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사라진 밤' 김강우 "외로웠던 역할, 힘들게 살려고 노력했다"
[Z인터뷰] '사라진 밤' 김강우 "외로웠던 역할, 힘들게 살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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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김강우의 그날 밤은 많이 외로웠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가 연기했던 '진한'의 그날 밤은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아내가 죽었고, 그 시체가 사라졌다. 그런데 경찰은 진한을 의심했고, 심지어 살인범으로 몰아새웠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 육체도, 정신도 피폐해질 시간이었다. 그래서 김강우는 진한을 연기하기 위해 자신을 외롭게 괴롭혔다.

영화 '사라진 밤'이 호평 속에 개봉했다. 당초 엄청난 화제몰이가 있었던 건 아니었던 작품. 하지만 언론 시사 이후 좋은 평가가 쏟아졌고, 일반 시사의 후기 또한 매우 좋았다. 이는 개봉 스코어로도 직결돼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영화를 만든 이에게 무엇보다 좋을 평가는 원작을 한국식으로 훌륭히 리메이크 했다는 것과 배우들이 인생 연기를 펼쳤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김강우가 서 있었다.

최근 제니스뉴스와 김강우가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나직한 목소리로 영화를 찍는 내내 고생했던 지점을 토로하는 김강우. 하지만 관객들은 알고 있다. 그런 고민이 있었기에 그토록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이제 김강우는 더이상 외로울 필요도, 괴로울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추리하는 재미가 있는 스릴러가 나왔다. 영화를 본 소감은?
일단 시나리오보다 재미있었다. 특히 비호감 캐릭터가 될 수 있었는데,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로 나와서 다행이다. 물론 그렇다고 진한의 죄를 벗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선택에 부담이 됐을 정도로 진한의 죄는 무겁다.
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시작부터 아내를 살해했다는 걸 이야기하고 간다. 이유불문하고 나쁜놈, 최악의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진한’을 받아드렸다.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여러 선택지가 있다. 어떤 건 캐릭터를 보고 선택할 때도 있고, 어떤 작품은 오로지 작품에 완성도만 볼 때도 있고, 어떤 건 시나리오에서 오는 재미를 중점적으로 선택할 때도 있다. ‘사라진 밤’은 후자의 경우였다.

원작은 봤는지?
촬영하기 전에 봤다. 전체적으로 무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유럽 영화 스타일일 수도 있는데, 표현들에 심심함이 있었다. 시나리오나 원작에서는 박진한이라는 인물에 연민이 가지 않았는데, 한국 영화에서는 연민이 느껴져서 좋았다.

원작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원작은 꽤나 묵직한 맛을 자랑한다.
아마 원작을 보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비교는 될 거다. 스포일러도 빨리 나올 거 같다. 다행인건 우리 영화가 다른 스릴러처럼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반전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영화의 최고 장점은 친구들이 같이 영화관에 들어가 20분쯤 흘렀을 때 서로 머리 속에서 다른 추리를 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신인감독과 함께하게 됐는데.
이창희 감독에 대해선 이 작품의 공간적인 제한 때문에 물음표가 생겼다. 한정적인 공간이다. ‘작품을 많이 했던 사람도 풀어내기 힘들텐데, 신인 감독이 이걸 유연하게 풀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있었다.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제작사 쪽에 무슨 자신감인지 이창희 감독의 단편 영화를 보여줬다. 그런데 그 작품은 공간이 더 한정적이었다. 시골의 작은 피씨방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였다. ‘이런 정서를 유지할 수 있는 감독이라면 괜찮겠다’ 싶었다.

시나리오보다 잘 나왔다는 점은 어떤 부분일까?
시나리오에선 각 인물의 특징이 먼저 보였다. 이 신 안에서 이 캐릭터가 어떤 감정 상태일까가 궁금했다. 아내를 죽이고 나서, 형사를 만났을 때의 진한의 감정 같은 미묘한 디테일이 재미있었다. 자신이 죽인 게 아닌 척 하면서도 분명 긴장하고 있을 터인데, 속으로는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진한이다. 그런 재미가 있었다. 감독님의 시나리오에 지문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잘못 표현되면 건조하겠다 싶었는데, 리드미컬 하게 잘 표현된 것 같다.

감독의 컷이 아주 칼 같았다고 들었다.
제가 신을 더 만들어서 촬영하자고 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많이 찍어놓으면 연출로서도 유리한 지점이 있는데, 이창희 감독은 “안 찍습니다. 끝났습니다. 술 드시러 가시죠”라고 한다. ‘제작사에서 돈 쓰지 말라고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희애 선배님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더 찍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물으시면, 이 감독은 “필요 없습니다. 선배님”이란다. 정말 단호박이다. 우리가 출연료를 더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불안하지도 않았나보다. 정말 한 컷도 더 촬영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로 보니까 딱 알맞을 만큼 표현이 됐다. 그런 면에서 참 대단한 감독이다.

