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안하나 기자] 배우 박해일이 ‘제보자’ 이후 2년 만에 상업영화 ‘덕혜옹주’로 돌아왔다. 최근 박해일은 독립영화에만 줄곧 출연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덕혜옹주(손예진 분)를 지키며 망명을 돕는 독립운동가 김장한 역을 맡아 멜로 그 이상의 감성을 선보였다. 시간이 지난 만큼 그의 멜로 연기는 한층 더 짙어졌고, 영화를 본 관객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손예진 분)의 삶을 그린다. 박해일은 극 중 덕혜옹주를 평생 지키는 독립운동가 김장한 역을 맡았다. 김장한은 역사에 간략하게 설명돼 있는 인물이다. 이에 허진호 감독은 영화적인 설정을 더해 매력적인 캐릭터로 그려냈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로 기자들을 맞이했다. 이후 전날 네이버 프로필 사진을 스스로 증명사진으로 바꿔 화제가 된 것을 언급하자 “그 일이 화제가 될 만한가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라며 너스레까지 떨었다.
하지만 ‘덕혜옹주’와 관련된 질문을 하자 눈빛이 180도로 달라졌다. 진지하고 또렷한 눈빛으로 차근차근 자기 생각을 풀어냈다.
# 덕혜옹주와 손예진, 그리고 김장한
실존 인물을 그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김장한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각색할 때부터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고 서로 의견을 공유했거든요. 그 덕분에 현장에서는 빠른 속도로 찍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감독님께서 김장한 선생의 후손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걸로 알고 있어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그려내고 싶으셨다"고 하더라고요. 혹여나 있을 수 있는 역사 왜곡에 대해 미연에 방지하신 거죠. 그 덕분에 영화를 찍고 나서도 별 탈 없었어요.
이런 김장한에게 있어 덕혜옹주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에요. 김장한은 덕혜옹주를 평생 동안 지키려고 하고 귀국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 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극 초반 고종이 덕혜옹주와 김장한을 약혼시키려 하다가 결국 실패하잖아요. 그 부분이 김장한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어요. 나무로 치면 뿌리인 셈이죠. 이후 김장한이 일본에 군인으로 위장해서 가요. 저는 이 두 가지가 김장한의 드라마를 풀어가는 힘이 된 것 같아요.
손예진 씨가 ‘인생 연기’라는 호평을 얻을 만큼 이 작품에서 열연했다. 이를 돋보이게 해준 것은 박해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진 씨와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맞았어요. 사실 예진 씨가 저보다 먼저 ‘덕혜옹주’에 캐스팅됐어요. 이후 제가 김장한 역할을 제안 받았을 때는 덕혜 역에 예진 씨가 캐스팅됐다는 것을 알았고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예진 씨는 ‘외출’(2005)을 통해 허진호 감독님과 함께 호흡을 맞췄기에 당연히 잘할 거라 생각이 들었거든요. 현장에서 본 예진 씨는 정말 잘했어요. 특히 체력이 대단해서 놀랐고 먹는 것도 잘 먹어서 놀랐죠.(미소)
손예진과 키스신이 있었는데 삭제됐다. 작품 속 유일한 달달한 로맨스 장면인데 아쉬움은 없었을까?
아쉽지 않았어요. 감독님을 존중했고 믿었거든요. 허진호 감독님의 평소 로맨스를 연출하는 스타일을 보면 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 절제된 감수성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허진호 감독

허진호 감독은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 2001년 ‘봄날은 간다’. 2005년 ‘외출’, 2007년 ‘행복’, 2009년 ‘호우시절’까지 연출했고, 절제된 감정으로 만들어 낸 로맨스 영화들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무려 7년 만에 ‘덕혜옹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존재와도 같은 ‘덕혜옹주’는 허진호 감독의 손을 거쳐서 더욱 절절한 감동과 스토리로 재탄생했다.
허진호 감독과 작업을 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감독이다.
감독님의 전작들을 살펴보면 남녀 두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보통의 감독님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적정한 거리에서 나오는 미묘한 감정들을 관객에게 던져주면서 생각하게 하죠. 관객들은 대놓고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남녀를 풀어내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덕혜옹주’에서 덕혜와 김장한의 모습이 이렇게 표현됐다고 생각해요. 찍고 나서 모니터를 할 때 ‘역시 허진호 감독님 로맨스답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전 작품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들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전작들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덕혜옹주’도 들어가기 전 감독님들의 작품을 보면서 ‘허진호 감독스럽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덕혜옹주’는 다르게 그려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촬영 하면 할수록 감독님께서 제 기대를 충족시켜 주셨고 만족할 만한 결과물로 탄생했어요.
#명장면? 무조건 처음이 중요

‘덕혜옹주’의 수많은 장면들이 명장면으로 꼽히고 있는데 박해일이 꼽는 명장면은?
늘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덕혜옹주’도 첫 5분을 집중해서 찍었어요. 나이가 든 김장한의 모습에서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시작되잖아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장 중요했던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는데, 저는 김장한이 옹주님이 정신병원에 있는 것을 알고 면회실에서 데리고 나갈 때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동안 김장한은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어서 눈물이 났던 거 같아요.
# ‘은교’에 이어 또 한 번 노인분장

'은교' 때 다시는 노인분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또 했다.
앞으로 어떤 일에 대해 호언장담을 하면 안 되겠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더라고요. (미소) ‘은교’에서 한번 노인 분장을 제대로 해봐서인지 어려운 것은 없었어요. 분장 받을 때도 ‘이제 이렇게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받았어요. 또 작품에서 노인 역할로 인해 분장해야 한다면 마다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끝으로 박해일은 “주변 사람들이 영화를 다 좋다고 칭찬을 많이 해줘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열심히 찍었으니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라고 애교 섞인 인사를 전했다. 그의 애교 덕분일까? '덕혜옹주'는 지난 3일 개봉한 뒤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사진=하윤서 기자 h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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