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권구현 기자] 지숙이 다빈과 민준을 째려보며 노란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묶는 순간, 관객의 눈도 질끈 감긴다. 어른이라는 우월적 위치를 이용해 마냥 어리고 약한 아이들을 향해 펼쳐지는 무차별 폭격, ‘어린 의뢰인’은 칠곡 계모 사건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탈을 쓰고 이토록 무자비한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지숙이다. 하지만 당연지사 이를 연기한 배우와 극중 캐릭터는 상이할 것, 다만 관객이 그리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배우 유선이 지숙을 완벽히 연기해냈음을 뜻한다. 악마와 같은 캐릭터를 자신에게 투영한다는 것, 그 힘듦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하지만 유선은 그런 지숙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과정보다는 의미를 먼저 생각했던 유선이다. 유선은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예방홍보대사로 활동했었다. 또한 자신 또한 가정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였다. 그렇기에 ‘어린 의뢰인’은 유선에게 있어 배우로서, 엄마로서,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다시 한번 자신을 다질 수 있는 작품이었다.
지난 7일 제니스뉴스와 배우 유선이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작품과 연기부터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리고 지금 승승장구하고 있는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 관련된 대화를 나눴던 시간을 이 자리에 전한다.
정말 못된 악역을 맡았다. 주변의 반응은 어떨까?
사전 시사 반응을 보면 역할에 대한 나쁜 인식보다 고생했다는 말씀이 많으시다. 만족스럽다.
처음 이 역할이 왔을 때 기분은 어땠을까?
“어떻게 이런 역할이 내게!”라는 생각이었다. 아동학대를 다룬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깊었다. 대본에 좋은 느낌을 가지고 감독님과 만났는데, 제게 너무 감사를 표하셨다. ‘어라? 난 어렵게 결정한 게 아닌데 왜 이리 반가워 하시지?’란 생각이 들었다. 캐스팅 과정이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배우들이 이렇게 좋은 역할을 왜 거절했을까’ 싶었다.
그야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이니까. 그 고생이 뻔히 보이는 역할이다.
촬영에 들어가니 그 배우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전 의미만 생각했지, 그 의미에 다가가는 과정은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덕분에 심정으로 정말 힘들었다.
결국 언론시사 때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기자님의 질문이 제 힘든 과정을 이해해준 것 같아 울컥했다. 촬영 당시 저만의 외로움이 떠올라 눈물이 더욱 나온 것 아닐까 싶다.
제가 영화에서는 강한 역할을 많이 했다. 그래서 작품 속 이미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마음이 약한 편이다. 눈물도 많고, 상처도 많이 받는다. 여리고 유약한 편이다.
그런 사람이 이번 역할을 맡았다는 건 결국 영화에 담긴 메시지 때문일 터다.
일부러 그런 작품을 더 선호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작품 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녹여내는 것을 좋아한다. 오락적인 측면, 감동적인 측면을 줄 때도 있지만 주제 의식을 통해 메시지를 준다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텐데.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기에 더 그랬을 거다.
어른으로서 여러 생각을 했다. ‘SKY캐슬’ 보다 더한 것이 현실 사회다. 주변 아이들만 봐도 학원을 많이 다닌다. 교육열이 굉장히 뜨거운데, 어쩌면 이 또한 아이를 소중히 여긴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건 행복인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의 따뜻함이 중요하다. 전 제 아이가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부모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어린 의뢰인’도 환경의 중요성을 말한다.
무서운 세상 속에 범죄를 저지르는 분들도 어떤 이들의 자식이다. ‘과연 사랑 속에 자라났다면 그렇게 됐을까?’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사회를 이루는 인격체의 첫 출발이 가정이다. ‘어린 의뢰인’을 통해 그런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직접 실천하고 있는 육아관이라고 보면 될까?
저의 경우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한다. 혹 잘못을 했다 해도 대화로 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밖에서 부모에게 주눅들어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사랑으로 보듬었으면 좋겠다. ‘어린 의뢰인’은 끔찍한 현실을 그리고 있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다. 사건을 보기 보단 내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연기 이야기를 하자면, 지숙이 머리끈 묶는 장면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소름을 느끼고 있다.
대본에 있던 부분이다. 사실 그 씬이 너무 섬뜩해서 “빼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모로 필요한 신이었다. 머리끈은 아동학대의 시작을 알리는 종과 같다. 지숙이 머리끈만 풀어도 뒤에 벌어질 일들이 자연스럽게 예측된다. 덕분에 비주얼로 굳이 학대신을 표현하지 않아도 됐다.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최명빈-이주원, 아역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현장에서 어떤 케어가 있었을까?
연기 상황이라는 것을 늘 알려줬다. 연기 때만 집중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그래야 최소한의 테이크로 끝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후엔 아이들이 연기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영화 속 관계가 있으니 마냥 친하게 지냈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너무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명빈이와 주원이가 사적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둘이 참 친했다. 그래서 약간 이방인처럼 있어도 될 것 같았다.
후배 이동휘랑은 어땠을까? 사실 서로 마주하는 신이 많지는 않다.
처음 호흡을 맞춰봤다. 그간 작품에서 봤던 모습은 참 밝고, 위트 있고, 생동감이 있어서 실제로도 유쾌한 친구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굉장히 진지하고 과묵하다. 대신 작품을 집요하리만큼 파헤쳤다. 좋은 연기자다.
장규성 감독님과는 어땠을까? 사실 감독님 필모로 보자면 이번 작품은 조금 의외의 선택인 건데.
장규성 감독님은 참 따뜻한 분이다. 마음도 약하시다. 모니터를 하다가도 “도저히 못 보겠다”면서 고개를 돌리시기도 했다. 그간 따뜻하고 유쾌한 영화를 해오셨기 때문에 ‘어린 의뢰인’의 초반 분위기가 잘 살아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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