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라이' 이청청 디자이너 "이상봉의 아들? 패션을 시작한 이유"
[단독인터뷰] '라이' 이청청 디자이너 "이상봉의 아들? 패션을 시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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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오지은 기자] “세상에 나만의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직업 정말 많아요. 그런데 패션은 아니에요. 패션을 사랑하지 않으면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힘들어요. 정말 디자이너가 하고 싶다면 일과 삶을 연결해 생각해야 해요”

처음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데뷔했을 때 이청청 디자이너는 이상봉 디자이너의 아들로 주목받았다. 이상봉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에겐 여러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청청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개성을 한껏 담은 컬렉션으로 당당히 맞섰다.

그는 디자인뿐 아니라 컬래버레이션, 팝업스토어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쳐 경영인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처럼 점점 더 발전해나가는 이청청 디자이너와 제니스뉴스가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이상봉 쇼룸에서 만났다.

얼마 전 뉴욕 패션위크를 마치고 돌아온 이청청 디자이너는 힘든 내색 없이 열정적인 모습으로 제니스뉴스를 맞았다. 또 그는 곧 열리는 서울 패션위크에 들뜬 모습이었다. “하루 종일 패션 생각만 한다”라는 이청청 디자이너. 그가 털어놓은 라이 쇼의 비하인드스토리부터 이청청 디자이너의 패션 이야기까지 지금 만나보자.

Q. 얼마 전 뉴욕 패션위크에 참가했는데, 소감 한 마디 듣고 싶다.
라이의 두 번째 뉴욕 컬렉션이었다. 콘셉트코리아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라이를 선보여야 했기 때문에 부담도 있었다. 해외 미디어나 바이어들이 저희의 쇼를 통해 한국 패션의 이미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어서 뿌듯했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이번 쇼 전날 모델 부킹을 하고 피팅까지 끝내 놓은 상황이었는데 피날레 모델이 ‘피날레에 못 선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쇼 당일 아침에 새로운 모델을 보고 피팅하고 쇼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패션이란 게 정말 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기억에 남는 패션쇼가 될 것 같다(웃음).

Q. 이번에 파괴되고 있는 북극을 테마로 컬렉션을 진행했는데, 북극에 집중한 이유가 있을까?
예전에 아프리카 여행을 갔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는지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자연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번 시즌을 위한 리서치를 하던 중 우연히 먹이를 찾아 헤매는 북극곰의 사진을 봤다.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북극곰은 통통한데, 사진 속 북극곰은 삐쩍 말라 있었다. 이걸 보면서 ‘인간의 욕심에 의해 어떤 생명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수도 있구나’를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북극의 아름다움을 지켜야 하는지 말하고 싶었다.

이번 컬렉션 슬로건이 ‘it’s not just ICE’인데 이게 ‘단순히 얼음이 아니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it’s not justice(공평하지 않다)’라고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무심할지 몰라도 ‘다른 생명체에겐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Q.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이번 시즌 같은 경우에는 이누이트의 전통 의상, 소재 등에 집중했다. 에스닉한 느낌이 강한데, 이를 모던하게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이누이트 특유의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함께 다양한 텍스처의 원단, 비건 퍼 등을 믹스 매치해 흥미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Q. 라이의 컬렉션에는 유독 네온 컬러가 자주 등장한다. 네온 컬러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을까?
지난 2018 S/S 시즌에 많이 등장했다. 그때 여성들이 갖고 있는 에너지와 메시지에 집중했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여러 고민 끝에 1980년대 스포티한 감성을 풀어내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네온 컬러를 많이 사용하게 됐다. 

네온 컬러는 특유의 발랄한 느낌이 있어서 여성의 숨은 에너지를 표출하는데 적합하다. 네온 컬러를 통해 쇼를 보는 사람과 입는 사람 모두 동적인 컬렉션을 만들고 싶었다.

Q. 지난 시즌 뉴욕 컬렉션 오프닝에 시니어 모델이 올라 화제가 됐다. 시니어 모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 시즌 콘셉트가 ‘Perfectly ImPerfect(완벽한 불완전함)’였다. 그 콘셉트를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어서 로고 플레이를 통해 ‘Perfectly I’m Perfect(나는 정말 완벽해)’로 표현해 이중적 의미를 담았다.

이러한 의미를 통해 여성들에게 ‘각자가 가진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그 아름다움에 당당하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때문에 다양한 인종과 에너지를 가진 모델을 세웠고 그 시작은 시니어 모델이었다.

