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안나 카레니나’ 김소현 “안나, 한 인간으로서 사랑과 행복 찾아가려는 것… 단순한 불륜 아니에요”
[Z인터뷰] ‘안나 카레니나’ 김소현 “안나, 한 인간으로서 사랑과 행복 찾아가려는 것… 단순한 불륜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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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김소현 (사진=오치화 기자)
▲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김소현 (사진=오치화 기자)

[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무대 위에서 웃지도 못하고, 내가 가진 장점을 살릴 수 없는 작품이어서 어려워요”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가 두 번째 공연으로 돌아왔다. 초연 당시 탄탄한 스토리는 물론이고 매력 넘치는 캐릭터, 귓가를 떠나지 않는 넘버, 러시아 뮤지컬다운 화려한 영상과 스케일로 큰 사랑을 받은 '안나 카레니나'다. 배우 김소현은 이번 공연에서 안나 역을 맡았다. 정말 의외다. 

우리가 아는 김소현은 여배우가 타이틀롤인 작품이 많지 않은 뮤지컬계에서도 꾸준히 ‘명성황후’, ‘엘리자벳’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온 배우다. 그 덕분에 아름다운 목소리와 공주님 같은 이미지가 배우 ‘김소현’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런 김소현이 이번에는 ‘안나 카레니나’를 택했다. 본인의 말처럼 “김소현이 안나를 한다고?”라고 놀란 이들이 적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김소현은 오히려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지금의 위치에서 새로운 도전을 택한 그의 행보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

실제로 만난 김소현은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밝은 에너지를 가진 배우였다. 때로는 깔깔 웃으며, 때로는 한없이 진지하게, 제니스뉴스가 김소현과 나눈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곳에 전한다.

▲ 김소현 (사진=오치화 기자)
▲ 김소현 (사진=오치화 기자)

Q. ‘안나’는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타이틀롤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지금까지 했던 역할과는 결이 굉장히 다르다. 많은 분들이 ‘김소현이 안나를 한다고?’란 말씀을 많이 하셨다. 고민했었는데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Q. 연습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이 캐릭터 자체가 전에 배우로서 어떤 경험을 했든 너무 표현하기 어렵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해서 자살하게 된다는 단순한 내용과는 완전히 다르다. 굉장히 복합적이다.

같은 대사를 해도 너무 많은 레이어가 내 안에 있다. 하지만 내면에 있는 겹겹의 내용을 굉장히 먼 거리에 있는 뮤지컬 관객에게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건 줄 몰랐다. 표정으로만 보시면 오히려 편하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 굉장한 벽에 부딪혔다. 가뜩이나 이해가 안 가는 캐릭터를 관객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들려면 내 자체도 캐릭터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것들에서 오는 힘듦이 컸다.

나는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8살 아들을 키우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이런 삶을 박차고 나간다는 건 나 스스로한테는 용기도 아니고 무모한 거다.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다행히 연출님이 여성분이시고, 나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고, 실제로 결혼생활도 하고 계시고, 아이도 있는 분이었다. 게다가 ‘안나 카레니나’ 전문 연출이다. 하하. 많은 얘기를 시도 때도 없이 했다. 내면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까지 심오한 대화를 했다. 브론스키와 교감이 안되면 할 수가 없는 공연이다 보니까 상대 역과도 그 어느 때보다도 친밀하게 대화하는 게 필요했다. 뜻 깊은 연습 기간이었다.

Q. 연습 과정도 다른 작품과 너무 달라서 힘들었다고 하던데.
엄청 다른데 나는 너무 좋았다. 배우 개인의 호흡에 맞춰 열정적인 무한 서포트를 받는 느낌이었다. 끝도 없이 런스루를 하면서 스스로 많이 찾아가는 것들이 너무 새롭지만 나와는 잘 맞았던 것 같다.

남산 연습실에서 계속 세트를 세워놓고 연습하다가 세트가 무대 위로 올라가야 해서 맨바닥에서 며칠 연습을 했었다. 연출님이 그때 마지막으로 모든 배우들과 연습을 하다가 점점 인원을 줄이셨다. 마지막에 남편, 브론스키, 나 셋을 남겨놓고 셋이 만나는 장면을 시키시더니 또 남편을 보내셨다. 마지막으로 김우형 씨와 나를 남겨놓고 평생 잊지 못할 연습을 시켜 주셨다. 모든 장기가 다 튀어나올 것처럼 안에 있는 걸 다 쏟아내는 연습을 한 시간 정도 했다. 노래도 시끄러운 소리가 나든지 말든지, 연기도 너무 과해도 되니까 할 수 있는 대로 다 해보라고 하셨다. 러브신과 ‘자유와 행복’ 넘버를 끝도 없이 몇 번이나 시키셨다. 나중엔 브론스키에게 달려가서 안기는데 현기증이 나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때는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지’란 생각도 했다. 그동안 너무 관계가 좋았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셨지만 그날의 연습은 나에게 너무 벅차고 힘들었다. 개막을 일주일 남겨둔 상황이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주체가 안돼서 혼자 막 걸었다. 걷다가 갑자기 이해하지 못했던 안나의 삶과 퍼즐이 맞춰졌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연습이었지만 평생 잊지 못할 연습이었다. 알리나 연출에게 너무 감사하다.

