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니스뉴스=이혜린 기자] 20여 년 전, 그림과 패션의 선택의 기로에 선 소년은 그림을 선택했다. 하지만 끝내 옷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가 잡은 두 마리의 토끼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다. 브랜드 그라피스트 만지의 김지만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그라피스트 만지는 컬렉션에 그라피티를 새긴 독특한 컬렉션을 선보이는 김지만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가 가득 담긴 브랜드다.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라는 슬로건을 통해 '사랑'이라는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뤄 그라피스트 만지만의 콘셉트를 유니크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에 비비드한 그라피티, 자수 디테일이 살아있는 컬렉션들은 자신만의 룩으로 개성을 표출하길 원하는 패션 피플들의 마음을 저격해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LA 등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김지만 디자이너는 꿈같은 이야기를 실현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을 인정받기까지 고난과 역경의 힘든 시간들을 지나왔고, 김지만 디자이너의 꿈은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달됐다. 나아가 김지만 디자이너의 열정과 꿈은 계속되고 있다.
제니스뉴스와 김지만 디자이너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중구 두타몰에 위치한 그라피스트 만지 쇼룸에서 인터뷰로 만났다. 김지만 디자이너의 꿈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었다. 덤덤하면서도 자신 있게 자신의 최종 목표를 화가라고 이야기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던 김지만 디자이너와 함께한 시간을 이 자리에 공개한다.

Q. '2019 F/W 서울패션위크'에서 선보인 그라피스트 만지의 쇼는 지난 시즌과 달리 굉장히 어둡고 강렬했어요.
2019 S/S 시즌엔 밝은 분위기로 만지의 컬러를 보여주는 게 중점이었어요. 그런데 지난 쇼를 마치고 제게 슬럼프가 세게 온 거예요. 어느 디자이너나 그런 생각을 할 테지만, 스스로 '누굴 위한 쇼를 했는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힘든 마음에 지난 1월에 일본 도쿄로 여행을 떠났어요. 항상 저는 일본 여행을 갈 때, 태깅 작업을 해요. 이번에도 제 스티커를 챙겨가는데 거기서 딱 영감을 받았어요. 남들이 볼 때는 단순한 낙서일 수 있지만, 수많은 인디 아티스트들의 발악이라고 생각했죠. 저도 마이너에서 그라피티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에 따른 열정이 있었는데 어느새인가 제 만족,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를 한 것 같다는 깨달음도 얻었어요.
그래서 2019 F/W 시즌에는 아티스트들의 서브컬처와 그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림이나 색감 위주의 표현도 절제하는 것처럼 자수로 표현했고요. 쇼에서 틀었던 음악도 그 시절에 제가 듣던 노래였어요. 비관적인 마인드로 '나는 천재인데 왜 못 알아주지?'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들었던 음악이었죠. 하하. 그런데 그런 부분들을 녹여냈더니 재미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패션위크 발표도 한 달 전에 날 정도로 늦었고, 그때부터 준비하면서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이었지만, 목표 의식이 생기니까 모든 게 순조로웠어요.
Q. 개성 넘치는 런웨이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연출에도 직접 참여했는지 궁금해요.
연출에도 욕심이 많이 났고, 모든 부분에 콘셉트를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유명하고 일류 연출가들도 많잖아요. 하지만 그렇다 보니 그 밑에 연출을 하고 싶어도 기회조차 못 갖는 사람들도 많죠. 욕을 먹더라도 해봐야 하는 건데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부분까지 모두 콘셉트화했고, 모델 에이전시 씨오엘과 함께 하게 됐어요.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자신 있었어요. 그리고 이번 콘셉트는 서로 조율해서 연출할 수 있는 곳도 필요했고요.
사전에 모델들과 만났을 때는 모델분들이 이전 만지 쇼를 봤는지, 굉장히 가볍고 발랄한 워킹을 보여줬어요. 하지만 "모델로서 슬럼프에 빠졌거나, 잘 안됐을 때의 기분을 생각하며 걸었으면 좋겠다"고 콘셉트에 대해서 설명했더니 모델분들이 그런 부분을 잘 보여줬어요. 나중에는 "껌 씹어도 돼요?"라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하하. '모두가 훌륭하게 잘 해줬다'고 생각해요. 헤어부터 메이크업, 의상, 음악, 연출 모두 괜찮았어요.
