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대사]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배우들이 직접 뽑은 명대사
[심쿵대사]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배우들이 직접 뽑은 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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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스뉴스=임유리 기자] <아는 만큼 들린다. 들었던 대사도 다시 듣자. 연극•뮤지컬 마니아들을 위한 본격 다(多) 관람 권장 기획. 내 심장을 '쿵' 하게 만든 대사와 배우들이 직접 뽑은 명대사는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을까? 알고 나면 달리 보이고, 알고 나면 더 잘 들리게 될 것이니. 편집자 주>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마누엘 푸익의 원작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1976)를 바탕으로 연극화된 작품이다. 당시 동성 간의 사랑과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다룬 파격적인 소재로 화제가 됐으며, 후에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는 2011년 초연 이래 5년 만에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독특하고 감성적인 연출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문삼화 연출이 번역부터 직접 참여해 새로워졌다. 자신을 여자라고 믿고 있는 낭만적인 동성애자 '몰리나' 역에 이명행 최대훈 김호영,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정치범 '발렌틴' 역에는 송용진 정문성 김선호가 열연중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의 진지하고 깊은 생각들이 돋보이는 심쿵대사 5탄은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의 전 출연진과 함께 했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내년 1월 31일까지 대학로 신연아트홀(A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나는 참는 법을 더 익혀야 해" / 발렌틴 역 송용진

"이 대사가 발렌틴의 성격을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습니다. 모진 고문 후에 그 후유증으로 고통 받으며 투옥 중인 발렌틴, 그가 생존이라는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위해 수많은 고통을 견뎌내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하는 이 대사가 마음을 항상 울립니다. 빌렌틴이라는 인물을 꼭 안아 주며 이제 그만 참고 편안하게 쉬라고 얘기해 주고 싶네요. 이 대사를 통해 과연 나는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참아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약속해. 모든 사람이 널 존중하게 한다고. 누구도 널 이용 못하게 한다고. 약속해... 네 자신을 폄하하지 않겠다고" / 발렌틴 역 정문성

"오롯이 몰리나만을 위하는 100% 진실이여서 나 자신도 무서운 상황이지만, 몰리나가 두려워할까 용기를 주는 말이기 때문에. 그 말들 안에는 미안함과 고마움, 깊은 애정이 담겨 있어요."

 

"아니, 너야말로 정말 따뜻하지" / 발렌틴 역 김선호

"발렌틴이 느낀 몰리나가 이 대사에 전부있어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아주 잠시 동안 나는 여기에 없는 것 같았어. 여기에 없었어. 그 어떤데도 없었고 난 여기에 없었어. 너만 있었어. 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것 같았어. 나는... 너였던 것 같아..." / 몰리나 역 김호영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결정적인 장면이고, 그 마음을 최고조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 물어볼래... 나한테 키스하는 거 역겨워?" / 몰리나 역 이명행

"자신의 존재와 마음을 다 드러내놓고 이미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발렌틴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몰리나의 애절함이 드러나는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애써 아닌 척 하려고 하지만 그게 더 아름다운 거 같아요."

 

"그래서 넌 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몰리나 역 최대훈

"'지금 나쁘지 않은데 왜 굳이 세상을 바꿔야 하는데... 세상이 뭐 어떻길래, 저렇게 핏대를 세우고 유난을 떨어... 난 별 욕심 없으니까 그냥 이래도 좋아. 내 것만 빼앗기지 않는다면 상관없어'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 삶의 태도입니다. 이 대사를 읊을 때의 몰리나처럼.

예전보다 나이가 조금 들어서인지, 이제 막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서인지, 뉴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제 그럴 시기가 되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옳고 그름, 존재에 대한 가치, 삶의 이유, 나란 사람이 사회에 어떻게 보탬이 될 것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보탬이 과연 될 수 있을까?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권리와 내가 해야 할 의무, 책임 등 여러 가지에 대해 간을 보고 있더랬습니다, 요즘...

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를 생각해 봤어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좀 더 애착이 생긴 걸까? 그렇다고 그전의 내가 세상에 대한 애착이 없었던 건 아닌데...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당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 어렸을 땐 빨갛게만 느껴졌던 이런 생각들이 이젠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다니...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감사해요. 숨 쉴 만한 자격이 조금은 더 생긴 것 같아서 말이죠. 이 뒤늦은 깨달음과 변화가 누군가에겐 한심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어요. 이제라도 그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아직까진 발렌틴처럼 큰소리로 '내가 세상을 바꿀 거야'라고 외칠 순 없어도 누군가 나에게 몰리나처럼 '그래서 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차분하고 강한 어조로 말할 순 있을 것 같아요. “그래”라고...

어렸을 적 단순히 즐거움으로 시작한 이 일,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전혀 힘이 없다고 느꼈던 내 일로, 그리고 내 몸으로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다고 말이죠."

 

사진=악어컴퍼니
디자인=박수진 parksj@zenith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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