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인터뷰] ‘판소리 복서’ 엄태구 “단편부터 기대하던 영화, 도전하고 싶었어요”
[Z인터뷰] ‘판소리 복서’ 엄태구 “단편부터 기대하던 영화, 도전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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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판소리 복서’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 영화 ‘판소리 복서’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제니스뉴스=마수연 기자] 대중들에게 엄태구는 ‘악역 잘 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영화 ‘밀정’에서 일본 순사 하시모토 역을 맡은 그는 독립군을 향한 악랄한 수사를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영화 ‘택시운전사’, ‘안시성’, 드라마 ‘구해줘 2’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인 엄태구는 악역뿐만 아니라 여러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매 작품 새로운 도전으로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채우고 있는 엄태구가 이번에는 그간 맡았던 역할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영화 ‘판소리 복서’는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많은 화제를 모았다. 매번 무겁고 진중한 연기를 선보이던 엄태구가 푸른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춤인지 복싱인지 모를 몸동작을 판소리 가락에 맞춰 흥겹게 선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특유의 짧은 머리가 아닌, 굽실거리는 더벅머리로 얼굴을 가린 채 순박하게 웃는 모습은 우리가 아는 엄태구가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고, 동시에 이번에는 엄태구가 어떤 연기를 선보일지 기대를 높였다.

예측할 수 없는 색다른 모습으로 스크린에 돌아온 엄태구를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독특한 작품인 ‘판소리 복서’를 선택한 이유부터 잊고 있던 감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나눈 인터뷰 현장을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 영화 ‘판소리 복서’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 영화 ‘판소리 복서’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Q. 독특한 소재의 영화인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단편영화 ‘뎀프시롤: 참회록’부터 정혁기 감독님의 팬이었어요. 영화가 장편으로 만들어지는 건 알고 있었는데, 대본이 제게 와서 정말 기분도 좋고 기대하고 있었죠. 도전하고 싶었어요. 영화가 좋은데, 참 이상해요. 그래서 좋았어요. 하하. 웃긴데 슬프기도 하고, 병구를 보며 ‘쟤는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왜 기분이 이상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독특했는데, 그게 제 취향이었던 거 같아요. 이 단편영화가 장편화 되면서 관객들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됐어요.

Q. 단편 당시 병구를 맡았던 조현철 배우가 각본을 담당했는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나요?
미팅 때문에 사무실에 갔을 때에는 감독님만 계셔서, 현철 씨를 만나지 못했어요. 단편에서 현철 씨가 연기를 너무 잘했고, 병구라는 캐릭터가 대단해서 ‘이건 현철 씨가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했죠. 그래서 감독님께 그렇게 말씀 드렸는데, ‘태구 씨는 잘 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주셔서 도전하게 됐죠. 

Q. 병구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각기 다른 감정을 보여주는 캐릭터예요. 감정선 잡기가 어려웠을 거 같아요.
어려웠죠. 매 장면을 촬영할 때마다 가장 크게 생각한 건 그 이전의 상황이었어요. ‘병구가 직전에 뭘 했지?’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에 감독님이 디렉션을 주시면 살을 붙이는 식으로 접근했어요.

Q. 복서 연기를 위해 직접 복싱도 배웠다고 들었어요. 적성에 맞았나요?
복싱 선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죠. 하하. 이렇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짧게 배웠지만, 그래도 힘들더라고요. 훈련할 때 코치님과 목표를 높게 잡았어요. ‘선수들이 보기에도 자세가 진짜 같고, 프로 복서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게 목표였죠. 촬영 전까지 최선을 다했던 거 같아요. 그때는 몸무게를 재보지 않았는데, 대략 65kg 정도였어요. 지금은 후속작 촬영 때문에 살을 일부러 찌워서 72kg 정도예요.

Q. 단편과의 차이점을 두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요?
대본을 처음 봤을 때부터 제가 바란 건, 판소리 복싱이라는 게 판타지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 경기에서도 많은 승을 거둘 수 있을 정도로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였어요. 장단을 들으며 동작을 만들면서도 복싱 코치님께 ‘실전에 도움이 될까요?’라고 많이 물어보면서 만들었던 거 같아요. 기본 동작 배운 걸로 장단을 들으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주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의견도 물어봤어요.

