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배우 정유미는 평범하고 소소한 연기에 강점을 가진 배우다. 그의 예쁜 얼굴과 사랑스러운 미소는 분명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지만, 그의 연기는 일상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정유미가 더욱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욱 공감을 자아내는 모습으로 변신했다. 조남주 작가의 동명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그는 1982년 봄에 태어나 2019년을 살아가고 있는 김지영으로 분해 관객 주변의, 관객 자신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았다.
원작 발간부터 여러 사회적 이슈를 불러왔던 ‘82년생 김지영’은 영화화가 결정되고 캐스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비난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 배우로서는 다소 어려운 결정이었을 수도 있으나, 정유미는 공식 석상에서 한결같이 “정말 용기를 내야 하는 건 다른 일”이라며 작품 선택에 대한 소신을 드러냈다.
정유미가 보인 강한 자신감처럼, 영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 모두를 ‘1982년생 김지영’이라 칭하며, 그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연기를 선보인 정유미가 있다.
일반적인 한 명의 사람으로 스크린을 찾은 정유미를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향한 논란에 대한 솔직한 심정과 작품으로 담고 싶었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한 인터뷰 현장을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Q. 촬영 전 원작 도서를 미리 읽어봤나요?
영화 출연을 결정하고 책을 읽었어요. 책을 둘러싼 논란들이 제가 본 것과는 조금 달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저처럼 보신 분들도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책을 읽은 사람들도 제가 생각한 것처럼 읽었을 거 같고요. 책을 읽으며 영화에 나온 것처럼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났고, ‘나는 어디에 있고 내 주변은 어떤지’를 많이 생각했어요. 저를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된 거 같아요. 그런 기분을 많이 느꼈고요.
Q.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나요?
전 작품을 결정할 때 회사 사람들과 저만 이야기하고, 주변에 잘 안 물어봐요. 하하. 회사에서는 ‘왠지 유미가 이 작품 할 거 같아’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그 시기에 스케줄도 없었고요. 그래서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Q. 여러 이슈 속에서 촬영을 마치고 개봉만을 앞두고 있어요. 감회가 남다를 거 같아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지는 않아요. 청와대에 올라간 청원도 봤는데, 정말 현실감이 없었어요.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니었고, 그래서 계속해서 논란됐던 이야기를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 영화는 관객들에게 좋은 이야기로 다가가는 게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와 같은 이야기에 크게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어요.
Q. 데뷔 후 처음으로 엄마 연기를 하게 됐어요. 주변에서 조언을 듣기도 했나요?
실제로 김도영 감독님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계세요. 촬영 당시 저와 직접 맞닿아 있는 분이 그렇게 지내고 계시니까, 감독님께 가장 많이 의지했어요. 주변 친구들은 시나리오가 아닌 원작을 접했으니까, 제가 출연한다는 말을 듣고 ‘잘 표현해달라’, ‘우리 정말 그렇게 살고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모든 친구가 그런 건 아니지만, 영화나 책의 여러 지점에서 공감하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선택한 캐릭터를 잘 표현해서 친구들이나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Q. 아이와 함께하는 촬영이 힘들지 않았나요?
전 아이가 작아서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래 안고 있으니 힘들더라고요. 제가 어머니들만큼 오래 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촬영 때 몇 시간만 하는 건데도 허리가 아팠어요. 나중엔 그냥 안고만 있어도 허리가 너무 아파서 안 버텨지더라고요. 그래서 시트벨트를 착용하고 촬영하기도 했어요. 촬영이 끝나면 아영의 어머니께 ‘정말 대단하세요’라고 말했죠.
촬영하면서 이런 일도 있었어요. 극중 저와 아이, 공유 오빠가 함께 자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컷도 전부 아이에게 맞춰서 촬영했어요.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이 있어서, 스케줄을 아영이 낮잠 자는 시간에 맞춰서 그 시간 안에 장면을 찍어야 하는 거예요. 아이를 억지로 재울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가 아이를 재우는 동안 세팅을 다 하고, 아이가 잠들었을 때 눕히고 저희가 조용히 들어가서 누웠어요. 그 촬영이 정말 스릴 넘쳤어요. 하하. 그래서 그 장면만 보면 그 상황이 생각나서 재미있어요. 장소가 정말 좁았거든요.
Q.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가장 공감하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저는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제가 감히 공감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워요. 하하.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었던 장면은 있죠. 극중 어린 지영이 엄마에게 ‘엄마는 왜 선생님이 안 됐어?’라고 말하고 답을 듣는 장면이 있는데,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보다 영화로 볼 때 더 쿵 내려앉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면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것들이 떠올랐어요. 분명히 다른 엄마들도 하고 싶었던 게 있었을 텐데 우리를 키운다고 희생하신 거잖아요. 저희는 커서 여행도 가는 등 하고 싶은 걸 하지만, 어머니도 어렸을 때 하고 싶은 게 많았을 거 같아요. 그런데도 자신들의 숙명이나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지냈던 마음들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 감사한 마음,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게 정말 짠하더라고요.