그때 테슬라 회장의 어머니이자 현역 모델로 활동 중인 메이 머스크가 오프닝에 섰다. 69세의 시니어 모델이지만 젊은 모델 못지않게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어 제가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다.

Q. 서울 컬렉션에는 가수 이은미가 오프닝에 섰다.
이은미 선생님은 지난 한 해 동안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제가 평소 선생님의 음악을 좋아해 자주 들었다. 뉴욕에 다녀온 뒤 서울 패션위크를 준비하면서 ‘어떤 분이 메이 머스크 같은 느낌을 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이은미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제 쇼에 서주시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며 부탁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흔쾌히 응해주셨다.

Q. 지금 서울 컬렉션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 컬렉션을 만들고 싶은지 궁금하다.
서울 컬렉션은 항상 부담된다.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고, ‘라이의 패션이 무엇인지’ 보고 느끼면 좋겠다. 메시지 전달이 중요한데 해외 바이어, 국내 패션 관계자들이 제 쇼를 보고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Q. 이번 서울 컬렉션의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면?
제가 뉴욕에서는 25벌의 의상을 선보였다. 서울에서는 조금 더 많은 스토리와 믹스, 아이디어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뉴욕 컬렉션이 프리뷰의 성격을 띤다면 서울 컬렉션은 완성형의 쇼가 될 것 같다(웃음).

저희 라이의 특징인 믹스 매치와 과감한 소재 사용, 실루엣에 집중해서 보신다면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Q. 어떻게 패션 디자이너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제 아버지는 이상봉 디자이너고, 어머니도 디자인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사무실은 놀이터 같았고 종이 가위보다 원단 가위가 더 친근했고, 바늘과, 실, 마네킹이 장난감이었다.

물론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적도 있어서 역사교육과에 진학한 적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디자인에 더 흥미를 느꼈고, 디자인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남성복에 지원해서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시작하게 됐다.

Q. 아버지의 이름이 부담이 되기도 했겠다.
2014 F/W 시즌에 처음 한국에서 쇼를 하게 됐다. 그때 '누구 아들인데 저거 밖에 안돼?'라던가 '누구 아들이니까 저 만큼은 당연한 거 아냐?'라는 말을 들을까 봐 쇼 전부터 걱정했다. 물론 쇼에 자신 있었지만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지 말자’라는 생각 때문에 부담됐다.

Q. 컬렉션을 준비하며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는지?
선생님과 저는 디자이너와 디자이너기 때문에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게 쉽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지만 브랜드가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감성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선생님의 입장에서 봤을 땐 자식이니까 항상 애 같을 거고, 조언을 하고 싶으실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선생님께 쇼 전까지 안 보여 드리고 쇼 때 손님으로 모셔서 ‘제가 이만큼 했습니다’라는 마음으로 보여드린다.

Q. 남성의 눈으로 여성복을 보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여성복은 너무 어렵다. 더 많은 곡선을 갖고 있다 보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제가 원래 남성복을 전공했는데, 그때는 바로 제가 입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가 이상봉에서 인턴을 했는데 그때 여성복의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여성복을 시작하게 됐다.

여성복을 하면서 가장 여러운 것은 제가 피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팅이 안 되니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간접 체험이라 쉽게 와닿지 않는다. 

Q.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지망생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한다면?
저는 ‘패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 직업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 많은 시간과 자본을 할애해야 한다. 요즘 많은 분들이 일과 삶의 분리, 라이프를 이야기하는데 패션은 그런 부분에서 만족을 줄 수 없다.

단순히 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정말 사랑한다면 주말에도 나가서 패션 트렌드를 직접 느껴봐야 한다. 그래서 저는 디자이너나 지망생들을 만나면 항상 “정말 좋은 직업 많다. 운동을 하며 즐길 수 있는 직업 많다. 그런데 패션을 사랑한다면, 정말 하고 싶다면 이 일을 삶과 연결해서 기쁨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Q. 디자이너로서 이청청의 목표가 궁금하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공감할 수 있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한국의 패션을 생각했을 때 ‘라이가 있었지’라고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패션뿐 아니라 아트,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컬래버레이션도 하고 싶다. 패션을 넘어서 여러 디자인 영역을 포괄하는 브랜드와 함께 죽을 때까지 디자인하고 싶다.


영상=심원영 감독 simba@, 임진우 감독 wls@
그래픽=엄윤지 디자이너 umyji@
사진=라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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