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배우 차승원이 모처럼 코미디 영화를 선택했다. 영화 ‘이장과 군수’ 이후 12년 만에 멋짐을 내려놓고 파마머리의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잘생기고 멋진 연기도 물론 잘하지만, 차승원의 진가는 ‘사람 냄새 나는’ 연기를 할 때 발휘된다. 영화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이장과 군수’ 등 다수의 영화에서 유쾌하고 친근한 캐릭터를 선보이며 코미디 연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망가짐을 불사하지 않는 차승원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그가 오랜만에 선택한 코미디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도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 철수의 서툴고 순수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웃기는 반면, 전 국민이 아파했던 과거의 화재 사고에 아낌없이 몸을 내던지는 소방관의 모습까지 그리며 감동과 공감을 선사한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차승원의 연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에게 빠져들게 한다.
사람 냄새 나는 코미디 영화로 돌아온 차승원을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힘을 내요 미스터 리’부터 인간 차승원의 이야기까지 진솔하게 담은 인터뷰를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Q. 개봉 앞두고 바쁠 텐데,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어제도 라디오까지 스케줄이 꽉 찼어요. 그래서 끝나자마자 바로 들어가서 오늘 인터뷰 준비를 했죠. 제가 어느 순간부터 집돌이가 됐는데, 이렇게 된 지가 제법 오래 됐어요. 예전에 영화 촬영할 때는 한두 달 집을 비우고 그랬거든요. 일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게 별로 없었는데, 요새는 이틀만 나가 있어도 미안해요. 그렇다고 제가 막 가정적인 것도 아닌데.
Q. 왜 그렇게 변한 거 같나요?
이틀만 밖에 있으면 몸이 아프더라고요. 나이? 하하. 요새는 몸에 안 좋은 것도 잘 안 해서 전보다 회복이 빨리 되는 거 같아요. 좀 피곤한 정도죠.
Q.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감독님이 저에게 뭔가를 봤으니까 주신 거겠죠? 선뜻 선택하지는 못했는데, 후반 사고 부분이 있어서 한 번에 한다고 못 했어요. 너무나 큰, 국민 모두가 아파했던 사고였잖아요. 제가 왜 중심에서 이걸 해야 하나 싶었어요. 촬영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 고마우신 분들이 있잖아요. 그 분들에게 감사한 걸 느껴요. 나는 그렇게 못하는데, 그 분들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Q. 확실히 선뜻 선택하기에 쉽지 않은 내용이에요.
그런 거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하이힐’ 같은 작품도 했잖아요. 거부감 같은 건 없어요. 이번엔 사랑으로 선택한 거 같아요. 거기에 작품도 좋았고요.
Q. 출연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요?
우리 감독님이죠. 이런 영화를 찍으려면 사건을 이용하거나 훼손시키면 안 되는데, 이계벽이라는 사람을 1년 이상 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따뜻하다는 걸 알았어요. 정말 온화하고. 영화 결과가 어떻게 되던 인간 이계벽은 참 오래 두고 보고 싶다, 작품을 안 하더라도 현장을 놀러가거나 소소하게 일상을 물어보고 싶었죠. 감독님이 영화 ‘독전’ 현장에 놀러오셨는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톤이 너무 좋았어요. 얘기나 해볼까 했는데, 두 번째 만남에서 ‘이 사람 좋다’ 생각했죠. 평상시에는 더 좋은 사람이에요.
Q. 그간 해온 코미디 영화지만 이번에는 조금 어려운 역할인 거 같아요.
블라인드 시사를 했는데 다섯, 여섯 명 정도는 저에 대한 반응이 안 좋았어요. ‘내가 조금 더 잘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물론 현장에서 열심히 하지 않는 배우는 없지만, 조금 더 사려 깊게 했다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그런 글을 보면 좀 그랬는데, 요새는 조금 더 고민하고, 생각하고, 조금 더 디테일하게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사실 그런 아쉬움은 매 영화마다 있어요.