Q. 감독님이 특별하게 준 디렉션은 없었나요?
특별한 주의는 없었어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상태에 있는, 성별 구분하지 않은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담긴 거 같아요. 그래서 원작에 공감하신 남성분들은 그런 지점에서 영화를 보지 않았나 싶어요. 보편적으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또래들을 82년생 김지영이라고 표현했고, 성별을 떠나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저와 제작진들도 그렇게 작업에 임했고요.

Q. 지영이 다른 사람처럼 말하는 모습이 영화의 주요 사건이에요. 지영이 왜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나요?
지영이 어릴 때부터 봤던 엄마, 가끔 뵀던 할머니, 친구 등 여러 일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 일들을 통해 생긴 감정이 지영이 모르는 새에 켜켜이 쌓여있을 거 같아요. 그러다가 지영이 성장하고,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힘든 상황이 왔을 때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게 아닌가 싶어요. 지영이 자신의 엄마나 외할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쌓여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감정이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데 지영은 겉으로 보이는 사람인 거 같아요.
Q. 영화는 원작보다 희망적인 결말을 보여주는데, 바뀐 결말은 마음에 들었나요?
제가 다른 장르를 접할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잘 모르지만, 이번 영화처럼 사람을 다루는 작품은 희망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영화라는 매체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지영의 이야기도 그런 수많은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영화와 같은 이야기 할 때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Q. 어머니 역의 김미경 씨와의 호흡이 인상적이었어요.
현장에서는 저희가 다들 담백하게 연기했어요. 쉴 때 잘 쉬고, 연기할 때 집중해서 잘하는 식으로 진행했거든요. 서로 조용히 있다가 촬영할 때 만나고요. 김미경 선배님이 엄마로 나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감사하고, 지영의 엄마가 돼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어떤 장면을 촬영할 때 사용해야 하는 기술적인 것들이 있는데, 선배님과 할 때는 오롯이 감정으로만 가야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선배님과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나서 같이 호흡을 맞췄어요. 그래도 둘 다 어떤 마음으로 있는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알았던 거 같아요. 그 공간에서 그 호흡으로 가져갔더니 그런 장면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다른 장면에서는 선배님 연기를 보느라 울컥하기도 했어요. 선배님 장면을 보면서 저는 나오지 않는데 울기도 했고요.
Q. 극중 남편인 대현과 같은 남자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좋지 않나요? 하하. 실제로 제 주변에 대현 같은 남편이 있긴 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은 분들은 대현처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도영 감독님 남편은 직접 뵙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대현 과 비슷한 남편 같아요. 저희가 촬영하느라 몇 달 동안 지방에서 왔다갔다 했는데, 그때 감독님 남편분께서 두 아들을 케어하셔야 했어요. 아이들도 분명 엄마가 필요한 시간일텐데, 아빠와 같이 잘 있어줘서 괜히 제가 고맙더라고요요. 하하. 남편분의 그런 지원이 있어서 감독님이 영화를 찍을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Q. 공유 씨와 촬영을 앞두고 이야기한 부분이 있나요?
어떤 이야기를 하는 대신 시나리오에 나온 그대로 연기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출연을 결정할 때 마음은 다 똑같았으니까요.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도 별로 없고요. 모두 다 같은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나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반성하게 된 영화이기도 하거든요. 실제 저는 지영처럼 살지 않는데, 제가 얼마나 엄마를 위로했는지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런 제가 이런 연기를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배우들이 다 경험하고, 공감하며 연기하는 건 아니지만요. 촬영하면서 ‘이런 부분이 있었겠구나’라며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어요. 제가 무심한 딸이지만 영화를 통해 멀리서나마 이런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어요.
Q.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인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나요?
아직은 따로 연락드리지 않았어요. 대신 영화를 보시고 난 반응이 궁금해요. 이 영화를 하고 제가 조금 달라진 건 문자에 제때 답하는 거예요. 지금 당장은 크게 바뀌면 부모님이 이상하게 받아들이실 거 같아서요. 하하. 제가 사실 연락을 많이 못 드리거든요. 그래서 가끔 전화하면 정말 좋아하세요. 영화를 찍고 나서 ‘연락해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들으니까 더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자주 연락하려고 하는데, 매번 하는 얘기가 똑같더라고요. 직접 얼굴 보고 있으면 잘하면서, 통화할 때는 무뚝뚝한 편이에요. 전 장녀라서 부모님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자랐는데도 잘 못 했죠. 하하. 저는 남동생보다는 더 사랑받은 거 같아요.
Q. ‘82년생 김지영’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가 됐으면 하나요?
오랜만에 영화관에 오셔서 쉬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담담하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떤 다양한 감정들이 일어나는데, 그 감정이 일어나는 그대로 두면서요. 그러다 보면 내 주변이 보이고, 나 자신도 보일 수 있잖아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도 그렇게 느끼시길 바라요. 그렇게 잘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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