Q.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도 '수어사이드 스쿼드' 속 할리퀸 같은 모습이었어요.
오마주 했어요. 그래서 방망이도 들었고요. 하하. 영화 '배트맨' 속 조커는 악당으로서 참 매력 있죠. 하지만 부하들도 너무 재미있어요. 그들도 조커가 되고 싶을 거예요. 비록 할리퀸, 부하들과 같은 캐릭터가 익살스러운 모습만 보이다가 나오자마자 죽지만 말이에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엑스트라지만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 해'라는 마음을 느꼈고, 이에 수많은 인디 아티스트들을 '배트맨' 속 악당으로 표현했어요.

Q. 피날레에 모델들이 깃발을 들고 무리 지어 나왔고, 김지만 디자이너는 'MY NAME IS MAN.G'라는 그라피티를 선보였어요. 마무리가 굉장히 독특했어요.
패션쇼는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 그대로 쇼답게 표현했어요. 아직 전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와서 보는 관객들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하하. 막연하게 즐거움에 치우치면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지만, 확실하게 맞는 연출로 컬렉션을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길 바라요. 피날레에 선보인 깃발은 쇼하기 1~2주 전에 완성했어요. 당당하게 전진하는 모습을 떠올렸어요. '모든 아티스트들이 다 함께 세상 밖에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미 부여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피날레의 그라피티는 '디자이너가 되면 꼭 그렇게 해야지!'라고 항상 생각해왔던 퍼포먼스였어요. 데뷔 무대에서는 피날레가 아니라 쇼 전에 그라피티 퍼포먼스를 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마지막에 태깅을 한다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어요. 작품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에 사인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었죠. 그라피티를 시그니처로 가지고 가다 보니 항상 고민이에요. 매번 똑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음 콘셉트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에요. 하하.
Q. 헤드뿐만 아니라 이번 쇼에는 마이포에트리라는 페미닌한 무드의 액세서리 브랜드와 컬래버했어요. 이번 콘셉트와는 다른 분위기였는데, 어떻게 협업하게 됐나요?
쇼는 혼자는 못하는 것 같아요. 하하. 마이포에트리는 여성스러운 브랜드이지만, 다행히 서로 믿고 진행을 했고, 스타일을 잘 캐치해 주셔서 플러스 요인이 됐어요.
Q. 그룹 나인뮤지스 출신 조소진 씨도 런웨이에 올라 화제가 됐어요.
소진 씨는 예전에 쇼하기 전에 DM으로 팬이라며 연락이 왔었어요. 그러면서 친분을 쌓아왔고, 제가 쇼를 할 때마다 잊지 않고 와줬어요. 이번 무대도 런웨이 서보는 게 어떻겠는지 제안했는데, 흔쾌히 승낙해줬고요. 하하.
Q. 그렇다면 지금은 슬럼프를 완전히 떨쳐 냈나요?
정말 떨쳐냈어요. 쇼를 마치면 '이제 뭐 해야 하지?'라고 숙제처럼 밀려오는 부담들이 싫었어요. 하지만 이번 시즌엔 가고자 하는 방향이 생기다 보니 자신감도 생겼죠. 하하. 쇼를 하면서 느낀 부분도 많아요. 그래서 다음 쇼는 '지만'으로 하려고요. 중저가에서 하이엔드로 올라가는 것처럼 가격별로 컬렉션을 나눠보려고 해요. 하고 싶었던 것들도 있고, 원래 좋아했던 것들을 제안하려고요.
지만은 마치 블랙 라벨 같은 모습일 것 같아요. 저희 브랜드 특성상 그래피 요소들이 많은데, 그동안 소재와 가격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1020 마니아층도 많고, 조금 자유롭게 하고 싶기도 해서 그동안 선보이지 못했던 라인들을 과감하게 선보이고 싶어요. 비록 가격대는 올라가겠지만, 충분히 원하는 니즈를 맞출 수 있을 것 같고, 제 스스로에게도 놀이가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만지는 앞으로 컬렉션 브랜드가 아닌 메시지를 전하고, 다달이 출시하고, 소통하고, 가격도 라이트 하게 갖춘 브랜드가 될 거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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