Q. 캐릭터 연구는 어떻게 했나요?
유튜브 영상이나 다큐멘터리, 레퍼런스를 봤어요. 그런데 전 어떤 특정 인물을 발췌해서 그분을 따라한다는 게 정말 싫었어요. 몇 번 보고 제가 생각하는 대로 잡았죠. 또 코미디 장르의 영화라 후반부의 사고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되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사실 가장 큰 걱정은 ‘이 큰 사고가 왜곡되거나, 훼손되거나, 이용되는 느낌을 받으면 어떡하나’였어요. 그 걱정을 거친 종합적인 결과물이 이번 영화예요.
Q. 현장에서 매일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어요.
특히 지하도 안에서 촬영할 때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게 어떤 방식으로 찍힐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 장면만은 제대로 찍자’ 하면서요. 후반부 감정도 보기에 따라 다른데, 되도록 신파로 가지 말자고 했죠. 시나리오 상에서 샛별이(엄채영 분)와 스킨십 하는 부분도 다 뺐어요. 샛별이를 앞으로 안은 적도 없어요. 그런 걸 굳이 하지 말자고 했죠. 슬픈 부분이니까.
사실 ‘이 영화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뭐야?’ 하는 반응이 힘들었어요. 전반부에 조금 더 웃겨볼까 생각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나름의 딜레마가 있던 작품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도 결핍이 있는 부녀가 서로 도움이 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잘 살아가겠구나 하는 걸 보이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상황입니다.
Q. 철수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아빠 차승원 씨의 모습을 가져온 부분이 있나요?
예전이라면 가정에서의 아빠 모습을 대입했을 텐데, 지금은 아니에요. 전에는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이렇게 해야지 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아빠가 된지 오래 됐으니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샛별이를 아빠처럼 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Q.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우리 애들만 좋아해요. 하하. 누구나 자기 자식만 예쁘죠. 채영이는 어머님이 정말 좋으세요.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 이야기를 두 사람 보면서 느꼈어요. 현장에 오면 그냥 일상적인 엄마와 딸의 모습이에요. 어머니가 카메라 뒤에서 지시하는 모습도 없고, 촬영장이 더우면 몰래 와서 챙겨주시고요. 그런 게 정말 좋았어요. 채영이의 집중력도 너무 좋았고요.
Q. 영화에서 상당히 근육질의 몸으로 나왔어요.
예전에는 그만큼 운동하면 훨씬 근육도 붙고 살도 빠졌는데, 그거 하느라 고생했어요. 하하. 제가 일반식을 좋아해서 다이어트 식단 같은 걸 못해요. 아침엔 무조건 국과 밥을 먹어야 하고요. 얼마 전에 영화 ‘싱크홀’ 촬영을 하면서 타이트한 옷을 입어야 해서 끼니를 놓쳤어요. 그랬더니 점심에 밥 먹어야 한다는 환청이 들리는 거예요. 한 끼만 굶어도 이렇게 되나 싶었죠. 한창 운동 많이 할 때는 옷만 갈아입어도 살이 빠졌어요.
Q. 오래 배우 생활을 한 만큼 과거와 달리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변화가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것도 아니에요. 제 다음 영화는 재난영화고, 그 다음 영화는 사람도 많이 죽여요. 나이에 따라 그런 건 아닌데, 멜로 같은 건 꺼려지죠. 하하. ‘이거 되게 좋네. 해야겠다’ 하는 마음은 안 드는 거 같아요. 내 것이 아닌 거 같으니까. 로맨틱코미디는 할 수 있는데 멜로가 진한 건 어렵고, 또 총 쏘는 건 괜찮은데 다른 흉기로 사람을 위협하는 건 어려워요.
Q. 이렇게 차기작 계획이 꽉 찬 적 있었나요?
그런 적은 없는데, 하다 보니까 했어요. 김지운 감독님 작품은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었어요. 박훈정 감독님 작품은 너무 신기해서 하는 거예요. 또 다른 영화는 굉장히 이상한 영화예요. ‘나에게 왜 이런 걸 주지?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생각했죠. 저에게서 뭔가를 찾고, 뭔가를 봤으니까 주신 게 아닐까 생각해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정말 감사해요. 예전에는 한 작품을 하면 여러 가지를 못했는데, 지금은 집에 오래 있으면서 다른 걸 잘 안 하니까 여러 가지를 쪼개서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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