하룻밤 사이의 일이다. 여러 날에 걸친 촬영 동안 그 감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터다.
가장 어려웠다. 그 호흡을 유지해야 했는데, 배우라면 다 알고 있다. 작은 디테일들이 모아서 쌓아가는 맛을 알고 있다. 조금만 잘 못해도 안 되기 때문에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 보름에서 20일 정도를 세트에서 촬영했는데, 그간 힘들게 살려고 노력했다. 잠도 덜 잤다. 사람이 하루만 밤을 새도 수척해진다. 거기에 아내를 죽인 용의자 1순위로 의심 받는 상황이었다. 아마 진한은 미칠 것 같은 상황이었을 거다. 그래서 시시각각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유지해야 했다. 외로울 필요가 있었고, 평소보다 예민해졌어야 했고, 말수도 줄여야 했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

말로만 들어도 힘든 시간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회차도 많지 않았다. 찍을 땐 ‘지루하다’ 했는데, ‘어? 벌써끝나버렸네?’ 하는 특이한 영화였다. 그래서 제겐 불안한 영화였다. ‘제대로 한 게 맞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얼렁뚱땅 끝내버린 기분? 정말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 외로운 시간의 반대쪽에 있던 건 김상경 씨였다.
상경이 형이랑 하니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던 거다. 그만큼 편했고, 잘 받아주셨다. 이야기를 거의 안 했었는데도 즉흥적으로 연기할 때 재미있는 부분들이 생겨났다. 전 연기를 하면서 가장 재미있을 때가 상대 배우에게 제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게 나올 때 너무 재미있다. 그러면 저도 즉흥적으로 제가 계산했던 걸 조금씩 변주해갈 수 있다. 그럴 때 사실감이 생겨나는 게 참 재미있다. 이게 궁합이 잘 맞는 배우들이 있다. 홍상수 감독님 작품들에서 특히 그런 것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이번 영화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나왔다. 덕분에 한정된 공간에서의 긴 신들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서로 전혀 다른 캐릭터인데 묘하게 합이 좋았다.
상경이 형하고는 예전에 ‘하하하’를 잠깐 같이 하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들은 ‘김상경이라는 배우가 왜 또 형사 역할을 할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전 형이 형사 역할을 할 때 함께 영화를 하고 싶었다. 형이 하는 형사는 무언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아마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일 거다.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건 아니지만, 저희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따뜻함을 가진 형이다. 아마 다른 직업으로 만났으면 섭섭했을 것 같다. 앞으로 형이 형사 역할을 안 할 수도 있으니까, 이번에 만나서 너무 좋았다.

학교 다닐 때도 교류가 있었을까?
제가 입학했을 때 저보다 다섯 기수 위의 형들이 학생회의 주축 멤버였다. 형들이 34기인데, 거기엔 김석훈 형, 김상경 형 등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연극학과는 규율이 엄청 셌다. 예전엔 구타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을 그 형들이 다 없애기 시작했다. 이른바 적폐청산의 주축 멤버다. 상경이 형이 특전사 출신이라 덩치도 참 컸다. 그런데 비주얼과 다르게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인 형이었다. 그런 좋은 문화를 만들어낸 형이었다.

김희애 씨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안 그래도 선배님이 “넌 녹음기처럼 누르면 뮤즈라고 하고 다닌다”라고 하셨다. 하하. 제가 뮤즈라고 말한 건 ‘나의 여신님’이라는 느낌 보다는, 제가 청소년기에 보았던 선배님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계시는데 대한 존경심이다. 외향적인 아름다움만 놓고 말하는 건 아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그렇게까지 관리를 하신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저만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뮤즈였던 김희애 씨와 연기를 했는데, 하필 애증의 관계였다.
김희애 선배님과는 꼭 한 번 멜로를 하고 싶었는데, 멜로 아닌 멜로를 해버렸다. 징그러운 멜로다. 그게 참 아쉽다. 따뜻한 멜로였으면 좋았을 거다.

사실 김희애 선배님이 함께 대기하고 있을 땐 소녀 같으시다. 털털하시기도 하고, 두 아이의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시는 게 사적으로도 많이 느껴진다. 그걸 지우고 설희로 대하자는 게 참 힘들었다. 그래서 더 다가가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연기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여러모로 이해하면 안 되는 캐릭터라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맞다. 이해하면 큰일난다. 그럴 땐 배우가 참 힘들다. 그 가정을 내게 대입시킬 때 힘든 순간이 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만약에 박진한이라면?’ 이라는 가정을 띄워놓고 그곳에 나를 넣어야 한다. 그래서 불안한 게 있었다.

‘돈의 맛’ 때도 자신의 신분 상승을 목표로 하다가 결국 그 길을 떠났다.
위를 목표로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재능이 있는 사람에겐 돈이 붙는다. 권력도 붙는다. 동시에 달콤한 유혹들도 다가온다. 하지만 그런 삶을 선택했을 때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진한도 그랬을 거다. 그런 삶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신을 잊어갔을 거다. 그래서 진한이가 불쌍했던 거다. 사실 제게도 진한은 딜레마였다. ‘이 정도면 행복한 인생 아닐까? 와이프가 ‘차 바꿀래?’라고 물어 봐주는 인생, 몇 명이나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과의 싸움을 계속 했던 것 같다.

여러모로 예민했었을 ‘사라진 밤’의 작업이었던 것 같다. 일반 생활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지?
배우는 이기적인 직업이다. 특히 가족 구성원에게 그렇다. 가족들이 배우에게 삶의 패턴을 맞춰주기 마련이다. 안 그러면 배우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힘들다. 워낙 불규칙적이라,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아마 표현은 안 하지만 스트레스가 있을 거다. 게다가 전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라, 촬영 중엔 가족에게 신경을 못 쓴다. 집에서도 그걸 알고 있다. 대신 일을 안 할 때 최대한 보상을 하려고 한다.

 

사진=싸이더스, 시네그루 키다리이엔티

권구현 기자
권구현 기자

kvanz@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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