Q. 코미디 장르에 도전했는데, 소감이 궁금해요.
악역을 할 때는 제 안의 화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게 지칠 때가 있어요. 이런 유한 연기를 할 때는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운 게 좋았던 거 같아요. 하지만 코미디라는 걸 잊으려고 해도, 누군가를 웃기는 일이라는 부담이 있고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비우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무조건 병구의 삶이 진실 되게 보이고, 진짜 같은 목표처럼 보이게 하려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Q. 코미디처럼 보였던 영화인데 실제로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엄태구 씨가 생각하는 ‘판소리 복서’의 장르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정서는 휴먼 드라마인 거 같아요. 여러 코믹적인 요소가 과장되게 설정돼 있지만, 결국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Q. 엄태구 씨에게 판소리 복싱 같은 꿈이 있다면요?
연기를 계속 하고 있다는 점이 병구와 비슷한 거 같아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고 있는 거니까요. 매 작품이 저에게는 도전이기도 하고요. 또, 잘할 수 있는 게 연기뿐이라는 점도 비슷한 거 같아요.

▲ 영화 ‘판소리 복서’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 영화 ‘판소리 복서’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Q. 지난해 영화 ‘안시성’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로맨스 연기를 했어요. 로맨스 장르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작품을 선택할 때 장르에 대한 고려가 크지 않은 거 같아요. 좋은 작품인지를 먼저 보는 거죠. 그래서 굳이 멜로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Q. 설현 씨와 이혜리 씨, 두 사람과 로맨스 호흡을 맞췄어요.
두 분과 작품할 때 상황이 정말 달랐어요. ‘안시성’에서 설현 씨와는 오래된 연인 관계인데, 평소에 대화를 거의 안 하고 촬영을 들어갔어요. 설현 씨와 작업할 때는 둘 다 낯을 많이 가려서 많은 대화를 못 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백하와 파소로만 그렸기 때문에, 그 상상이 현장에서 연기할 때 도움이 될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시너지가 나서 도움이 됐죠. 혜리 씨와는 평소에 편하게 말을 하는 상태에서 연기했는데, 그 편함으로 인해 생기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저에게는 두 번 다 로맨스 연기 도전이었는데, 어떤 방법이든 좋은 거 같았어요. 정답이 없는 거 같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면 될 거 같더라고요. 친함의 색이 다른 거예요. 두 분 다 얘기를 많이 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 했죠. 하하.

Q.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데, 작품만 하면 돌변하는 스타일이에요. 작품을 통해 전혀 다른 나를 만나는 재미가 있을 거 같아요.
물론 재미있고 즐겁지만, 그보다는 두려움과 떨림이 더 큰 거 같아요. 그런 연기를 저지르기 위해 며칠간 끙끙 앓기도 하죠. 촬영하는 순간은 재미있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거 같아요.

Q. 영화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극중 병구의 ‘어차피 저도 사라지고 잊혀진다.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대사가 온몸으로 깊게 와 닿았어요. 제 어린 시절도 떠오르고요.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 나이 많이 드신 부모님도 생각했죠.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두렵고, 저 역시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테니까,  생각이 정말 많아지더라고요. 그 대사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거 같아요.

Q. 배우도 대중의 인식에서 사라지는데, 그것에 대한 불안감이나 걱정은 없나요?
그것 말고도 걱정은 매일 많아요. 하하. 지금은 영화 ‘낙원의 밤’을 촬영하고 있어서 다른 걱정할 겨를이 없어요. 오히려 ‘내일 촬영에서 어떡하지?’, ‘그 장면을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크죠.

Q. 형인 엄태화 감독의 영화를 함께 할 계획이 있나요?
형이 불러주면 하는 거죠. 하하. 형이 영화를 만들 때, 제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는 거 같아요. 서로 민망하잖아요. 형이 대본을 다 쓰고, 제게 하라고 하면 하는 거죠. 물론 거부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런 적 없어요.

Q. 엄태화 감독과 시나리오 의논도 많이 하나요?
형과 이야기 할 때도 있고, 제가 시나리오를 보고 선택할 때도 있어요. ‘판소리 복서’는 상의하긴 했는데, 할 거라고 결정한 상태에서 형에게 말했죠. ‘낙원의 밤’은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박훈정 감독님과 느와르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거든요.

Q. 대중들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요?
그런 것들은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이번 영화를 하면서 제가 사라지고, 주변 사람들이 사라지고, 어린 시절이 사라지는 걸 생각해본 거라서요. 하지만 좋게 기억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연기 잘하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그걸 위해서 연기를 잘 해내야 하고, 잘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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