 연주를 했어요”

겸손한 말이었지만 영화 속에서 윤우가 연주하는 ‘아리랑’은 한 번에 OK가 됐다. 특히 현장음 그대로를 영화 속에 집어넣었을 정도였다. “보통 가이드를 틀어놓고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신 특성상 제가 연주를 하다가 일본 군에게 저지 당하다가 연주를 이어가야 하는 부분도 있고, 감정적으로 집중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 2편에서 계속

 

사진=하윤서 인턴기자 hays@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