▲ 김소현 (사진=오치화 기자)
▲ 김소현 (사진=오치화 기자)

Q. 러시아 뮤지컬의 다른 점이 있다면?
위치를 표시하는 넘버링이 없다. '넘버가 왜 중요하냐'고 한다. 처음엔 너무 이해가 안 갔는데 그게 없어지니까 너무 자유로웠다. 처음엔 모든 배우들이 멘탈 붕괴가 왔던 것 같다. '번호를 안 알려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아냐'고 했다. 연출님께선 '배우는 공간을 다 느끼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디가 비어 있는지, 내가 어디에 가 있어야 하는지 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런 게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대본을 첫날부터 놓고 했다. 다 외워 갔어야 했다. 런스루를 끝도 없이 하면서 찾고, 연습을 거꾸로 하는 느낌이었다. 시스템이 다르긴 한데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Q. 힘든 과정을 거쳐 이해하게 된 안나는 어떤 캐릭터인가.
사랑이 없는 결혼을 했는데 공연에서는 그런 부분이 생략돼 있다. 그래서 카레닌을 만났을 때 최대한 그런 걸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게 베이스가 되야 브론스키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것도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안나라는 인물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인물이다. 그렇다고 육체적인 사랑으로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것보다는 한 인간이 처음으로 사랑, 행복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자유와 행복을 찾아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사랑을 따라 간 거다. 브론스키가 그걸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증오도, 고통도 아닌 것 같다. 이것도 내 자유와 행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결국 죽음을 택한 게 아닌가 싶다. 단순히 '사랑에 버림받아서'라고 생각하는 게 싫다. 단순히 불륜을 저지른 나쁜 여자보다는,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고,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거다. 내 인생의 길을 찾고 싶어서 갔는데 그조차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절망 속에서 생을 포기한다. 

Q. 안나 역할을 맡으면서 힘들었던 점은?
역할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일이 없게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너무 힘들었다. 깨어있는 시간 동안 계속 그 생각만 했다. 그걸 컨트롤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또 박수를 치는 게 되게 어려운 공연이다. 배우들은 중간에 박수를 받으면서 또 에너지를 얻는데 그 시간이 없는 게 처음이다. 끝까지 어떤 느낌으로 보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끌고 가야 한다. 안나는 한 번에 죽는 게 아니라 점점 사그라져 간다. 그런 것들이 너무 표현하기가 어렵다. 끝나는 날까지 뭐 하나라도 더 표현하고 찾아가는 걸 목표로 삼고 하고 있다.

▲ 김소현 (사진=오치화 기자)
▲ 김소현 (사진=오치화 기자)

Q. 민우혁, 김우형 두 브론스키 각각의 매력은?
김우형 씨는 ‘지킬 앤 하이드’ 때 두 시즌을 같이 했고, ‘대장금’ 초연도 같이 했었다. 진짜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너무 성실하고 남자답다. 대화도 진짜 많이 했다. 윤공주, 민우혁 씨가 공연 중이어서 연습실에 김우형 씨와 상주하면서 알리나 연출의 지시도 많이 받았다. 정말 편하고 의지하게 되는, 모든 여배우들이 사랑하는 상대역이다. 배려도 많이 해줘서 안나가 돋보이게 해준다. 민우혁 씨 같은 경우는 굉장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은 사람이다. 두 사람과 공연할 때 느낌이 너무 다르다.

어떤 관객이 김우형 씨는 안나를 사랑하는 강한 남자 같고, 민우혁 씨는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 같다고 했다. 남자답고 강한 브론스키와 패기 넘치는 열정이 있는 브론스키라고 해야 할까.

Q. 이번 공연을 통해서 관객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안나가 불쌍했다', '안쓰러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같이 눈물 흘려주시는 게 가장 내가 바라는 바다. 그만큼 이해를 했다는 것이기 때문에 같이 울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많은 작품과 역할을 했지만 이번 작품 하면서 정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른 감정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는 걸 경험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그대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다. 단순한 불륜이 아니라 사람 인생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도덕적 기준도 다르다. 각자가 느끼는 것도 다를 거다. 집으로 돌아갈 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공연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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